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성주 초전면 뒷미지 공원, 초록연잎 사이사이 곱게 핀 홍련…더위도 잠시 잊게 하는 '한여름의 선물'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 |
  • 입력 2022-07-29   |  발행일 2022-07-29 제16면   |  수정 2022-07-29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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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미지는 1970-1980년대까지 연꽃 자생지였다고 한다. 이후 오랫동안 기능을 상실한 채 방치되어 있다가 2013년 연꽃 가득한 생태 공원이 되었다.

성주 폭염 경보, 비닐하우스 내 작업 금지. 성주에 들어서자마자 안전 안내 문자가 온다. 어찌 알았을꼬. 창밖 환한 하늘을 희한하게 휘 둘러본다. 길가에 늘어선 붉은 배롱나무꽃 너머로 비닐하우스의 물결이 호수 같다. 희한한 일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지만 농부의 들은 매번 새롭고 놀랍다. 성주읍의 가장자리를 슬쩍 스쳐 북향하다 초전·용성 이정표를 따라 들어간다. 길옆으로는 비닐하우스들이 강처럼 흐르고, 이따금 저마다의 긍지를 지닌 살림집들과 주인을 찾는 박공의 빈 창고 그리고 한갓진 자리를 찾아 들어온 작은 공장이 나타난다. 햇살은 너무 뜨거워서 하늘은 그을린 회색빛이다. 그 속에 샛노란 참외 모양의 버스정류장이 성격 좋은 모습으로 서 있고 그 뒤로 초록과 분홍과 백색의 점묘화 같은 연지가 펼쳐진다.

연밭 가르며 나무데크·구름다리
못 가운데 육각정자 멋지게 들어서
나들이객 '포토스폿'으로도 인기
연못서 500m 떨어진 후산마을
마을 입구 둔덕진 자리 정자쉼터
정자 옆엔 500년 넘은 떡버드나무
쉬었다 가라는 듯 거대한 그늘 드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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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미지 둑길 입구에 '내 고향 못안'이라 새겨진 마을 표지석이 서 있다. 조선시대 배광진 선비가 처음 들어왔을 당시에도 마을 앞에 큰 연못이 있었다고 한다.

◆ 연잎 가득한 뒷미지 공원

매미 울음이 소낙비처럼 쏟아진다. 대기는 생각만큼 뜨겁지 않다. 연못 때문인가. 연못을 가득 채운 연잎 때문인가. 연못은 그리 크지 않아서 가장 뜨거운 연꽃 시절을 가까이서 충분히 누릴 만하다.

연못의 북쪽에는 주차장과 화장실, 작은 공연장,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다. 연못의 서안에는 황톳길이 둘려 있고 남쪽의 긴 둑에는 벚나무가 점점이 서 있다. 연못 속에는 나무 데크길이 나 있다. 데크길은 연밭을 가르며 사방으로 흩어진다. 그 가운데 육각정자가 멋있게 자리한다. 멀리 한 그루의 검푸른 미루나무가 푸른 하늘을 찌르며 찬란한 고요를 퍼뜨리고 있다. 포플러, 양버들, 사이프러스와 같은 이름들을 불러본다. 저 나무의 수종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어떠한 이름에도 몸을 흔들며 대답할 것만 같다.

정자 앞에 흰 원피스를 입은 아이가 뒤꿈치를 한껏 든 채 연꽃을 내다보고 있다. 정자 안에는 몇몇 여인이 난간에 기대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그녀들 옆에는 기울어지고 부서진 테이블이 아무렇지도 않게 주저앉아 있다. 정자 곁에는 푸른 활엽수와 배롱나무 몇 그루가 그늘을 드리운다. 연분홍과 하얀 연꽃은 싱싱한 잎 위로 제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고 있다. 연꽃은 언제나 현실 같지 않다. 연꽃은 은행나무만큼이나 그 기원이 오래되었다. 최초의 인류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탄생보다 훨씬 이전인 약 1억3천500만년 전 백악기 때 이미 수련 속(屬)이 꽃피우고 있었다고 한다. 그때 한반도는 호수와 습지로 가득했다. 습지만 가면 나는 백악기의 사람처럼 느껴진다. 학계에서 쯧쯧 혀를 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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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미지의 연꽃. 연밥통이 많다. 2013년 공원을 조성할 때 백련, 홍련, 수련 등 7천여 본의 연을 심었다.

이곳은 1970~1980년대까지 연꽃 자생지였다고 한다. 그러다 태풍이 온 후 못에 토사가 쌓였고 연꽃은 말라 죽었다. 농업용 저수지 기능도 상실했다. 바로 옆에는 축사가 있어 여름이면 냄새가 진동했고 폐수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연못은 방치되어 있었다. 2000년대에 들어 이곳을 재생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무산되었다. 결국 2013년에 데크길과 구름다리를 놓고 정자를 들였다. 그리고 백련, 홍련, 수련 등 7천여 본의 연을 심고 토산 어종인 잉어 1만5천 마리를 방류해 생태공원으로 조성했다. 당시에는 엄청나게 욕을 먹은 모양이다. 군수공원이니 하는 비아냥이 그 후로도 몇 년간 지속됐다.

싱그러운 연두색의 연밥통이 엄청나게 많다. 연밥통이 품은 연자육은 연두거나 거뭇하게 저마다의 속도로 익어가고 있다. 연꽃이 수정되면 연밥통이 되고 하나의 연밥통에는 수십 개의 연자육이 맺힌다. 연자육이 다 익으면 물밑으로 떨어지고 다시 진흙 속으로 파고 들어간다. 다 익은 연자육은 돌처럼 딱딱해서 석련자(石蓮子)라고 부른다. 단단하고 높은 밀도 때문에 진흙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진흙 속에서 2천년을 버틴단다. 오늘의 연꽃 중에 혹 30년 전의 연자육이 싹을 틔운 건 없을까. 오늘의 연꽃에게 부름을 받아 저 진흙 속에서 꿈틀대는 과거의 연자육은 혹 없을까.

◆ 못안마을, 후산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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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산마을 입구 둔덕진 자리에 정자쉼터가 자리한다. 정자 주위에는 크기가 어마어마한 몇 그루 나무가 둘러서 있는데 마을 어르신은 500년 넘은 떡버드나무라 했다.

미루나무에서 연못을 가로질러 둑에 오른다. 용산들, 못밑들을 가득 채운 비닐하우스가 멀리멀리 남쪽으로 흐른다. 둑길 입구에는 '내 고향 못안'이라 새겨진 마을 표지석이 서 있다. '못안'은 성주 초전면 용성리의 자연부락이다. 조선시대 배광진(裵光鎭)이라는 선비가 입향한 곳으로 당시 마을 앞에 큰 연못이 있다 하여 못 지(池) 자와 안 내(內) 자를 써서 '지내' 또는 '못안'라 불렀다고 한다. 못 때문에 못안으로 갈 수 없어 산을 넘어 다녔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연못의 이름은 뒷미지다. 뒷미라는 이름은 용성리 자연부락인 후산마을에서 비롯됐다. 후산은 조선 정조 때인 1777년에 박재춘(朴在春)이란 선비가 처음으로 들어와 형성된 마을이다. 마을 뒤로 병풍처럼 둘러선 산세가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형이라 하여 뒤 후(後)자와 뫼 산(山)자를 더해 '후산(後山)'이라 했다고 한다. 후산을 우리말로 바꾼 것이 뒷미 또는 뒤미다. 연못의 역사는 어쩌면 아주 오래된 것일지도 모른다.

후산마을은 연못에서 500m쯤 떨어져 있다. 마을 입구에 도로를 사이에 두고 후산마을회관과 둔덕에 올라선 정자쉼터가 자리한다. 정자 주위에는 어마어마한 몇 그루 나무가 둘러 서 있다. 이끼 덮인 줄기는 저마다의 장엄으로 솟았는데 가지들은 서로를 어루만지며 하나의 거대한 그늘을 만들고 있다. "어, 떡버드나무. 한 오백 년도 넘었을걸. 옛날에 아흔 넘은 어르신이 요만한 아이였을 때도 지금과 같은 모습이었다고 해. 그 어른 돌아가신 지도 십 년이 넘었네." 동네 어르신의 말씀이다.

주변은 모두 하우스밭이고 도로와 고저 차이가 크게 없는 수평의 땅이다. 나무들이 서 있는 자리만 둔덕이다. 오래된 나무의 자리가 오래전 이 땅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초전면은 푸른 초목이 울창한 너른 들판을 개척해 십만리(十萬里)들이라 이름 짓고 곡식을 기르는 평야로 가꾸었기에 풀 초(草) 자와 밭 전(田) 자를 더해 초전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후산마을도 예전에는 고논이라 발이 푹푹 빠질 정도였다고 한다. 차차 경지정리로 성토작업을 해가며 현재의 환경을 만들었다. 도로 역시 울퉁불퉁해 차도 오가지 못했고 자전거라도 탈라치면 수차례 펑크 나기가 일쑤였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피난처로 딱 좋다'고 했다. 후산마을은 읍이나 면 소재지 모두 4㎞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지금도 피난처로 딱 좋다. 연꽃이 피어나는 연못이 있고, 어마어마한 나무들이 있고, 단내 나는 밭이 강처럼 흐르고, 무엇보다 깨끗하고 고요한 분위기가 있다. 갑자기 연못에서 분수가 솟구친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 Tip

달구벌대로 30번 국도를 타고 성주로 간다. 대황 교차로에서 성주읍 방향 오른쪽으로 나가 대황 로터리에서 3시 방향, 경산교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2㎞ 정도 직진하면 오른쪽에 초전, 용성 이정표가 있다. 우회전해 1㎞ 직진하면 참외모양의 못안(뒷미지) 버스정류장이 있고 그 뒤로 뒷미지 연밭이 펼쳐진다. 버스정류장 옆 저수지 둑에 '내 고향 못안'이라 새겨진 마을 표지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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