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칼럼] '달의 뒷면'

  • 박치영 DGIST 에너지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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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7-05   |  발행일 2022-07-05 제22면   |  수정 2022-07-05 06:53
박치영(DGIST 에너지공학과 교수)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쯤, 우연한 기회에 일본의 나오시마라는 섬을 방문하였다. 그곳은 유명하고 감각적인 작품과 건축물이 많기에 사진을 즐겨 찍을 수 있는 곳이지만, 그곳에서 필자를 가장 전율하게 했던 작품은 아무것도 찍을 수 없는 것이었다. 빛의 예술가인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1943~)의 일련의 전시 중에 우리는 어떤 나무로 된 집의 입구로 갔다. 그리고 줄지어 있던 관람객들은 서서히 암흑의 방으로 이끌려 갔다. 아무것도 인지하기 어려운 그곳에서 흘러나온 낮은 목소리는 우리를 앞으로 걸어가도록 하였다. 누구도 잡을 수 없었고, 소리를 낼 수도 없었다.

급격한 상황 전환으로 인해 순간적으로 상실된 인지 감각과 더불어 우리 뇌 속에서는 두려움이라는 신호를 양산하여 한 걸음조차 내딛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발밑에 무엇이 있을지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 어둠의 공간이었기에 모두가 미지의 어둠 속에서 일종의 공포를 각자의 마음속에서 극대화하고 있을 때쯤, 어렴풋이 나타난 미세한 불빛은 관객들에게 광활한 우주 속에 있는 놀라움과 환희 비슷한 감정을 전달하였다. 불이 완전히 켜졌을 때, 그 공간의 단순함에 허탈한 웃음을 낼 수밖에 없었다. 이는 결코 글과 사진으로 담을 수 없는 작가의 '달의 뒷면'이었다.

아마도 어느 정도 인지가 된 공간에서 불이 꺼진 경우라면, 그 정도의 공포는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그 공간이 어떠한 구조이며 어떠한 물체가 있는지 짐작은 할 수 있고, 최소한 발밑을 내디뎌도 문제가 없으리라는 경험에서 오는 신뢰가 있다면 불이 꺼진다 하더라도 문제해결 능력이 발휘될 것이다. 이러한 가정을 해보자. 당신 아이의 눈을 감기고, 어두운 공간에 데려가서 이렇게 말해보자. "지금 네가 서 있는 위치에서 왼쪽으로 1m 그리고 앞으로 2m 가면 출구에 도착해. 왼쪽으로 30초 정도 계속 힘을 가하면 열리는 문이 있어." 경험이 많은 어른의 짐작으로는 해결이 쉽겠지만, 아이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책 속의 수학 문제로는 풀리겠지만, 아이가 처한 상황에서는 해결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이처럼 아이의 뇌와 어른의 뇌는 다르다. 그러므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다양한 감각과 사고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제임스 터렐의 '달의 뒷면'처럼 눈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어슴푸레한 빛을 통해 느껴지는 무한한 상상력은 아이들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우리는 교육 현장에서 이러한 사실을 세심하게 고려하지 않고 경직된 학습과 행동을 강요할 때가 있다. 교과 과정 속 많은 내용이 실체를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학생들에게 이해와 해결 능력만을 요구하고 있다. 지적이고 정서적인 성장에 필요한 길잡이가 되는 무한한 가능성의 빛 대신 요구하는 답만을 맞히도록 유도하는 학습만을 반복하다 보니 아이들의 사고는 정형화되면서 생각을 멈추게 된다. 이런 어둠은 인간을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게 한다. 지구에서 '달의 뒷면'을 쉬이 볼 수 없는 것처럼 어른의 시각만으로는 아이들을 이해하기 어렵다. 단지 믿음과 포용이라는 따스한 빛으로 아이들이 공동체적 안도감을 느끼고 무한한 가능성을 찾아가게 하는 건 어떨까?
박치영(DGIST 에너지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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