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한의 사람과 선(線)] 가냘프고 엷지 않고 풍만하게 쏟아붓는 축제의 계절 '오월'

  • 김채한 전 달성문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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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5-13   |  발행일 2022-05-13 제38면   |  수정 2022-05-13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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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시인 김영랑은 5월을 두고 "두견을 울게 하고 꾀꼬리를 미치게 하는 재앙 달. 더러는 사람으로 하여금 과한 탈선도 하게 하지 않는가"라고 '두견과 종달이'라는 글에서 싱숭생숭한 심경을 읊기도 했다. 달성군 유가 5월의 보리밭 들녘.
5월은 푸르다. 모든 것은 자란다. 직선이면 길어지고 곡선이면 풍성해 진다. 둘 다 에두를 것도 없이 탱글탱글하면서도 부드럽다. 순수서정성의 특출한 글쟁이였던 피천득 선생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로 5월을 노래했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 같이 보드랍다 했으니 이만하면 피부에 닿은 5월의 진의는 충분하다.

故 이어령 장관 저서 '생명이 자본이다'에선 '5월 구멍에 씨앗심는 달'로 규정
모든 것을 짓는 창조의 근원은 집…"짓는다는 건 산다는 것, 산다는 건 짓는 것"
5월에 취임한 새 대통령, 국민을 위한 가장 크고 좋은 집 '좋은 국가' 지어주길
청춘이 열리는 20세, 스물처럼 20대 새 국정 펄펄 끓는 열정으로 임하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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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주왕산 5월의 계곡.
◆축제가 너무 많다

축제들이 많다. 너무 많다. 그렇지만 어느 축제건 축제 아닌 것이 없다. 실은 축제라는 말 자체가 일본의 '마쓰리(祭)'에서 따온 것이라는 속설에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지만 워낙 많이 자주 쓰이다 보니 다들 어쩔 수가 없는가 보다. '잔치'라는 근사한 우리말이 있지만 의미가 좁은듯해 사용이 꺼려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연등회'니 '팔관회'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강원도에서는 '도움이 되게 하다'는 뜻도 담긴 '이바지'라는 말이 축제의 뜻으로 더러 쓰인다니 그나마 다행이라고나 할까.

봄의 여왕 장미 축제, 세계불꽃 축제, 억새 축제, 도자기축제, 인삼 축제, 국제재즈페스티벌, 마임 축제, 커피 축제, 빙어 축제, 산천어축제, 눈꽃축제, 무술축제, 머드 축제, 지평선 축제, 나비 축제, 매화 축제, 반딧불 축제, 야생화 축제, 은어 축제, 송이 축제, 국제탈춤페스티벌, 남강유등 축제, 고래 축제, 국제영화제…. 나열하기도 힘들 지경이다. 상당수는 지방자치 시대를 핑계 삼아 선거 운동하는 것과 구별도 어렵다. 물론 지구촌 축제로도 손색이 없는 축제도 당연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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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의성의 5월의 작약꽃.
◆창조의 달인 이어령

최근 작고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독서와 논쟁으로 점철된 젊은 시절 덕분일까. 문화계의 '창조의 달인'이라는 닉네임이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축소지향의 일본인' 등 수많은 베스트셀러 작가다. 장관 시절 서울올림픽 때 굴렁쇠로 지구인들의 심금을 달궜던 일은 아직도 축제 때면 자주 회자 되는 전설 같은 이야기다. 시와 수필에다 기호학자로도 명성이 자자했다. 정치인이요 행정가로도 손색이 없었다. 말년까지 끊임없이 추구한 주제 '생명과 사랑'은 여전히 그의 독자들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이 장관은 '생명이 자본이다'라는 책에서 1년 열두 달을 생명의 열두 달로 비유하며 5월을 재미있게도 구멍에다 씨앗 심는 달로 규정했다. 특히 창조의 근원을 각지기도하고 때로는 둥글기도 한 집을 소재로 삼고 있음에 번뜩이는 창조의 섬광을 느끼기에 족하다. 집은 '짓다'에서 나온 말이며 그래서 집의 옛말은 '짓'이었다는 것이다. 농사를 짓고, 밥을 짓고, 옷을 짓고, 글을 짓고…, 모든 것을 짓는 창조의 근원이 집이라는 것이다. "짓는다는 것은 산다는 것이요, 산다는 것은 곧 짓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집'들이 모여 가장 큰 집으로 커진 것이 바로 국가(國家)다"라고 정의했다.

5월 10일 새 대통령이 취임했다. 20대 윤석열 대통령이다. 1994년 대구지방검찰청 검사로 검찰에 첫발을 디딘 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 검찰총장 등 검찰이라는 여러 개의 집을 거쳐 국가라는 큰 집에 다다른 것이다. 영국의 낭만파 시인이었던 바이런경이 "나라를 세우는 데는 천년의 세월도 모자라고, 그것을 허무는 데는 한순간으로도 충분하다"고 했듯이 '그때까지 경험하지 못했던'것에 하마터면 무너져 내릴 뻔했던 지난 5년의 역사를 거울 삼아 멋진 정부를 만들 책무가 뒤따른다.

아직도 많은 국민은 대통령이 되기 전 남긴 어록들을 들먹이길 좋아한다.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기 때문에…' '지시 자체가 위법인데 그것을 어떻게 따릅니까?' '검사가 수사권 가지고 보복하면 그게 깡패지, 검사입니까?'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닙니다' '직을 걸어 막을 수 있다면 100번이라도 걸겠다' '혁신은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고, 자율적인 분위기, 공정한 기회와 보상, 예측 가능한 법치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이 희망이 없으면 그 사회는 죽은 거거든요' '핵 맞고 나서 보복하면 뭐 합니까?'. 결과론일까마는 최고통치자의 수련 같기도 하다. 그러나 진짜 수련은 지금부터다. "대다수 대통령은 그들이 받는 충고를 미처 다 사용하지 못한다"는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충고도 잊지 말고, '구미속초(狗尾續貂)'라고 개 꼬리를 담비 꼬리에 잇듯이 쓸모없는 사람에게 관직을 함부로 주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영산삼일민속문화제. 영산쇠머리대기
영산 삼일민속문화제 '영산쇠머리대기'.
◆20대 대통령

20대 대통령의 20이라는 숫자도 기분 좋게 여겨진다. '스물'이라 불릴 때면 천하를 얻을 듯한 기운이 펄펄 넘친다.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누구라도 사랑 할 수 있는 무한대의 가능성이 열리는 나이-20세. 프로야구에 20-20클럽이 있잖은가. 한 시즌에 20홈런, 20도루를 달성하면 얻어지는 영광이다. 1989년 당시 해태의 김성한 선수가 '26홈런 32도루'로 최초의 20-20클럽에 든 후 해마다 몇몇 선수들이 관문을 뚫고 있다. 지난해에는 추신수(SSG), 구자욱(삼성), 에런 알테어(NC) 등 세 명이 32홈런, 20도루로 나란히 이 클럽에 들었다.

임종을 앞둔 노인이 아들들을 불러 포도밭에 금이 숨겨져 있으니 파내서 가지라는 유언을 남겼다. 아들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열심히 포도밭을 뒤지고 파헤쳤으나 금은 나오지 않았다. 가을이 되자 포도밭에는 포도들이 탐스럽게 열리고 이를 본 아들들은 그제야 아버지가 유언을 통해 포도라는 소중한 '경험'을 선물했음을 깨닫는다. 그 경험은 유언으로 남긴 금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실함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것이다. 우화 '포도밭의 보물' 이야기다. 20-20클럽 가입 역시 노력이 뒤따르지 않고는 될 수 없는 일이다. 국정 또한 그러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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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한 전 달성문화재단 대표
◆계절의 여왕 5월

5월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지금. 꽃들은 한창이다. 붉은 철쭉이며 장미며 튤립이 화려하다. 청보리밭도 어느새 꽃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는 시대다. 가정의 달이기도 한 이번 달은 근로자의 날을 필두로 올해 100주년을 맞은 어린이날을 보내고 어버이날과 부처님 오신 날마저 보냈다. 곧 스승의 날이 다가오고 이어 성년의 날이다. 뒤이어 발명의 날, 부부의 날, 이달 마지막 날인 31일은 세계금연의 날이자 바다의 날.

거의 매일 새롭고도 활기찬, 때로는 무겁기도 한 날들이 이어졌던 5월이다. 그런 5월도 월말이 다가오면 산과 들은 신선한 녹음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서정시인 김영랑은 그러했던 5월을 두고 "두견을 울게 하고 꾀꼬리를 미치게 하는 재앙 달. 더러는 사람으로 하여금 과한 탈선도 하게 하지 않는가"라고 '두견과 종달이'라는 글에서 싱숭생숭한 심경을 읊기도 했다. 마치 달콤한 꽃의 향기에 취해 있기에는 풋풋한 녹음의 도전이 너무 생생하다는 어느 작가의 토로와도 닮았다.

이 모두가 순리다. 계절의 순리다. 비록 선거라는 과정을 거치기는 했지만 그 또한 순리질 않는가. '곡불일욕이백(鵠不日浴而白) 오불일검이흑(烏不日黔而黑)'(고니는 날마다 목욕하지 않아도 희고, 까마귀는 날마다 검게 칠하지 않아도 검다)는 장자의 외편 '천운'에 보이듯 물 흐르듯이 흐르는 봄날이다. 일부러 인(仁)이나 의(義)에 사로잡혀 쓸데없이 힘쓸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상책임을 이른 말이다.

그런데 현실은 절대 녹록지가 않다. 가뭄과 강풍과 각종 인재에다 끝나지 않은 코로나의 결말을 예측한다는 것은 거의 무지에 가깝지만 애써 모른 척하려는 심사는 무슨 까닭일까. 무르익은 봄 탓이다. 4월의 소나기는 5월의 백화를 가져온다지만 어떤 이는 6월의 길을 더 아름답게 하기 위하여 앞장서 가는 향기로운 5월이라고 노래했다. 한국 정신사에 최고봉으로 꼽히는 한 사람 최인훈도 '회색인'에서 "나뭇잎 사이로 빠져나와서 잔디에 부딪히는 햇빛도 벌써 달랐다. 봄의 그것처럼 가냘프고 엷지 않고 한결 풍만하게 쏟아붓는 것 같았다"며 5월을 진지하게 찬미했었다.

글=김채한 전 달성문화재단 대표
사진=배원태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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