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구의 5·18

  • 김균식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 위원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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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5-18   |  발행일 2022-05-18 제25면   |  수정 2022-05-18 08:33

김균식
김균식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 위원회 전문위원)

"대구에 무슨 5·18민주화운동 관련자가 있어요" "광주에서 이사 왔나요" "김대중씨와는 어떤 관계인가요" 하면서 내 몸 전체를 아래위로 쳐다보는 황당한 경우를 한두 번 겪은 게 아니다.

5·18민주화운동은 전두환 외 반란 군부의 권력장악 음모에서 비롯된 내란 행위를 저지하고자 전국적으로 일어난 민주화 투쟁이자 전국민적 저항운동이었다. 대구경북의 1980년 5월투쟁도 그 연장선에 있다.

대구경북에서의 5·18민주화운동에 헌신한 '광주 밖' 지역의 결기에 찬 사람들의 대중적, 자발적 투쟁은 80년 이후 '역사의 천'으로 한올 한올 피어나 80년대의 각종 민주화 투쟁의 싹으로 꽃피웠고, 6월 민주항쟁과 촛불항쟁의 동력으로 살아나 지역 민주화운동의 밀알이 되었다.

당시 국가에 의한 불법적인 연행과 체포, 구금과 폭행, 고문과 구속, 재판 등의 과정에서 노골적으로 자행된 반인권적 범죄행위로 인해 개인의 삶과 공동체적 일상은 송두리째 뿌리 뽑혔고, 그로 인한 고통과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경북 계엄분소 소요자 검거현황'과 '50사단 연행학생'이라는 국가기록원 자료에 의하면 대구경북의 244명 검거자 중에 일반인 56명도 포함되어 있어 그 당시의 투쟁이 학생들만의 투쟁이 아니었음을 설명해 준다.

그리고 검거자 중 81명이나 차지한 계명대생들은 나중에 '소요죄'라는 형법상의 가중처벌 조항으로 6명이 실형을 살고 강제징집, 훈방 등의 형태로 무지막지한 고초를 당한다. 경북대, 영남대생들도 비슷하였다.

기무사 자료에 의하면 5월 초에 이미 충정훈련을 받은 군 병력이 대구에 배치되어 권력장악을 위한 프로그램이 착착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무자비하고 폭력적인 진압과 체포에 의해 대구경북에서도 다수의 5·18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이 발생했고, 그중 77명 정도가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에 따른 정신적 피해배상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지금은 많이 순화되었지만 말 못 할 분노가 원망으로 바뀌어 일상생활 자체가 무리한 이들이 많다.

하나둘 세상을 떠나는 그날의 당신들과 육체적 고통 속에서도 현재를 버티고 있는, 이 슬픈 영혼들과 가족들의 사무치는 고통을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대구경북지역 5·18민주화운동 관련자에 대한 간략한 약사는 지역 민주화운동사에 새로운 정리를 요구한다. 빠른 시기에 제대로 된 조사와 연구에 기반한 대구경북 5월민주화운동사가 정립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들을 향한 경의의 자세로 두 손 모아 평화와 안식을 빌 뿐만 아니라 존경의 뜨거운 눈물을 바치는 바이다.

김균식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 위원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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