[우크라 서부거점 르비우에서] 죽음에서 탈출한 피란민들

  • 입력 2022-05-10 09:44
격전지 동남부에서 출발한 피란열차 24시간 달려 르비우 도착
르비우 곳곳 난민 센터서 눈물의 피란살이…"작은 소음에도 공포에 질려"

열차는 위태로운 궤도를 꼬박 24시간을 달려 비로소 역에 도착했다.


열차 문이 열리자 '이제 살았다'는 안도와 피곤이 뒤섞인 얼굴의 승객이 쏟아져 나왔다.


큰 아이의 손을 잡고 아기를 안은 엄마, 자신의 몸집만큼 큰 가방을 든 어린이, 지팡이에 의지한 노인….


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르비우의 중앙역에 도착한 열차의 출발지는 동남부 자포리자역이었다.


자포리자는 러시아군이 거세가 공격하는 헤르손, 미콜라이우, 마리우폴 등 남부 지역을 겨우 탈출한 피란민이 집결하는 도시다.


열차가 2번 플랫폼에 정차하자 구호단체의 자원봉사자들이 피란민을 맞으러 객차로 향했다.
이날 르비우 역에 도착한 피란민은 약 150명.


이들의 열차 피란길은 특히나 위험했다. 9일 2차 세계대전 종전기념일(러시아의 전승절)을 맞아 러시아가 대규모로 폭격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한 구호단체 자원봉사자는 "전승절 즈음에 러시아가 대규모 도발을 감행할 우려가 있어 9∼10일 중·동부 지역에 통행금지령이 내려졌다"며 "그래서 앞으로 이틀간 피란 열차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날 열차를 타지 못한 피란민은 공포 속에서 이틀 더 전장의 최전선에 머물러야 하는 셈이다. 우크라이나에서 이틀은 생사가 열두 번도 갈릴 수 있는 시간이다.

몸만 빠져나와 당장 머물 곳이 없는 피란민은 대부분 르비우 당국이나 개인이 운영하는 피란민 센터로 향했다.


르비우 서부의 '원더 스페이스'는 르비우 주(州)의 최대 규모 스튜디오였으나 지금은 난민을 위한 생활 공간으로 바뀌었다.


유명 사진작가인 스튜디오 운영자 부부가 선뜻 난민을 위한 공간으로 이곳을 내줬다고 한다.
현재 48명의 난민 여성과 아이가 이곳에서 생활하고, 가장 많을 때는 126명이 모였다.


이곳에서 만난 샤샤 씨는 딸 라라와 함께 우크라이나 동부 루한스크의 집을 떠나왔다.
루한스크는 도네츠크와 함께 '돈바스'로 불리는 지역으로, 2014년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친러시아 반군이 맞붙은 돈바스 전쟁의 무대로 현재 가장 치열한 격전이 벌어지는 동부전선의 중심지다.


샤샤 씨가 "루한스크의 집이 그대로 있을지 모르겠다. 그저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울음을 터뜨리자, 그의 품에 안겨 있던 라라가 "엄마 집에 가기 싫어요"라고 칭얼댔다.


여덟 살 라라에게는 집에 대한 그리움보다 전쟁을 직접 겪은 공포가 더 큰 듯했다.

인나 씨는 손녀 마리아(11)와 함께 인터뷰에 응했다.
하르키우 외곽에 있는 인나 씨의 집은 전선에서 불과 12㎞ 떨어져 있었다. 인나 씨가 마리아를 데리고 집을 비운 사이 전쟁이 터졌고 인나 씨는 그 길로 마리아와 함께 방공호로 향해야 했다.


인나 씨와 마리아는 러시아 군을 피해 방공호에서 무려 51일간 버텼다고 한다. 러시아군의 포격과 폭격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공포의 나날이었다.


하르키우에서 수백㎞ 떨어진 르비우로 피신했지만 두려움까지 가시지는 않아 보였다.
"지금 있는 피란민 센터 주변에 목공소가 있는데 톱질하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마리아가 공포에 질립니다. 마리아는 심리 치료를 받고 있어요"

르비우 외곽에는 폴란드 정부의 지원으로 세워진 이동식 주택 단지가 들어섰다.
사흘 전 문을 연 이곳에는 320명을 수용할 수 있는 80채의 간이 주택이 설치됐다.


세 아이와 함께 지난달 하르키우의 집을 떠나 르비우에 도착한 타냐 씨는 이곳에 임시로 보금자리를 틀었다.


하르키우에서 간호사로 일한 타냐 씨는 수없이 많은 죽음을 목격했다고 했다.
생후 32일째인 막내아들 보그단을 품에 안은 그에게 피란 여정을 묻자 눈물부터 흘렸다.
"하르키우에서 겪은 일은 말하고 싶지 않아요. 가슴이 너무 아파 힘들어요. 그저 집에 가고 싶을 뿐이에요"

다른 아이들과 뛰어놀던 열 살 베로니카는 외국에서 온 취재진을 보자 인터뷰를 자청했다.
"우리가 놀던 거리에 폭탄이 떨어졌고 우리 집이 흔들렸어요. 밤에 일어난 일이에요. 엄마가 책상 아래로 숨으라고 했어요. 책상 밑에서 덜덜 떨었어요. 매일 너무 무서웠는데 크라마토르스크에 폭탄이 떨어지고 나서 우리는 집을 떠나기로 했어요."


유난히 붙임성이 좋고 밝게 웃던 베로니카는 크라마토르스크에서 온 아이였다.
베로니카가 '폭탄이 떨어졌다'고 담담하게 말한 이 도시는 참사가 벌어진 곳이다.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 크라마토르스크에선 불과 한 달 전 러시아군이 피란민이 몰린 기차역에 집속탄을 쏴 민간인 50여 명이 죽고 300여 명이 부상했다.


전쟁은 열 살밖에 안된 아이에게 참혹한 죽음을 묵묵히 받아들여야 하는 법을 가르치고 있었다.연합뉴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제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