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어린이를 노래하다…한국 동요 전성기를 이끈 작곡가 정순철의 삶

  • 최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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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5-13   |  발행일 2022-05-13 제15면   |  수정 2022-05-13 07:36
1920~30년대 '짝짜꿍' '졸업식노래' 曲
外祖父 동학 교주 최시형 가르침 이어
색동회 창립·어린이운동·여성교육 헌신
노래 잘부르는 법·악보 40여곡 등 부록

교정에앉은정순철
교정에 앉아 있는 정순철. '짝짜꿍' '졸업식 노래' 등의 곡을 쓴 동요 작곡가인 그는 어린이 인권을 위해 헌신한 어린이 운동가였다. <미디어창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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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지음/미디어창비/360쪽/2만2천원

"엄마 앞에서 짝짜꿍, 아빠 앞에서 짝짜꿍."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합니다."

'짝짜꿍'과 '졸업식 노래'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노래들이다. 하지만 이 곡을 지은 작곡가 정순철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정순철은 1920~30년대 윤극영, 홍난파, 박태준과 함께 우리나라 4대 동요 작곡가로 불렸다. 하지만 그는 1950년 6·25전쟁 중 납북돼 생사를 알 수 없다.

저자인 시인 도종환은 잊혔던 정순철을 불러냈다. 그는 박사 논문을 쓰는 동안 오장환 시인의 동시와 관련된 자료를 찾다가 정순철이라는 이름을 발견한다. 저자는 "이분의 노래를 그렇게 자주, 그렇게 많이 불렀으면서도 작곡가의 이름을 가르쳐준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어떻게 이렇게 한 사람의 이름이 역사에서 지워질 수 있는가 하는 사실도 저를 놀라게 했다"라고 했다.

정순철이 유명한 동요의 작곡가라는 점, 동학 2대 교주인 해월 최시형의 외손자라는 사실이 그의 눈길을 끌었다. 이에 저자는 정순철의 삶을 되짚어보기로 했고, 이 책을 썼다.

저자는 정순철의 삶을 따라가 보면서 그를 단지 유명한 동요를 지은 동요 작곡가로만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정순철은 1920~30년대 우리나라 동요 전성기를 이끌었고, 어린이 인권을 위해 노력한 어린이 운동가, 여성 교육에 헌신한 교육자였다.

그는 정순철의 삶을 이야기하기 위해 동학에서부터 출발했다. 정순철의 외할아버지가 동학 2대 교주인 해월 최시형이었던 것 외에도 그가 펼친 어린이 운동이 가진 사상의 기원이 동학에 있기 때문이다. 해월은 '내수도문'에서 "어린 자식 치지 말고 울리지 마옵소서. 어린아이도 한울님을 모셨으니 아이 치는 것이 곧 한울님을 치는 것이오니"라고 했다. 이처럼 어린이를 인격적인 존재로 바라봐야 한다는 해월의 사상은 우리나라 어린이 운동의 이론적인 바탕이 됐다.

책에선 정순철이 방정환, 윤극영, 고한승, 진장섭 등과 힘을 합쳐 어린이 운동 단체인 '색동회'를 창립한 이야기가 소개된다. 정순철은 잡지 '어린이'에 필자로 참여해 동요를 작곡해 발표하고 보급했다. 1930년대 초 그는 경성보육학교에 재직하며 동요동극단체 '녹양회'를 만들어 아동극에 사용하는 노래를 만들었다. 광복 후에는 '노래동무회'라는 모임에서 동요를 만들고 보급했다.

저자는 정순철이 남긴 글을 통해 그의 사상과 신념을 보여주려 했다. 동요 작곡가로서 정순철의 면모는 '동요를 권고합니다'라는 글에 가장 잘 드러난다. 이 글에서 정순철은 "노래 중에도 동요처럼 곱고 깨끗하고 좋은 노래는 없다"라며 동요가 심성을 정화하고, 정서를 순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노래 잘 부르는 법'이라는 글에선 음악에 대한 원론적인 생각과 자세를 바르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윤복진의 시에 자신이 곡을 붙인 동요 '옛 이야기'를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를 차근차근 가르쳐준다. 이 글은 동덕여고·무학여고·성신여고와 유치원 교사를 양성하는 학교인 경성보육학교·중앙보육학교에서 음악 교육방법을 가르친 '교육자' 정순철의 생각을 잘 보여주는 글이다.

'어린이날' 하면 가장 많이 떠올리는 소파 방정환과 함께했던 정순철의 모습도 책에서 조명한다. 1923년 전조선소년지도자대회, 1925년 어린이날 기념행사, 1928년 세계아동예술전람회 등 여러 행사 준비과정과 일제의 방해, 행사 선전 과정, 각계각층의 반응 등을 보여주며 당시 어린이 운동사를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책에는 정순철이 작곡한 악보 40여 곡과 연도별로 그의 활동을 알 수 있는 연표·연보를 부록으로 실었다.

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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