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응상의 ‘천 개의 도시 천 개의 이야기’] 프랑스 니스(Nice)와 에즈(Eze)…샤갈·마티스 등 예술가들이 사랑한 세계적 휴양 도시 '니스'

  • 권응상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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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7-01   |  발행일 2022-07-01 제36면   |  수정 2022-07-01 08:08
툴롱~망통 40㎞ 이어진 지중해 해안
환상적 경치에 부호·스타들에 인기
니스엔 호텔·정원 등 위락시설 즐비
구시가지 랜드마크 7m 아폴로 동상
마세나 광장 가운데 자리 이목 끌어
니체의 산책로라 불리는 에즈의 길
매일 산비탈길 걸으며 작품 영감 얻어

니스
언덕 위에서 내려다 본 니스 시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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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응상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남프랑스 지중해 연안에는 아름다운 도시가 즐비하다. 그 가운데 프랑스 해군함대 기지인 툴롱에서 칸, 앙티브, 니스, 에즈, 모나코 등을 거쳐 이탈리아 국경과 가까운 망통까지 약 40㎞ 이어진 지중해 해안을 '코트 다쥐르(Cote d'Azur)'라고 부른다. '푸른 해안'이라는 의미의 이곳은 프랑스 북서부 노르망디 지역의 캉(Caen)에서 르 아브르(Le Havre)까지 약 40km 이어진 대서양의 '코트 플뢰리(Cote Fleurie: 꽃의 해안)와 꼭 닮았다. 코트 플뢰리가 근대 문학과 예술의 발상지로 소박하면서 고요한 전원 풍경을 가졌다면, 이곳은 화려하면서 열정적인 에너지가 넘친다. 코트 플뢰리가 모파상, 모리스 르블랑, 보들레르, 에릭 사티, 구스타브 쿠르베, 외젠 부댕, 클로드 모네, 요한 바르톨트 용킨트 등을 불러들였다면, 코트 다쥐르는 알퐁스 도데, 프레데릭 미스트랄, 르누아르, 니체, 파블로 피카소, 마르크 샤갈, 앙리 마티스를 키워냈다. 그리고 이곳은 아름다운 경치와 좋은 날씨 덕분에 세계 부호들과 유명 스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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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스 마세나 광장의 아폴로 동상.

명품숍이 동네 가게처럼 늘어선 생트로페와 영화제로 유명한 칸을 지나 세계 유명인사들이 사랑하는 도시 니스를 만났다. 기원전 350년경에 그리스 식민지였던 마르세유의 포케아인들이 세운 이 도시는 그리스의 승리를 기념해 니케라는 승리의 여신 이름을 붙였다. 1세기경에 로마인이 정복하여 번창한 교역기지가 되었으며, 10세기에는 프로방스 백작가가 지배했다. 1388년에는 사보이 백작가의 지배에 들어갔고, 17~18세기 동안 수차례에 걸친 프랑스의 침공에도 불구하고 1860년까지 사보이의 지배를 받았다. 그 후 1860년 토리노 조약에 의해 프랑스에 양도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니스는 코트 다쥐르에서 중심 도시이자 세계적인 휴양 도시로, 이탈리아 통일의 영웅인 주세페 가리발디가 태어난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세계적인 휴양도시답게 호텔, 별장, 카지노, 정원, 산책로 등 위락시설이 잘 정비되어 있다. 인접한 칸이나 모나코처럼 각종 행사가 자주 열리는데, 매년 사순절 전날까지 2주 동안 열리는 니스 카니발은 세계적인 축제이다. 특히 이 도시는 화가들의 별장이 많았던 것으로 유명하며, 마르크 샤갈과 앙리 마티스의 보석 같은 작품이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니스의 샤갈 미술관은 마크 샤갈의 작품 중 종교에 관한 작품만을 전시해 놓은 미술관이다. 1966년 샤갈 부부가 프랑스 정부에 작품을 기증한 뒤 그 작품들을 모아 1973년에 개관했다. 마티스 미술관은 1917년에서 1954년까지 니스에서 생활한 야수파의 거장 마티스를 위한 미술관이다. 회화와 조각, 소묘 등 그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마세나 광장 근처에 주차하고 먼저 구시가지를 둘러보았다. 니스 구시가지는 니스역 앞쪽에 자리한 곳으로 다소 복잡한 미로처럼 얽힌 거리이다. 골목마다 기념품을 판매하는 작은 상점들과 음식점 등이 늘어서 있었다. 구시가지의 중심은 마세나 광장이다. 이 광장은 니스 카니발을 비롯한 중요 행사가 열리는 니스의 중심광장이다. 광장 한가운데 태양의 신 아폴로 동상과 분수가 우뚝 서 있었다. 7m 높이의 이 동상은 구시가지의 랜드마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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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스의 살레야 꽃시장.

마세나 광장에서 오페라극장을 지나니 꽃시장과 벼룩시장이 들어서는 살레야 광장이 나타났다. 광장으로 모이는 좁은 골목마다 앙증맞은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수줍게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이 광장에는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아침 열리는 살레야 꽃시장으로 유명하다. 살레야 시장은 지중해의 온갖 좋은 기운을 품은 듯한 과일과 꽃들이 화려하게 반겼다.

살레야 시장을 지나 왼쪽 해안으로 가다 보면, 니스를 조망할 수 있는 케슬힐이 있다. 이곳은 11세기에 지어진 니스 성이 있어서 캐슬힐로 불린다. 캐슬힐에 서니 니스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해변을 따라 산책로가 이어져 있는데, 3.5km 길이의 '프롬나드 데장글레', 즉 '영국인의 산책로'이다. 예전 영국 왕족이 길을 가꾸고, 100여 세대의 영국인이 이곳에 정착해 살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먼 영국에서도 따사로운 햇살이 비치는 니스의 해변은 휴양을 위한 안식처였다. 그러나 이 산책로에는 최근 아픈 기억도 있다. 2016년 7월14일, 프랑스 혁명 기념일 축제를 즐기던 시민들에게 테러리스트가 차량으로 돌진하여 86명이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다.

산책로가 감싸고 있는 니스의 해변은 거제도 몽돌해수욕장처럼 조약돌로 뒤덮여 있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파란색 물감을 잔뜩 풀어 놓은 듯한 짙푸른 바다와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이 그림을 만들고, 말갛게 빛나는 햇살 아래 조약돌과 파도가 음악을 연주하는 듯했다. 니스의 자연이 만들어내는 예술이 황홀하게 여행자를 위로해주었다. 마티스는 니스에 대해 '모든 게 거짓말 같고 참지 못할 정도로 매혹적이다'라고 했다. 그 말을 알 것도 같았다.

이곳은 니체에게도 위안이 되었던 모양이다. 그의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니스 지역에 머물며 쓴 불후의 명작이다. 니체는 1879년부터 건강 악화로 따뜻한 남프랑스와 이탈리아 도시를 돌며 요양을 했다. 1882년부터 1887년 사이에는 겨울마다 니스와 에즈에 머물렀다. 니체는 이 시기에 가장 왕성한 저술 활동을 했다. 당시 니체를 창작에 몰두하게 한 힘은 실연의 고통과 이곳의 아름다운 자연이었다.

'내 눈빛을 지우십시오.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귀를 막으십시오. 나는 당신을 들을 수 있습니다.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고, 입이 없어도 당신을 부를 수 있습니다. 나의 양팔이 꺾이어 당신을 붙들 수 없다면, 나의 불붙은 심장으로 당신을 붙잡을 것입니다.'

22세의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36세의 루 살로메(1861~1937)에게 건넨 사랑의 노래다. 38세의 니체는 21세의 루 살로메를 처음 만나 '우리가 여기에서 다시 만난 것은 어느 별이 도운 것일까요?'라는 느끼한 인사말로 자신의 연정을 고백했다. 니체를 허무주의자로, 릴케를 최고의 음유시인으로, 프로이트를 독보적인 정신분석가로 만든 여인이 루 살로메이다.

1882년 니체는 로마에서 루 살로메를 처음 만났다. 그의 친구였던 부유한 철학자 파울 레의 소개로 만나 첫눈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셋이서 피크닉을 갔다가 니체는 잠시 그녀와 단둘이 걷게 되었다. 그는 이 짧은 순간을 '내 생애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꿈 같은 시간'이라고 했다. 루 살로메와 두 남자는 정신적인 관계를 맺으며 함께 동거했다. 그녀 앞의 니체는 조급했고 들떴으며 상상할 수 없이 비철학적이었다. 사랑에 서툴렀던 38세의 니체는 21살의 고혹적인 그녀에게 청혼했다. 그러나 거절당했고, 절망한 니체는 지질하게 "작고 나약하고 더럽고 교활한 여자, 가짜 가슴이나 달고 다니는 구역질 나는 운명"이라고 저주를 퍼부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당신이 내게 준 행복은 어느덧 사라지고 없어요.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값진 고통을 가지고 있잖아요"라며 너무나 시적으로 받아친다. 루 살로메의 완벽한 승리였다. 이별의 상처를 가득 안은 채 니체가 치유차 찾아온 곳이 이곳 니스 지역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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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즈의 골목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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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즈의 호텔 에자성.

니체는 특히 에즈를 좋아했다. 에즈는 니스에서 10km 남짓 떨어져 있는 조그만 중세 마을이다. 걸으면서 사유하기를 좋아했던 니체가 즐겨 다녔던 에즈의 길은 '니체의 산책로'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는 매일 에즈의 산비탈 길을 걸으면서, 바다를 바라보며 영감을 얻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저술에 몰두하며 실연의 고통을 씻어내었다. 이렇게 보면 이 책은 루 살로메라는 여인과 니스 지역의 자연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라고 할만하다.

에즈 빌리지로도 불리는 에즈는 13세기 로마의 침략을 피해 산꼭대기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해 마을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고, 14세기에는 흑사병을 피해 많은 사람이 몰려들면서 지금의 형태로 자리 잡았다. 이때부터 이곳은 시간이 멈춰버린 듯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해발 427m 위의 바위산 절벽 위에 자리한 에즈는 독수리가 둥지를 튼 모습과 흡사해 '독수리 둥지'라 불리기도 한다.

에즈 빌리지 골목길에는 꽃으로 예쁘게 장식한 집과 예쁘게 단장한 기념품 가게, 수공예품을 만들고 판매하는 공방, 멋진 작품이 전시된 다양한 갤러리들이 즐비하여 눈을 즐겁게 했다. 골목마다 숨어 있는 개성 있는 장식의 레스토랑이나 카페도 한참 눈길을 붙잡았다. 이곳의 호텔 에자성(Chateau Eza)은 작지만 격조 높은 호텔이다. 스웨덴의 윌리엄 왕자가 고급호텔로 개조한 곳으로, 400년 역사의 전통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등산하듯이 골목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마을 꼭대기의 '열대정원'이 있었다. 정원도 볼만하지만, 정원 위에서 바라보는 지중해 연안의 탁 트인 전경은 골목과는 다른 해방감을 선사하였다.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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