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영양 일월산~대티골~선바위...영험한 기운 서려있는 일월산 동학 재건 기틀 다진 유서 깊은 곳

  • 김찬일 시인 방방곡곡 트레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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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6-24   |  발행일 2022-06-24 제38면   |  수정 2022-06-24 08:10
파노라마 뷰 자랑하는 동봉 일자봉
낙동강 반변천 발원 '큰골' 경관 일품
애달픈 사연 깃든 당집 '황씨부인당'
당리마을 토속신으로 섬기고 치성 올려
동학교주 해월 최시형 은거지 '윗대치'
이후 교도들 찾아 동학포덕 함께 힘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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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 선바위 유원지 풍경.

올 땐 아득한 듯, 와보면 골골마다 설렘의 풍경들. 영양 일월산 정상까지 승용차로 간다. 영양과 일월산은 집과 대문이다. 영양의 벨을 누르면 일월산이 얼굴을 방실 내민다. 일월산은 영산(靈山)이고 명산(名山)이다. 전체 땅의 86%가 산인 영양에서 단연 가장 높고 신령스러운 산이 일월산(日月山)이다. 그날 유월의 해가 더 가깝게 보이는 동봉 일자봉(1천217m)에서 나는 파노라마 뷰를 보고 있었다. 해무 탓인지 동해가 아슴아슴 가물거렸다. 그러나 일망무제의 허공, 그 너머 더 먼 곳까지 실루엣이 그려지면서 그 황홀한 경치에 새된 소리가 났다.

산릉을 걸어 서봉인 월자봉(1천170m)으로 간다. 월자봉 아래 큰골은 낙동강 지류 반변천 발원지다. 여기서 조망되는 경관도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그리고 허공에 붕 떠 있는 것 같은 환각을 느낀다. 대체 나란 누구인가. 자기를 얼싸안아 본다. 자기를 확인할 때 오는 기쁨이 헹가래를 친다.

이제부터 길 따라간다. 군부대 경고문이 있다. 산신각도 보고, 황씨부인당에 멈춰 선다. 황씨부인당이 왜 이곳에 있는가. 당집 유래는 이렇다. '조선조 순조 때, 당리에 살던 우씨(禹氏)와 부인 황씨(본관 평해)는 금실이 좋았지만, 딸만 아홉을 낳았다. 애면글면 아들을 낳지 못하여, 시어머니의 학대가 사나웠다. 이를 견디지 못한 황씨는 일월산에 올라 심마니 움막에서 자살했다. 가족들이 사방 수소문 하였으나 찾을 수 없었다. 그런 황망 중에, 한마을에 사는 이명존(李命存)의 꿈에 황씨 부인이 나타나, 심마니 움막에서 죽었다는 것이다. 이에 남편 우씨에게 알려 시신을 거두게 하였다. 그 후, 다시 현몽하여 당집을 세워주기 부탁하므로 마을사람들은 황씨 부인의 원한을 달래기 위해 현 위치에 당집을 세웠다.'

지금은 당리에 사는 한 여성이 매달 초하루 보름에 당에 올라 기도하며 관리한다고 한다. 때때로 우환, 병, 재수가 없는 집안의 부인들이 이곳에 찾아와 쌀과 과일을 놓고 치성을 드린다. 그러나 당리 마을에서는 이 황씨부인당을 토속신으로 믿으며, 안녕과 풍요는 이 여신(女神)의 영험이라고 생각한다. 외씨버선길 푯말 따라 대티골로 하산한다. 오늘 운전과 안내에 수고하시는 영양지방 문화재위원이신 이상국 선생은 승용차로 내려가시어 대티골 주차장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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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월산 일출 장관.

해와 달의 도장이 찍힌 일월산. 조선 철종 12년(1861), 고산자 김정호는 대동여지도에서 백두대간을 등뼈로 하여 동을 영동, 서를 영서, 남을 영남이라 일컬으며, 여기 일월산이 세 지역 정기가 곰비임비 모이는 곳이라고 감탄하였다 한다. 우거진 숲에 산나물이 흔하디흔한 외씨버선 길을 버선 없는 두 발로 내려온다.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린다. 맑디맑다. 저 새들의 노래에는 가사가 없을까. 아닐 것이다. 인간이 단지 못 알아들을 뿐이다. 숲의 식물군이 뿜어내는 피톤치드가 전신에 뜸을 뜬다. 이렇게 몰입에 풍덩 빠져 걷는 산길은 꿀꺽꿀꺽 쉽게 발목으로 넘어간다.

드디어 대티골 주차장에 도착한다. 이때부터 나는 영양지방 문화에 정통하신 이상국 선생의 명해설을 듣게 되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일월산 어귀에 있는 윗대치는 동학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이 한때 거주했던 곳이다. 당시 그가 살았다는 밭에는 흰 두루마기 같은 비닐하우스가 덩그렇게 있다. 그럼 해월은 언제 왜 윗대치로 왔을까. 최제우로부터 동학의 도통(道統)을 물려받은(1863년 8월14일) 해월. 그는 1864년 최제우가 대구에서 순도(殉道)하고, 그 후 관병의 눈을 피해 보따리 하나 달랑 가지고 숨어다니며 살았다. 1865년 평해, 1866년 울진 죽변을 거쳐 6월에 영양 일월산 자락 용화동의 윗대치(상죽현,현 대티골)로 이주(移住)해 은거하였다. 그해 7월 해월의 가족이 이주하였고, 가을 이후에 김덕원을 비롯한 다수 교도까지 이사하여, 해월은 동학포덕에 힘쓰게 된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 1869년 2월부터 윗대치는 동학교단의 심장부가 되었다. 그럼 해월의 프로파간다는 무엇일까? 사람을 하늘처럼 모셔야 한다는 사인여천(事人如天)이다. 모든 생명, 자연에는 '한울님(하나님 또는 하느님)' 마음이 있다. 즉 사람이 바로 한울님이니 '사람 섬기기를 한울같이 하라' 는 것이다. "나는 비록 부인 어린아이 말일지라도 배울 것은 배우고, 스승으로 삼아 모신다"라고 하여, 인간 존엄과 평등을 뿌리로 한 인간존중정신이 해월의 키워드였다. 그뿐 아니라 하늘과 자연도 한울님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똑같이 모두 존중해야 한다. 이를테면 경천(敬天·하늘 존경), 경인(敬人·사람 존경), 경물(敬物·자연 존경)하라는 것이다.

해월은 더 나아가, 사람이 행하는 일에 귀천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한울님 섬기듯이 얼마나 정성과 참을 쏟느냐에 따라 귀천이 가려진다고 하였다. 해월은 또 "땅 아끼기를 어머니 살 같이 하라"고 가르쳤다. 그러면서 더러운 것을 땅에 함부로 버리지 못하게 하였다. 또한, 이르는 곳마다 틈틈이 나무를 심고, 새끼를 꼬고, 멍석을 내면서, 일거리가 없으면 꼰 새끼를 풀어 다시 꼬았다고 한다. 해월은 잠시도 놀지 않고 일하며 '한울님은 쉬지 않는다'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며, 노동의 신성함을 일깨워 주었다. 지금 개혁의 새 물결을 이루는 '어린이, 여성, 생명, 노동, 환경운동' 등의 얼개가 이미 해월의 사상에서 싹트고 자랐다.

그렇게 한울님의 말씀과 노동으로 빈틈이 없었던 윗대치 시간이 어언 5년이나 흐른 1871년 2월 초, 해월은 영해로 들어가 이필제와 만나 숙의하고 돌아왔다. 이에 3월10일에 이필제와 동학교도 영해민중들이 영해관아로 쳐들어가 부사 이정을 처단하였고, 3월14일 저녁 일월산으로 물러나 해월과 합류했다. 역사적인 거사 영해봉기였다. 그러나 다음날 15일 아침, 영양 현감 서중보가 토벌대를 이끌고 와 일월산의 동학군을 순식간에 포위했다. 바로 치열한 진투가 벌어져 13명이 사살되고 수십 명이 포로가 되었다. 해월과 이필제, 강사원, 김낙균 등 동학의 지도자들은 가까스로 포위망을 뚫고 탈출에 성공, 춘양을 지나 단양으로 피신했다.

이때부터 해월은 수배되어 보따리 하나에 명줄을 걸고 방방곡곡 ㅤ쫓기는 몸이 되었다. 그 당시 영해 봉기 대열에 섰다가, 일월산 전투에서 동학교도 91명이 희생되었다. 그중 영양 출신 동학교도는 8명이었다. 그 명단과 처형은 이러했다. 즉 이군협, 이재관, 최기호, 최준이 등 4인은 효수(梟首·죄인의 목을 베고 매닮)됐고, 신성득, 우대교, 이정학, 백모 등 4인은 물고(物故·죄인을 죽임)되었다.

해월은 36년간 산속의 도피 생활을 했는데, 그간 체포되지 않은 것은 그를 밀고한 자가 없었기 때문이라 한다. 소크라테스, 시저, 예수, 박정희 등 그 세계적인 위인들도 배신과 밀고로 희생되었는데, 해월을 밀고한 백성은 아무도 없었다. 그만큼 해월은 백성들과 숨을 같이 쉬고, 일하고, 믿음으로 굳게 맺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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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일 (시인 방방곡곡 트레킹 회장)

해월이 살았다는 밭의 흙을 한 줌 쥐어 얼굴에 대 본다. 해월의 살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것 같다. 해월은 눈물이다. 어머니 살이고, 백의민족 정신이다. 역사의 현장 대티골을 떠나면서, 왠지 눈물이 주룩 흐른다. 청송으로 넘기 전 선바위 관광지에 잠깐 들른다. 절벽과 강을 사이에 두고 깎아 세운 듯, 선바위의 경관은 입이 벌어지는 장탄식이다. 남이포는 조선 시대 남이 장군이 역적의 난을 평정하였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오늘 트레킹은 생의 한순간 한순간이 모두 한울님과 같이한 것이고, 한울님이 나를 떠날 수 없고, 나도 한울님을 떠날 수 없다는 하나의 호흡으로 숨 쉰 트레킹이었다.

글·사진=김찬일〈시인 방방곡곡 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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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 입암면 신해리의 모전오층석탑(국보 187호).

☞문의: 영양군청 관광과 (054)680-6411, 6422

☞내비주소 : (일월산)영양군 일월면 용화리 산 77-29

☞트레킹 코스 : 일월산 정상 - 대티골 - 동학교도 유적지 - 선바위 관광지

☞인근 볼거리 : 장계향과 두들마을, 남자현과 지경마을, 삼의계곡, 정영방과 서석지, 오일도와 감천마을, 산해리 오층모전석탑, 주실마을, 영양 자작나무숲, 검마산 자연휴양림, 본신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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