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용준의 閑談漫筆] '1'자의 의미

  • 하용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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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7-01   |  발행일 2022-07-01 제22면   |  수정 2022-07-01 06:44
1자를 일등·남보다 앞선 등
일등주의, 일류의식이 아닌
최초, 맨먼저 개념으로 보면
여유있는 낭만적 인생될 것
7월1일 처음처럼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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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10대 학창 시절에 친구들끼리 서로의 기호와 취향 등에 관한 질문을 자주 주고받곤 하였다. 그중에서 아라비아 숫자 0부터 9까지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숫자가 뭐냐는 질문도 있었다. 그럴 때면 늘 1자를 꼽았다. 그러면 질문을 한 사람이나 주위의 다른 친구들은 내가 항상 1등을 추구하는 것으로 무턱대고 단정하여 빈정대는 말들을 뱉어내었다. 나는 그게 아닌데 하며 의아한 얼굴이 되었지만 구태여 변명은 하지 않았다.

그때 친구들의 관념처럼 학교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일등 문화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시험을 치면 누가 수석을 차지했는가가 가장 큰 주목거리고, 국제적인 스포츠 경기가 열릴 때면 누가 금메달을 따는가에 온 중계방송이 흥분한다. 은메달이나 동메달은 '따는 데 그쳤다'는 식의 멘트가 주류를 이룬다. 2, 3등은 관심사에서 이내 멀어진다.

1등을 무리하게 추구하고 1등만을 크게 대접하는 비이성적인 문화가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여지는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라고 할 수 없다. 일등주의는 비교를 통하여 지나친 경쟁을 조장하기 마련이고 그것은 사회적으로 큰 폐해를 낳는다. 서열에 의하여 사회적 지위와 신분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기에 다분히 일류의식이 생겨나고 권력과 금력을 거머쥔 상류층이 형성된다. 그러므로 룰을 어기고서라도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의식이 조장된다. '모든 것은 결과가 말한다' '세상은 일등만 기억한다' '일등이 아니면 다 꼴찌나 다름없다'는 식의 언어 습관과 개념 인식이 팽배한다. 교묘한 편법·탈법·불법이 성행하고 온갖 부정한 방법이 동원된다. 공정과는 거리가 멀고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들이 허다하게 일어난다. 주지하다시피 그것은 대부분 모범을 보이고 귀감이 되어야 할 지식층에서의 일이다. 오죽하면 혼자 빨리 가기보다 함께 멀리 가야 한다는 말까지 강조되고 있는 현실이겠는가.

학창시절 때부터 1자를 좋아해 온 이유는 단순히 '일등'에 집착해서라거나 '남보다 앞선' 개념 때문이 아니다. 우선 그 글자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시원한 느낌이 있어서다. 아라비아 숫자에 있어서도 그러하거니와 표의문자인 한자의 一(일)도 단순하면서 힘차다. 또 다른 이유는 1자의 의미가 '첫' 또는 '최초'의 개념을 가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첫눈' '첫돌' '첫인상' '첫사랑' '첫 만남' '첫 번째' 등 '첫'이 가지는 설렘보다 더 큰 설렘이 있을까. 또 1자는 '맨 먼저'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 누구보다도 먼저 무언가를 시도해 보는 것, 또는 무엇을 이루어 내는 것 등은 얼마나 근사한 느낌을 주는가. 더 나아가 1자는 '오직'이라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오로지' '유일'의 개념도 숙연한 감흥을 자아내게 한다. 이러한 여러 가지 뜻에서 1자를 좋아해 왔다. 1자의 의미에서 '일등' '남보다 앞선' '오직 나 한 사람만'이라는 등의 개념을 떠올리기보다 '첫' '최초' '맨 먼저' '오로지' 등의 개념을 상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여유롭고 낭만적인 인생이 될 것인가.

오늘은 올해의 또 다른 절반이 시작되는 7월1일, 양력 칠월 초하루다. '초'의 개념 역시 '새로운 시작' '처음'의 의미와 상통한다. 그동안 이런저런 핑계와 게으름 탓에 망설이고 미루어왔던 것들을 마음 단디(?) 지어먹고 처음 시작하기에 좋은 날이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으니 올해의 남은 절반을 더하면 한 해를 다시 사는 셈이 된다. 그 무엇을 시작하든 일등을 목표로 하기보다 매번 처음처럼 꾸준히 하는 걸 목표로 삼는다면 아무런 부담감이 없다. 바로 오늘 시작하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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