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우광훈의 장정일 傳] (6) 클래식 마니아, 장정일

  • 우광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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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6-24 07:27  |  수정 2022-08-12 07:21  |  발행일 2022-06-24 제15면
문학 논하던 그의 작업실엔 항상 클래식 선율이
음반·사운드장비 수집 몰두하던 형
목돈 생기면 가장 먼저 앰프 등 구입
돈 궁할 땐 헌책 팔아서라도 사들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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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장정일 형은 향교 근처에 위치한 2층 사무실에서 작업하고 있었다. 출입문을 열고 15평 남짓한 실내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다양한 서적과 음반들로 양분되어있는 붙박이장이 나의 시선을 압도했다.(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표지에 작가의 인물사진이 큼지막하게 박혀있는 '한길세계문학' 시리즈였다.) 책장에 꽂힌 책들은 대개가 일주일이나 한 달을 주기로 새로운 책들로 교체되었고, 소설보다는 인문서적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당시 형은 책보다는 클래식 음반 수집에 더 몰두하고 있었다. (형은 무엇이든 관심을 가지면 편집광적으로 소유하려 드는 성향이 있는 듯했다.) 독서와 집필과정이 끝나면 곧장 동성로로 달려가 핫트랙스나 단골 음반매장에서 시디음반을 두세 장씩은 꼭꼭 샀다. 용돈이 궁한 날에는 감삼동 자택에 있는 책들을 헌책방에 팔아서라도 음반을 사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 같았다. 따라 서재에 꽂힌 책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었고, 언제부터인가 클래식 음반들이 서재의 대부분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그런 관계로 형의 작업실엔 언제나 클래식의 감미로운 선율로 가득했다. 퇴근 후 형의 작업실에 들러 서로의 근황과 문학에 대해 이야기 나누던 시간, 한 잔의 포도주와 함께 필라델피아 크림치즈가 듬뿍 발린 식빵을 나눠 먹던 시간, '중국에서 온 편지(작가정신)'(난 개인적으로 이 중편소설을 형의 소설 중 최고라고 생각했고 현대문학 2002년 4월호에 '아버지의 아들, 혹은 권력의 비정함'이란 제목으로 짧은 감상문을 발표했다.)의 시나리오 작업에 관해 이야기 나누던 시간에도 항상 클래식 음악은 우리들의 귓전을 맴돌았다.(참고로 형은 대중에게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클래식 마니아다. 록에서 재즈로, 재즈에서 다시 클래식으로 기호가 변해가는 것은 흘러가는 세월과 함께 결코 피할 수 없는, 아니 더없이 자연스러운 순리인가 보다 라고 생각했다.)

꽤 많은 돈의 원고료가 생기는 날에는 형은 제일 먼저 턴테이블과 앰프, 그리고 스피커와 시디 플레이어를 구입했다. 그것만이 (내가 아는) 형의 현시적인 저축이었다. 구입한 무언가를 되팔았을 때 제값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이 오디오라는 것이 형의 논리였고 경제였다. 따라 형은 다양한 앰프와 스피커를 소유하고 있었고 작업실에 있는 오디오는 몇 주를 간격으로 자택에서 가져온 또 다른 제품으로 교체되었다. 간간이 값비싼 진공관 앰프가 놓여 있기도 했는데 조그마한 유리관 속에서 따스한 음색에 맞춰 불빛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이 섬세한 기기는 그 무엇보다도 아름답고 신비로웠다.

사족 하나.

형과 클래식에 관한 글을 쓰고 있으니 문득, 예전 장정일 형이 나에게 건넨 이런 말이 떠오른다.

"솔직히 작법서나 비평서 같은 것들은 소설을 쓰는 데 큰 도움은 안 되죠. 소설가가 되려면 소설을 많이 읽어야죠. 한 20년 정도 꾸준히 읽으면 나도 괜찮은 소설가가 될 수 있겠죠?"

그 당시, 난 형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런 상상을 했던 것 같다.

야구를 20년간 하는 것과 야구를 20년간 보는 것, 그리고 야구이론서를 20년간 읽는 것, 이 세 가지 중 어느 게 더 야구에 가까운 인생일까? 솔직히 고백건대 난 두 번째 인생에 더 큰 매력을 느낀다. 팝콘과 코크를 손에 든 채 환호와 야유를 쏟아내고, 때론 경기가 느슨해질 때면 녹색그라운드를 바라보며 가벼운 노래를 읊조리는 그런 여유로운 삶. 하지만 나란 무지몽매한 인간은 그런 삶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알면서도 한 손엔 억척같이 글러브를 끼고, 주심에게 건네받은 공의 실밥상태를 조심스레 관찰한 다음, 포수의 오른손에서 흘러나오는 사인의 의미를 일일이 체크 분석한다.

아, 나도 정말 형처럼 하루 종일 소설만 읽고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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