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백두대간 자생식물 이야기 〈10〉배롱나무

  • 송치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시드볼트운영센터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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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7-08 07:40  |  수정 2022-07-11 09:21  |  발행일 2022-07-08 제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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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치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시드볼트운영센터 주임)

내 고향 안동에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병산서원이 있다. 중앙고속도로를 달려 남안동IC를 거쳐 내달리면 배롱나무꽃으로 유명한 명소가 나타난다. 바람에 하늘하늘 가지를 흔들며 손님을 맞이하는 배롱나무의 모습은 참으로 인상 깊다.

병산서원은 서애 류성룡 선생과 아들 류진을 배향하는 곳으로,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 고장에 내려왔을 때 공부하는 유생들을 위해 하사한 토지에 서당을 세웠다. 조선 시대 류성룡 선생이 지금의 장소로 옮겼고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나, 제자들이 업적과 학덕을 기리고자 '존덕사'를 짓고 향사하여 서원이 되었다.

서원 주변 배롱나무꽃 아래에서는 여름을 만끽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찜통더위 속에 생명력이 강한 잔디마저 가뭄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배롱나무는 강렬한 태양 아래서도 화사하게 꽃을 흐트러뜨린다.

배롱나무는 더위가 시작된다는 소서(小暑)에 꽃망울이 나오고 꽃을 틔울 준비를 한다. 꽃이 거의 없는 7월에서 9월까지 여름철을 붉게 물들이는 귀한 꽃나무다. 나무껍질을 손톱으로 긁으면 잎이 떨린다고 하여 '간지럼나무'라고도 하며, 꽃이 오랫동안 피어 있어 '목백일홍' 혹은 '백일홍 나무'라고도 불린다. 흔히 알고 있는 백일홍은 백일초라고도 하는 풀꽃이며, 배롱나무와는 전혀 다른 개체이다.

나무껍질은 연한 붉은 갈색으로, 얇은 조각으로 떨어지며 흰무늬가 나타나 줄기마저 아름다운 자태를 보인다. 잎은 계란을 거꾸로 세워놓은 듯한 모양으로 잎 안쪽은 윤기가 나며 뒷면은 잎맥에 털이 나는 형태다.

배롱나무는 만성형 나무라고 하여 성장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양지바른 곳을 좋아하여 키우기 쉬운 편에 속한다. 대기만성의 성질과 키우기 쉬운 탓일까. 선비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 서원 근처에 종종 식재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내가 다녔던 학교에도 배롱나무가 많았다. 키우기가 쉬운 나무이면서도 수형이나 꽃이 매우 아름다워 매년 여름 배롱나무를 지나며 꼭 한 장씩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있다.

배롱나무꽃은 흰색, 분홍색, 자색 등 다양하게 피고 공원이나 산책길, 가로수 등 어디서나 친숙하게 만날 수 있다. 이곳 국립백두대간수목원과 그리 멀지 않은 경북 영주시에 있는 부석사에도 배롱나무가 있다. 수많은 계단을 땀 닦으며 오르면 그 고생을 칭찬이라도 하는 듯 배롱나무가 반겨준다. 한 칸씩 계단을 오를 때마다 내리쬐는 태양과 숨을 틀어막는 습도가 나를 힘들게 하지만 일단 오르고 나면, 산이 켜켜이 쌓여서 푸른 명암과 채도가 그림처럼 어우러진 풍경이 나타난다. 푸른 기와지붕과 녹색 빛을 내는 나무, 그 뒤로 병풍처럼 펼쳐진 산세는 오직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아득히 펼쳐진 산등성이와 시원한 기와지붕, 배롱나무가 겹겹이 쌓여 아름다운 수채화를 그리고 있다. 한여름에 다른 식물과 꽃은 땡볕에 시들어가고 제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들 때 배롱나무는 100일이나 화사한 꽃을 유지하여 사람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올여름 단조로운 녹색 사이에 빨강 한 숟가락 곁들여 보는 것은 어떨까.
송치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시드볼트운영센터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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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치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시드볼트운영센터 주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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