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경남 양산 통도사 서운암, 동자승 얼굴처럼 장독대 반지르르…저마다 된장 품고 "나무아미타불"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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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5-13   |  발행일 2022-05-13 제16면   |  수정 2022-05-13 08:15
고려 충목왕때 충현대사가 창건…삼천불상 모신 거대한 2층 전각 눈길
성파스님 전국 돌며 장독 모으고 1300년 전 비법 그대로 담근 된장 유명
4월엔 야생화 축제 열리고 5월엔 이팝꽃 온통 흐드러져 '꽃암자' 별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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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운암은 '된장암자'로 불린다. 1천300년 동안 스님들이 절 식구들을 위해 장을 담그던 전통 방식 그대로 빚어진 장이 전국에서 모은 5천여 개의 장독에서 익어간다.

매끄럽게 굴곡진 길이 골짜기의 가장자리를 타고 오르면, 정수리까지 청명해지는 솔숲이 커튼처럼 차르르 열린다. 저 아래 골 깊은 곳에는 계류가 흐르고 그 양옆으로 난 밝은 길에는 색색의 연등이 알알이 맑다. 어떤 이는 계곡의 무지개다리에 우뚝 올라섰다. 또 어떤 이는 통도사 일주문 속으로 사라진다. 이제 보이는 것은 완두콩 빛깔의 숲에 가려져 이따금 반짝거리는 계류와, 길과, 담장이나 전각의 작은 조각들이다. 보타암을 지나고 덩치가 꽤나 큰 선원과 율원을 지난다. 그리고 텅 비어 있으나 여전히 경내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산길을 잠시 달리며 서운암(瑞雲庵) 이정표를 찾아 두리번댄다.

◆ '된장암자'로 불리는 서운암

그늘진 샛길로 들어선다. 길 한쪽은 공사 가림막이 긴 벽으로 높다. 수장고를 짓는 중이라 한다. 크릉 크릉 땅을 퍼 올리는 소리가 점점 멀어지는가 싶을 즈음 환한 양지가 열리면서 반드러운 장독들의 도열과 맞닥뜨린다. 그들의 머리 위로 이팝나무 흰 꽃들이 아득히 흐드러졌다. 정신을 차리면 길 가에 작은 연못이 보이고 그 맞은편에 마른 먼지 날리는 작은 주차장과 '서운암 된장'을 판다는 글이 적힌 가게가 있다. 서운암은 '된장암자'로 불린다. 장이 익어가는 독이 무려 5천 여 개다. 이곳에서는 1천300년 동안 스님들이 절 식구들을 위해 장을 담그던 방법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장독대와 연못 사이로 몇 걸음 들어서면 서운암 경역이다. 삼천불상을 모신 커다란 2층 전각이 있고 그 뒤로 선원과 요사 공간이 사립문을 앞에 두고 근엄하리만치 정갈하게 자리한다. "오늘은 열려 있네" 사람들은 열린 사립문 앞에서 기웃대며 활짝 피어난 철쭉꽃을 들여다 볼 뿐 선뜻 마당으로 들어서지 못한다.

서운암은 고려 충목왕 2년인 1346년에 충현대사가 창건했고 조선 철종 10년인 1859년에 남봉대사가 중건했다고 전한다. 옛날에는 초막인 인법당이 전부였는데 근래에 성파(性坡)스님이 현재의 모습으로 일구었다고 한다. 스님은 지난해까지 통도사의 방장(方丈)을 지냈고 올해 한국불교조계종의 제15대 종정(宗正)에 추대됐다.

전국을 돌며 장독을 모으고 옛 방식대로 장을 담그기 시작한 것이 성파스님이다. '신분제가 있었던 시절에도 왕족이나 양반, 상놈 할 것 없이 똑같이 사용했던 게 장독이니 우리에게 이만큼 소중한 문화유산이 어디 있겠느냐'라는 것이 스님의 생각이다. 그렇게 독을 모으고 장을 담근 지 10년이 넘었고 지금 서운암의 재래식 된장은 양산시의 특산품으로 지정되어 있다. 성파 스님은 장을 담그는 일 외에도 도자기, 민화, 글씨, 옻 공예 등 많은 예술 작업을 하고 있다. 전통 천연염색인 쪽(葉) 염색기법도 이곳에서 재현된다. 5·6월이면 서운암 일대는 온통 쪽물들인 천 조각들로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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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운암 주위 야산에는 수많은 꽃나무와 들꽃이 때에 맞춰 피고 진다. 그래서 서운암에는 '꽃 암자' '야생화의 보고' '서운암 꽃길'이라는 다양한 이름과 수식이 있다.

◆ 서운암 꽃길

장독대 오른편으로 난 오솔길로 들어선다. 늙은 모과나무 아래에 금낭화가 낭창거린다. '서운암의 4월은 금낭화, 5월은 이팝나무'라는 말이 있다. '꽃 암자'라는 명칭도 있고 '야생화의 보고'라는 수식도 있고 '서운암 꽃길'이라는 이름도 있다. 이처럼 많은 호칭은 2000년부터 성파스님이 암자 주위 야산에 100여 종의 꽃나무와 들꽃 1만 포기를 심기 시작하면서부터라 한다. 이후 봄부터 가을까지 때에 맞춰 복사꽃, 할미꽃, 벌개미취, 참나리, 붓꽃, 은방울꽃, 비비추, 애기똥풀, 산철쭉, 꽃창포, 하늘매발톱, 황매화, 불두화 등 각양각색의 꽃들이 피고 진다. 금낭화가 피어나는 4월에는 야생화 축제를 열기도 한다.

지금은 확연히 이팝나무의 시절이다. '하얀 눈꽃'이라는 학명처럼 이팝나무 흰 꽃이 사방에 쌓여 흩날린다. 하얗고 따뜻한 꽃눈을 헤치며 산을 오른다. 동그란 연못을 지나 불두화가 피기 시작한 길 끝에 샤스타데이지와 철쭉으로 뒤덮인 언덕바지가 나타난다. 경 읽는 소리가 아주 낮게 들려온다. 자유로운 풍경 소리는 그보다 더 또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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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각 앞마당에는 두 개의 커다란 수조가 있다. 수조에는 국보 285호인 반구대 암각화와 국보 147호인 울산 천전리 각석이 옻칠과 칠기로 재현되어 잠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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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각 안에는 도자기로 만든 대장경이 봉안되어 있다. 도자판의 크기는 가로 52㎝, 세로 25㎝, 정확한 경판의 수는 16만3천장이다.

◆ 16만 도자대장경과 물속의 그림

언덕 위는 아주 너른 대지다. 시야는 통도사 골짜기를 지나 멀고 먼 곳으로 활짝 열려 있다. 거기에 장경각이 자리한다. 사각의 중정을 가진 장경각에는 도자기로 구운 팔만대장경이 봉안되어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층층으로 빼곡히 쌓인 대장경 판에 압도된다. 그들 사이로 난 좁은 통로는 이리 저리 꺾이고 이어져 마치 만(卍)자의 미로를 헤쳐 나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대장경을 도자기로 굽는 일은 1991년부터 시작되었다. 제자 5명, 기술자 20여 명과 함께 밤낮 없이 경을 새기고 뜨겁게 구웠다. 숱한 실패를 거듭했다. 그리고 2013년 장경각 불사를 마무리했다. 도자판의 크기는 가로 52㎝, 세로 25㎝, 정확한 경판의 수는 16만3천장이라고 한다. 길고 긴 구도의 불사에는 남북통일의 염원을 담았다. 중정을 가득 메운 대낮의 빛이 커다란 창의 격자살을 뚫고 들어와 경판의 가장자리를 밝힌다.

장경각 앞마당에는 두 개의 커다란 수조가 있다. 왼쪽 수조에는 국보 285호인 반구대 암각화가 잠겨 있고 오른쪽 수조에는 국보 147호인 울산 천전리 각석이 잠겨 있다. 꼭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하다. 아름다워서 몸서리가 난다. 우주처럼 까만 바탕은 삼베다. 전통 방식으로 직조 된 두꺼운 삼베에 열두 번 넘게 옻칠을 하고 또 삼베를 붙여 옻칠하기를 여러 번 거듭해 도자기처럼 단단한 바탕을 만들었다. 그 위에 나전칠기 기법으로 반구대의 고래와 거북, 천전리 각석의 기하학 무늬와 문자 등을 구현했다. 7천년 전의 동물들이 선명하게 살아 있다. 신석기에서 신라시대로 이어지는 시간이 별처럼 반짝인다. 두 작품 모두 물에 잠겨 있지만 옻칠은 방부성이 강하고 접착력도 강해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 역시 성파 스님의 작품이다. 제작 기간만 꼬박 3년이 걸렸다. '일하며 공부하고, 공부하며 일한다.' 성파스님의 생활신조다. 샤스타데이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풍경 소리는 끊임없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Tip

55번 대구부산고속도로 부산방향으로 가다 밀양 분기점에서 14번 밀양울산고속도로 울산방향으로 간다. 서울주 분기점에서 1번 경부고속도로 부산방향으로 가다 통도사IC로 나가면 된다. 통도사를 거쳐 임도를 따라 1㎞ 남짓 더 올라가면 서운암이다. 서운암에서 장경각까지 임도로 400m 거리다. 차를 타고 올라갈 수도 있지만 '서운암 꽃길'로 오르기를 추천한다. 통도사 입장료는 성인 3천원, 청소년 1천500원, 어린이 1천원이며 주차비는 2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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