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 성격과 방어기전

  • 곽호순 곽호순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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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6-14 07:28  |  수정 2022-06-14 07:44  |  발행일 2022-06-14 제16면
자기합리화 모습을 띤 방어기전
사용 방어기전에 따라 성격 결정
'투사'보단 성숙한 '승화' 사용을

곽호순
곽호순 곽호순병원장

여우가 터덜터덜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여우는 지치고 목이 말랐습니다. 때마침 길가 포도나무에 탐스럽게 달린 포도송이를 발견합니다. 먹음직스러운 포도송이를 발견한 순간 여우의 본능은 충동질을 합니다. "저렇게 먹음직스러운 포도가 있나. 마치 나를 위해 준비된 듯하네. 얼른 먹고 싶어, 누가 가로채기 전에." 이 본능적인 충동 덕분에 여우에게는 큰 동기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포도송이가 달린 높이가 만만치 않습니다. 여우의 짧은 다리로는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을 해도 닿을 수 없는 높이에 있었습니다. "네가 아무리 애를 써도 저 높이는 안 돼. 넘볼 수 없는 높이야. 괜한 창피 당하지 말고 가던 길을 가는 것이 좋겠어"라고 여우의 초자아는 여우를 넌지시 꾸짖습니다. 이 현실이 여우는 슬픕니다. 배고프고 목마른 본능을 자기 짧은 다리 탓에 해결하지 못하는 여우는 괴롭습니다. 이러다가 여우의 자아는 상처를 입을 것 같습니다. 이때 여우는 자아가 상처를 입지 않도록 방어를 합니다. 여우는 "그래, 저 포도는 아직 덜 익었어. 분명히 실 거야"라고 생각을 해 버립니다. 그제서야 여우의 자아가 편해집니다. 여우는 이 위기의 순간에 '합리화'라고 하는 방어 기전을 사용한 것입니다. 이제 포도송이를 짧은 자기 다리 탓에 못 먹는 것이 아니라 시어서 안 먹는 것이 돼 여우는 마음 편합니다. 성격이라는 것은 어떤 방어 기전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만약 여우가 "도대체 누가 저 높은 곳에 포도를 열리게 했어. 이건 분명 나만 포도를 못 따먹게 만든 음모야. 왜 나만 못살게 구는 거야"라고 생각을 한다면 이야기는 영 다른 곳으로 흘러갑니다. 여우는 자아가 다치는 것을 방어하기 위해 남의 탓을 해 버린 겁니다. 포도가 저 높이에 달린 것은 누군가의 음모에 의해 이뤄진 일이라고 생각을 하면 자기 책임은 없어집니다. 이때 여우의 초자아가 "네 생각이 맞는 것 같아. 다른 사람들이 너에 대해서 좋지 않게 생각을 하는 것이 분명해. 그러니 포도를 저 높이에 열리게 하지. 이제부터 주변을 경계해"라고 부추기면 여우는 아주 병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여우가 사용한 방어기전을 '투사'라고 부릅니다. 남의 탓으로 돌린다는 뜻이지요. 이런 성격은 충분한 근거 없이 친구나 동료들을 의심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늘 관찰하고 있다고 믿기도 합니다. 심지어 친구의 악의가 없는 말조차도 자기를 위협하는 의미가 있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심해지면 애인이나 배우자를 의심하게 됩니다. 이런 방어 기전은 '편집성 성격'을 만들어 냅니다. 아주 병적인 방어 기전이지요.

만약 여우가 "목마르고 배고픈데 포도는 왜 저렇게 높은 곳에 달린 거야. 나는 도저히 먹을 수 없는데 남 주자니 아깝고. 그래 내가 못 먹을 것 남도 못 먹게 해야지. 나무 밑에 깊은 함정을 파 두는 거야. 누구라도 점프하다 그 함정에 빠지게"라고 남을 해롭게 할 생각에 자기 배고픈 것도 잊어버린다고 해 봅시다. 이쯤 되면 이 여우에게는 현실을 일깨워 주고 도덕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초자아의 힘은 이미 없어지고 만 것입니다. 이런 성격을 우리는 '반사회적 성격'이라 부릅니다. 이들은 사회적 규범이나 도덕적 가치 같은 것은 지킬 마음이 없습니다. 반복적으로 거짓말도 하며 자신의 이익이나 쾌락을 위해서 남을 이용하고 심지어는 사기도 잘 칩니다. 남의 권리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 권리만 찾습니다. 이 역시 병적인 방어 기전을 사용한 까닭입니다. 사회적인 문제를 많이 일으키는 성격이지요.

우리는 여우가 "내 짧은 다리가 안타까워. 그러나 내가 더 노력하면 언젠가는 저 높이에 닿을 수 있겠지. 포도 탓은 아니야"라고 건강하고 성숙하게 방어를 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즉 여우가 '승화'라고 하는 성숙한 방어기전을 사용하기를 기대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쉽지 않습니다. 이렇듯 자아의 방어 기전에 따라 그 사람의 성격이 형성됩니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 다른 것은 사용하는 방어 기전들이 다 다른 까닭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자기의 방어기전은 자기 눈에는 잘 안 보이고 남의 눈에는 잘 보입니다. 감출 수 없다는 뜻이지요.

곽호순 (곽호순 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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