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백두대간 자생식물 이야기 〈6〉현호색

  • 나채선 백두대간수목원 야생 식물종자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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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5-13 07:58  |  수정 2022-06-24 07:55  |  발행일 2022-05-13 제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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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채선 (백두대간수목원 야생 식물종자 연구실장)

4월, 백두대간 산지에 올망졸망한 작은 꽃들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백두대간을 보전하기 위하여 설립된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이 식물들을 시작으로 5월 초부터 본격적인 자생식물 씨앗수집에 들어갔다.

바로 현호색 종류다. 현호색류 식물들은 바닥에 깔려 있어 제대로 땅을 살펴보지 못하면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다양한 색깔과 무늬를 지녀 벌들을 유혹하고, 사람을 끌어당긴다. 그 꽃 모양도 너무 아름다워 양귀비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현호색류는 3월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하여 4월에서 5월까지 씨앗을 맺고 이 시기가 지나면 여름을 피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씨앗들이 땅속으로 숨어버린다. 아주 잠깐 만날 수 있는 이 작고 화려한 친구 중에는 우리나라에서만 분포하는 고유종들도 많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현재까지 확인된 현호색류만 해도 25종이 있으며, 그중 11종이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중요한 산림자원이다.

현호색류 식물들은 예로부터 약으로 뿌리줄기를 많이 이용해 왔는데, 특히 진통 효과가 뛰어나 두통이나 치통 등의 진통제로 사용하였으며, 혈액순환을 돕거나 타박상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 '세조실록'에 재미난 일화가 나온다. "세조가 꿈에서 현호색을 먹으면 병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먹었더니 가슴과 배 아픈 증상이 감소하였다. 나중에 신하들에게 꿈 이야기를 하며 현호색의 효능을 물었더니, 한계희(1423~1482)가 말하기를 현호색은 흉복통을 치료하는 약이라고 하였다."

화려한 모양으로 양귀비라고 이름 불릴 정도로 아름다우며, 약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고 하니 정말 팔방미인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봄에 잠깐만 그 얼굴을 보여주니 씨앗을 수집하여 안전하게 보호하고자 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얄밉기 그지없는 친구인 것이다.

현호색류는 씨앗을 맺고 완전히 성숙하면 꼬투리가 자연적으로 열려서 씨앗들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 그래서 씨앗을 맺기 시작하여 윤기가 흐르는 검은색 씨앗이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에 수집해야 하는데 그 기간이 겨우 7일에서 길어야 15일 정도이다. 건강한 현호색류 씨앗을 수집하기 위해 매일매일 산에 올라 조사하고 관찰해야 간신히 그 시기를 맞출 수 있을 정도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의 종자수집팀이 2018년부터 이렇게 고생하며 수집한 현호색류 12종의 씨앗은 현재 수목원 야생식물종자은행에 안전하게 보관되고 있다.

수집된 씨앗은 종자은행에 들어가기 전에 건강한지를 확인하게 된다. 그런 뒤 백두대간 글로벌 시드볼트에 영구저장되거나 전시, 연구 등의 목적으로 활용하게 된다. 종자은행에서 보유 중인 현호색류 중에 우리나라 고유종인 선현호색, 남도현호색, 털현호색, 날개현호색을 대상으로 건강한지를 확인해보았다.

4종은 모두 속이 꽉 차 있는 충실한 씨앗이었으나, 주어진 환경에서 싹을 틔우지는 못했다. 자생식물 씨앗의 대표적인 특성 중 하나인 휴면에 들어간 것으로 보였다. 대부분의 자생식물 씨앗은 원하는 환경 조건이 올 때까지 잠을 자면서 때를 기다려 싹을 틔운다. 현호색류 식물들의 씨앗이 5월에 떨어지지만, 싹을 틔우고 꽃을 보이는 게 이듬해인 것도 이와 같은 이유일 것이다.

이렇듯 우리가 필요로 하는 자생식물을 수집하고, 재배하여 활용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씨앗의 특성을 확인하고 새싹을 틔우기 위한 알맞은 환경 조건을 찾아주어야 한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우리나라 자생식물의 지속 가능한 이용을 위하여 식물마다 적합한 방법으로 씨앗을 수집하고, 오래도록 안전하게 저장하며 싹을 틔우기 위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우리의 이런 노력이 자생식물을 더 많은 사람이 이용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채선 (백두대간수목원 야생 식물종자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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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채선 백두대간수목원 야생 식물종자 연구실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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