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총리가 잘 보이지 않는 이유

  • 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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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6-29   |  발행일 2022-06-29 제26면   |  수정 2022-06-29 06:56
尹대통령 '도어 스테핑' 소통
내각 2인자 韓총리 가려져
국정과제는 충분한 토의 후
정부 안팎 일관성 있게 발표
총리가 국민 앞에 설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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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도 어느새 두 달이 되어 간다. 아직도 국무위원 두 자리를 채우지 못했고 내각 바깥의 각종 위원회 등을 둘러싼 신구 권력의 힘겨루기가 진행 중인 가운데, 각종 경제지표는 연일 심각한 위기의 도래를 예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는 예상보다 훨씬 일찍, 매우 뚜렷하게 한 가지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국정 전반에서 내각의 2인자인 국무총리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차적으로 그 원인은 정부가 출범한 초기 단계임에도 국정 전반으로 보면 대통령을 둘러싼 주변적인 이슈들에 정치적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이나 청와대의 개방 문제, 대통령 부인의 활동 방식과 범위 문제, 집권 여당 대표의 징계 논란 문제 등은 모두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국회를 장악한 거대 야당이 지방선거 패배 이후 심각한 내홍에 빠지지 않았다면, 윤석열 정부의 이러한 모습은 시민들에게 심각한 우왕좌왕으로 비쳤을 것이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바로 이때 국무총리가 나서서 국정의 방향과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고, 내각과 관료집단 안팎에서부터 조직을 다잡은 뒤 집권 여당에 대해서 긴장감을 가지도록 요구해야 한다. 사실 오랜 기간 고위 관료로 일했으며, 이미 10여 년 전에 노무현 정부의 국무총리를 역임했던 한덕수 국무총리가 이 점을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국정 전반에서 그의 모습은 솔직히 있는 듯 없는 듯한 정도이다. 무엇 때문일까.

형식의 측면에서 보자면, 윤석열 대통령이 언론과의 소통 방식으로 선택한 이른바 '도어 스테핑'을 한 가지 이유로 꼽아도 될 것 같다. 최근 언론의 행태는 매일 오전 출근길에 대통령이 기자들의 질문에 내놓은 답변을 초점으로 논조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통령이 출근하지 않는 주말에는 대통령 부인을 중심으로 이벤트가 벌어지고 있으니, 일주일 내내 윤석열 대통령이 언론의 중심에 놓이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국무총리가 적극적으로 나선들, 언론의 조명을 받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대통령이 언론과의 소통에 주력하는 것은 바람직하나 매사 그렇듯 과유불급이다. 특히 복합적이고 까다로운 사안일수록 최종결정권자인 대통령의 한마디는 정책의 결정이나 집행에서 운신의 폭을 크게 제약할 소지가 있다. 지금까지는 정권 초기라 모두가 낯설지만, 정치권이나 관료집단 안팎의 야심가들에게 윤석열 대통령의 정책 결정 패턴이 읽히고, 대통령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핵심 참모들이 파악되고 나면, 자신들의 뜻대로 '도어 스테핑'을 활용하려는 은밀한 시도들이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생각하여 역대 정부에서 실천했던 소통의 방식은 대체로 국정의 지표와 과제들을 정부 안팎에서 충분한 토의를 거쳐 확정한 뒤 이를 통해 정부 안팎에서 메시지의 일관성을 기하는 것이다. 형식이 아니라 내용의 측면에서 해당 정부에 기대할 것과 기대하지 말 것을 확실히 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굳이 모든 사안에 대통령이 나서지 않아도, 국무총리와 국무위원들이 이미 확정된 국정의 지표와 과제 범위 안에서 상당한 자율권을 가지고 언론과 국민 앞에 나설 수 있게 된다. 대통령은 자연스럽게 국정의 지표와 과제에 포함되지 못했거나 새롭게 발생한 현안들을 중심으로 더 폭넓은 소통을 시도하게 된다.

윤석열 정부의 출범 초기 국무총리가 잘 보이지 않는 이유를 나는 형식의 측면보다는 내용의 측면에서 찾고 싶다. 국정의 지표와 과제들이 분명하지 않거나 설득력이 떨어지거나 시의적절하지 않다면 그것부터 손보아야 한다. 아침마다 벌어지는 대통령의 '도어 스테핑'에서 화끈한 속보들이 쏟아지는 현상은 정권 초기 몇 주의 기억으로 간직하는 것이 좋겠다.
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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