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경남 통영 서피랑, 바람이 천 개의 골목 훑고 오른 언덕…문인 향기 함께 흐르네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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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5-20   |  발행일 2022-05-20 제16면   |  수정 2022-05-20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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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피랑은 '세병관 서쪽 벼랑'을 의미하며 통영성 서문이 있던 곳이다. 서피랑에 오르면 강구안 일대가 훤히 펼쳐진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사진 찍기 좋은 명소다.

서피랑은 수많은 골목의 꼭대기. 골목골목 천 개의 모서리를 후려치며 날아오른 바람이 '퓌-' 휘파람 소리를 내며 흩어지는 언덕이다. 마루에 오르면 강구안을 중심으로 한 통영 전체가 펼쳐진다. 그리고 장군자리에 앉은 통제영 본부 '세병관'이 보인다. 세병관을 정점으로 통영성이 있었다. 그 동쪽에는 동피랑 동포루가, 북쪽에는 여황산 북포루가 번듯하다. 이곳은 세병관 서쪽 벼랑이라 서피랑이다. 서문이 있었고 서포루가 있었다. 성 끄트머리라 '성날'이라 불리기도 했고 서산(西山) 혹은 서문고개라고도 했다.

수군통제영 본부건물 세병관 중심
서쪽 벼랑은 서피랑 동쪽은 동피랑

가장 가파른 벼락당은 음악정원 조성
서포루엔 '돌아와요 충무항에' 노래비
박경리·김춘수·백석 작품 배경되기도


◆ 99계단과 뚝지먼당길

뚝지먼당길 따라 서피랑을 오른다. 옛날 서문 안에 둑사(纛祠)가 있었다고 한다. 사투리로 '뚝사'다. '뚝'은 깃발을 의미하고 '뚝사'는 삼도수군통제사의 깃발 중 최고인 '원수 기'를 모셨던 사당이었다. 먼당은 산마루라는 뜻이니 '뚝지먼당길'은 '뚝사로 가는 멀고 힘든 길'과 같다. 뚝사가 있던 먼당은 일제강점기 공설운동장이 되었다가 지역 일대에 물을 공급하는 배수지가 되었다. 그 즈음 소설가 박경리 선생이 서문고개 근처에서 태어났고 인근 명정골에서 살았다. 이순신 장군을 모신 충렬사가 있는 명정골은 우물이 있어 생긴 이름이다. 박경리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과 김춘수의 시 '명정리(明井里)'가 이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그 우물 앞에서 시인 백석은 통영 처녀 란(蘭)을 몇날 며칠 기다렸다지. 이제는 근대문화유산이 된 배수지의 높은 담벼락에 박경리의 문장들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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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당의 피아노 계단과 200살 넘은 후박나무. 서피랑에서 가장 가파른 벼락당은 음악이 있는 정원으로 변모했다.

서피랑 마루에 선 서포루가 지척으로 보이지만 부러 언덕의 목덜미를 타고 서쪽으로 에두른다. 거기에는 먼당으로 치고 오르는 높은 계단이 있다. 서피랑의 랜드마크가 된 99계단이다. 지금은 알록달록 단장되어 있는 이 계단을 옛날 동네 아이들은 '공포의 99계단'이라 불렀다고 한다. 일대는 속칭 '야마골'이다. 광복이 되고 6·25전쟁이 일어났을 때, 인근에는 상이군인을 치료하는 임시병원이 들어섰고 이곳에는 술집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이들 술집이 매춘에 나서면서 야마골은 집창촌이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수산업이 호황이던 1980년대까지 야마골은 집집마다 붉은 알전구를 밝히고 뱃사람들을 불러들였다. 그러다 뱃일이 차츰 쇠하면서 1990년대 후반 집창촌은 자연스레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여전히 지역민조차 찾기를 꺼려하는 소외된 동네였다.

◆ 음악정원이 된 벼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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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산과 통영항 바다를 향해 서있는 '돌아와요 충무항에' 노래비. 통영 출신 가수 김성술의 이 노래는 이제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더 잘 알려져 있다.

99계단 옆에는 서피랑에서 가장 가파른 벼락당이 있다. 언덕 비탈면이 거의 직각인 벼락당에서 옛날 아이들은 연을 날렸다. 그러다 1999년 8월의 태풍에 벼락당이 무너져 내렸고 이듬해인 2000년부터 3년에 걸쳐 정비되었다. 2007년 동피랑이 철거마을에서 벽화마을로 거듭날 때까지, 서피랑은 변신을 위한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았다. 변화는 2013년부터다. 당시 통영보건소에서 '지역사회 건강조사'를 실시했는데 서피랑 언덕을 끼고 있는 명정동이 가장 낙후되어 있었고 그로인해 소외감과 자살충동을 많이 느끼는 지역으로 조사됐다.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마을주민들은 '건강위원회'를 발족하고 '웃음치료교실'을 열었다. '금연거리'와 '인사하는 거리'를 지정하고, 벽화를 그리고, 거리 곳곳에 예술 작품을 설치했다.

벼락당에는 꽃을 심었다. 이어 2015년에는 피아노 계단을 조성하고 지휘석과 관람석을 만들었다. 벼락당은 음악정원이 되었다. 황소 형상을 한 200살 넘은 후박나무가 음악정원 관람석에 넓은 그늘을 드리우며 위용 있게 서 있다. 피아노 계단 옆에는 흰 사슴 한 마리와 꽃사슴 한 마리가 환영처럼 어슬렁거린다. 벼락당 아래 마을에는 통영출신 작곡가 윤이상의 초등학교 등굣길을 활용한 '윤이상 학교 가는 길'이 조성돼 있다.

◆ 서피랑 공원과 서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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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지먼당길 따라 서피랑을 오른다. 옛날 둑사가 있던 자리에는 일제강점기 배수지가 들어섰고 이제 근대문화유산이 된 배수지의 높은 담벼락에 박경리의 문장들이 흐른다.

서피랑 정상은 공원이다. 공원을 만들면서 집창촌이 들어서있던 언덕 집들을 모두 철거했다. 대숲처럼 빼곡했던 가난한 사람들의 집들과 아주 작은 구멍가게와 만화방, 연을 만들어 팔던 곳이며 아교며 쌀풀을 팔던 곳, 그리고 탁자 몇 개를 두었던 술집도 사라졌다. 대신 도로가 다듬어지고 잔디가 깔리고 꽃과 나무가 식재되었으며 공원 중앙에는 서포루가 복원되었다.

서포루 근처에 '돌아와요 충무항에'를 기리는 노래비가 미륵산과 통영항 바다를 향해 서있다. 통영 출신의 가수 김성술이 작사하고 부산 출신의 피아노 연주가 황선우가 작곡한 노래다. 이 노래는 1970년 음반으로 발표되었으나 그 이듬해 김성술은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났다. 이제 이 노래는 우리에게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통영이 내려다보인다. 전부 보인다. 남쪽으로는 통영항 여객선터미널의 지붕이 보이고 바다 건너 통영의 주산인 미륵산과 미륵산 내 루지 타는 곳, 그 아래 흉물이 된 봉평동 조선소 타워 크레인들이 보인다. 미륵산 케이블카가 보이고, 통영대교가 보이고, 또 멀리 도남동의 호텔과 리조트와 음악당과 요트장도 보인다. 그 앞의 주먹만 한 섬은 공주섬이다.

해는 빠르게 진다. 하나 둘 불 켜진 중앙시장에서는 연신 맛 나는 냄새가 피어오르고 어둑해진 동피랑에는 지금도 가로등 아래 이방인들이 걷는다. 저기 일몰의 여운에 잠긴 명정골에는 박경리가 태어나고 란이 살았던 깊은 골목이 보인다. 또 그 옆으로는 '옛 장군님'을 모신 충렬사와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앉아서 이 저녁 울 듯 울 듯 한산도 바다에 뱃사공이 되어가며' 란을 기다리는 젊은 시인이 보인다. 강구안에는 고깃배들과 거북선이 정박해 있고 방금 오징어잡이 배 하나가 집어등을 켰다. 강구안 건너 남망산에 육중하게 앉아있던 시민문화회관이 짙은 속눈썹으로 눈감는다. 박경리는 밤배가 남망산 모롱이를 돌아갔다고 했는데, 사랑하는 이를 만나러 온 백석은 저 모롱이를 돌아 온 것일까. 생각만 해도 저릿한 통영.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 Tip

5번 중부내륙고속도로 창원방향으로 가다 신안 분기점에서 10번 남해고속도로 함안, 진주방향, 진주 분기점에서 35번 대전통영고속도로를 타고 통영으로 간다. 통영IC에서 내려 통영대교, 한려해상국립공원 통영지구 방면으로 우회전, 미늘삼거리에서 시청방향으로 좌회전해 통영해안로를 타고 가면 강구안에 닿는다. 강구안 서쪽 언덕이 서피랑이다. 사방에 오르는 길이 있으나 99계단 옆 '명정동 공영 주차장'이나 '서피랑 공원 주차장'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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