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걸 교수의 오래된 미래 교육] 왜 삶을 꿈이라고 하는가?

  • 정재걸 대구교대 명예교수
  • |
  • 입력 2022-07-04 07:26  |  수정 2022-07-04 07:34  |  발행일 2022-07-04 제13면

2022070101000036200001101
정재걸 (대구교대 명예교수)

깨달은 사람은 깨닫지 못했을 때의 삶을 꿈이라고 한다. 왜 그런가? 깨닫지 못한 사람들의 삶이 '생각 속의 삶'이기 때문이다. 뇌과학자들이 밝혔듯이 우리의 생각은 이미 자신이 만든 틀 속에서 작동한다. 우리는 자신이 만든 각자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 생각 속의 삶이란 꿈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연출자이자 배우이고 또 관객이다.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알고 또 그 꿈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것을 자각몽이라고 하는데 이는 현실에서 자신의 생각을 알아차리는 것과 유사하다.

생각은 에고의 작용이기 때문에 실재가 아니다. 에고는 우리가 만든 가상의 집이다. 그 가상의 집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생각이 하는 유일한 일이다. 에고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더 이상 생각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다. 생각에 부림을 당하지 않고 생각을 부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에고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죽은 나뭇가지나 타고 남은 재, 혹은 돌멩이가 된다는 뜻이 아니다. 에고에서 벗어난 사람은 귀를 활짝 열고 모든 소리를 빠짐없이 듣는다. 눈을 활짝 뜨고 모든 사물을 놓치지 않고 본다. 피부를 활짝 열어 아주 가느다란 감촉도 빠뜨리지 않는다. 완벽하게 깨어 있는 것이다. 완벽하게 깨어서 느끼지만 그 느낌에 휘둘리지 않고, 그 빛이나 소리에 휘말리지 않는다.

'나'가 작동하는 방식을 면밀히 살펴보면 끊임없이 일어나는 생각이 바로 '나'를 만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생각하는 나는 진짜 내가 아니다. 그것은 파도일 뿐이다. 진짜 나는 그런 생각을 알아차리는 자다. 파도는 끊임없이 일어났다가 스러지지만 참나인 바다는 항상 고요하고 평화롭다.

생각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데이비드 호킨스가 '놓아버림'에서 말하듯 모든 생각은 결국 저항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생각의 에너지는 저항이다. 생각은 꿈 밖의 실재를 경험하지 못하게끔 마음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다. 우리는 참나의 존재를 부정하기 위해 생각을 한다. 흑판에 분필로 작은 점을 찍으면 우리의 눈은 흑판이 아니라 그 점에 집중하게 되어 있다. 생각은 흑판에 찍은 점과 같다. 우리 마음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처럼 꾸미기 위해 온갖 방법을 이용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감정이다. 생각이란 감정이 생긴 까닭을 설명하려는 마음의 합리화에 불과하다. 생각이 감정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생각을 만들어내는 주체다. 따라서 감정을 놓아버리면 당연히 생각으로부터도 벗어날 수가 있다.

꿈 밖의 세계는 항상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 문제는 우리에게 이 세계를 알아볼 수 있는 눈이 없다는 것이다. 태양은 항상 빛나고 있지만 에고에 사로잡힌 나는 그 밝은 태양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없다. 진정한 사랑, 내가 없는 사랑[無我之愛]이 바로 눈을 만들고 또 눈을 뜨게 한다.

〈대구교대 명예교수〉

기자 이미지

정재걸 대구교대 명예교수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사회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