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문의 행복한 독서]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 전진문 전 대구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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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5-20   |  발행일 2022-05-20 제36면   |  수정 2022-05-20 09:02
좋아하는 일, 할 수 있는 일을 생의 마지막 날까지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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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인플루엔셜·2021·319면·1만6천원)

저자 파스칼 브뤼크네르는 소설가이자 철학자로서 현재 프랑스를 대표하는 세계적 지성으로 손꼽힌다. 올해 74세인 저자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시간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에세이로 차분히 적고 있다. 필자와 비슷한 연배여서 그런지 공감대가 많은 글이었다.

현대의 의학 덕분에 늘려준 것은 수명이 아니라 '노년'이라고 그는 말한다. 수명이 늘어났다고 해서 젊음이 늘어난 것이 아니고, 노년이 연장되어 노화에 대한 공포는 오히려 커진다는 그의 말에 수긍이 간다.

그의 글 속에는 또 이런 구절이 있다. "삶은 늘 영원한 도입부요, 점진적 전개 따위는 끝까지 없다. 우리는 언제나 현재의 문 앞에 떠밀려 있는 상태로만 시간 속에 정주한다. 우리는 시간 속에 머물되 고정 거주지는 없는 노숙자들이다."

우리는 매일 오늘을 맞으며 시간 속에서 떠밀려 가다 보니 어느덧 노년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상들은 진작 죽었을 나이에 우리는 불안하나마 아직 큰 병 없이 살아 있다는 기쁨을 느낀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일,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늦게까지 하라. 어떠한 향락이나 호기심도 포기하지 말고 불가능에 도전하라. 생의 마지막 날까지 사랑하고, 일하고, 여행하고, 세상과 타인들에게 마음을 열어두어라."

저자는 또 '시시한 것의 찬란함'이라는 글에서 참으로 가슴에 와닿는 말을 한다. "일부 예외가 있긴 하지만, 우리 삶은 소설이 아니요, 늘 그날이 그날 같다. 일상에는 기억할 만한 일화가 별로 없다. … 그러나 스쳐 지나가는 시간, 희미한 기쁨조차도 어찌나 다채롭고 풍부한지 똑같은 시간, 똑같은 기쁨은 결코 없다. 하루 동안의 시간에도 오만 가지 가능성이 꿈틀거린다. 광맥에 묻혀 있는 다이아몬드를 캐내듯 그 가능성을 다시 발굴해야 할 것이다. 나이가 어느 정도 들면 연속성이 새로움을 이긴다. 삶의 변화를 꿈꾸기보다는 이미 있는 좋은 것들과 오래오래 함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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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구가톨릭대 교수·〈사〉 대구독서포럼 이사

매일 똑같이 되풀이되는 일상도 깨어 있는 눈으로 보면, 어제와는 전혀 다른 나날인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지하게 바라보면 새롭지 않은 것이 없다. 저자는 요즘의 노년기는 인생의 '인디언 서머'(북아메리카에서 늦가을에 비정상적으로 따뜻한 날씨)처럼 '영혼이 자기 자신과 나누는 대화'를 통해 활동적인 삶과 관조적인 삶을 번갈아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

'하루하루를 삶의 완성처럼 살아라'라는 말은 그만큼 현명하게 살라는 뜻이지만, 최대한 즐기면서 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는 또 "세상은 처음 보듯 바라보고 처음 사는 듯 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보듯 보고 마지막으로 사는 듯 살아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여기서 두 가지의 지혜를 제시한다. 하나는 '유감스러워도 불가피한 것에 동의하는 지혜'와 또 하나는 '가능한 것들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지혜'이다.

디오게네스는 "오직 현재만이 우리의 행복"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현재가 과거와 미래의 틈새에 끼어 답답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양 끝에 과거와 미래가 연결되어 있어서, 인생이 연속체임을 말해주지만 '현재'가 오늘의 중심이 되어 이따금 아름다운 과거를 회상하며, 오지 않은 미래를 즐겁게 기다리며 충실히 살아가는 현재가 되어야 하겠다.

전 대구가톨릭대 교수·〈사〉 대구독서포럼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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