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우광훈의 장정일 傳] (7) 1류 작가의 2류 소설...예술에 파묻혀 살던 형, 키치작가의 등장 반겼다

  • 우광훈 소설가
  • |
  • 입력 2022-07-01 07:17  |  수정 2022-08-12 07:21  |  발행일 2022-07-01 제15면
다양한 미술작품·서적 소장했던 그
"난 1류작가의 2류소설이 재밌던데…"

2022062801000864700035361

2002년 봄, 당시 장정일 형은 김영사와 계약한 삼국지 집필에 몰두하고 있었다. 따라 책상 위에는 삼국지와 관련된 다양한 자료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책상과 맞댄 가림벽에는 일본 고단샤(講談社)에서 출판된 「LIES/噓(내게 거짓말을 해봐)」와 흑백 인물사진이 조화롭게 전시(정확한 표현이다)되어 있었다. 가림벽 넘어 2평 남짓한 좁은 공간은 마치 베란다처럼 남북으로 길게 이어져 있었는데, 형은 이곳에서 잠을 자거나 비디오를 봤다.

책상 왼쪽에는 최근에 구입한 듯한 다양한 월간지와 신간 단행본들이 마치 작은 동산처럼 쌓여 있었고, 출입문 오른쪽에는 구간 문예지를 받침대 삼아 몇몇 미술작품들이 멋스럽게 전시되어 있었다. 형은 가끔 감삼동 자택에서 이곳 작업실까지 자전거로 출퇴근했다. 내가 너무 힘들지 않느냐고 물으니 운동도 되고 교통비도 아낄 수 있으니 더없이 좋다고 했다.

형은 이강소씨의 판화작품과 프랑스 체류시절에 구입했다는 유화작품들을 가리키며 나에게 미술작품 소장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었다. 하지만 그런 쪽으로 문외한이었던 난 건성으로 맞장구만 쳤다.

형의 작업실에서 우린 문학과 관련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다음과 같다.

『형 : 아, 저걸 언제 다 읽지? 글 쓴다고 저 재미있는 걸 읽지도 못하고. 참, 광훈씨, 한 가지 물어볼게요. 광훈씨는 1류 작가의 1류 소설 재미있던가요? 난 재미없던데. 음… (다양한 서적들로 가득한 책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래, 저 작가의 책. 아무리 읽어 봐도 난 잘 모르겠던데. 광훈씨는 이해되던가요?

나 : 아뇨. 저도 잘…. (난 형 앞에만 서면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해 버린다)

형 : 그래요…. (형이 버릇처럼 내뱉는 말이다) 좀 전에 광훈씨가 이제 머리 그만 굴리고 가슴으로 쓰는 글, 그렇게 많은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내가 영화 '제리 맥과이어'를 예로 들며 한 말)고 했는데 그거 결국 많이 팔렸으면 한다는 말 아닌가요? 그런데 그거 나는 어려울 거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광훈씨의 지금 스타일은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이뤄진 것이거든요. 스타일 그거 쉽게 안 변해요. 그래요…. (인상을 찌푸리며 잠시 머리를 긁적이더니) 난 1류 작가의 2류 소설. 2류 작가의 2류 소설. 그게 더 재미있던데…. 아, 물론 난 3류 작가지만. (다시 서재를 둘러보더니 책 한 권을 가리키며) 참, 저 책은 재미있던가요?

나 : 잘….

형 : 요즘 흔히 사용하는 신세대 작가라는 말, 난 참 싫어합니다. 그건 너무 가치중립적이잖아요. 범세대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말이고. 난 2류 감성을 지닌 1류 작가군의 등장이라고 하는 게 더 옳다고 생각해요. 컬트적이다, 컬트적이다 하는데 그게 뭡니까? 결국 2류라는 말이잖아요. 2류적인 정서나 분위기를 의도적으로 담아 그럴듯하게 빚어놓은 예술. 그러고 보니까 키치(kitch)가 되는데 요즘 세대들은 그런 걸 더 좋아한다는 겁니다. 그런 게 대세가 되었다는 이야기지요.

나 : 1류 작가의 2류 소설… 2류 작가의 2류 소설….

형 : (서재를 다시 훑어보다) 참, 광훈씨 야구 좋아하죠.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 「핀치러너 조서/고려원」을 나에게 건네며) 이거 한 번 읽어 보세요. 오에 겐자부로 너무 재미있습니다. 난 이거 (서재에 꽂힌 오에 겐자부로 전집을 가리키며) 다 읽었는데. 아, 또 읽고 싶어지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기자 이미지

우광훈 소설가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