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시론] 영부인의 박사학위 논문을 읽으며

  • 유영철 전 영남일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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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8-17   |  발행일 2022-08-17 제27면   |  수정 2022-08-17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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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철 전 영남일보 편집국장

27년간 기자생활을 하고 50초반에 퇴직한 나는 기약 없는 한가한 시간을 가졌다. 평소 놀러 오라던 인도네시아 후배한테 전화를 했다. 그간 5~6일의 휴가도 못 내다가 한 달 정도 있겠다고 했다. 그 후배는 대뜸 잘렸는지 물었다. 부부동반으로 원 없이 다녀왔다. 그 후 오라는 곳은 부산 동아대 신문방송학과였다. 잘 알던 노교수님이, 와서 대학원 공부를 하라는 것이었다. 시간강사 겸, 그렇게 5~6년 석사와 박사를 하며 신문칼럼을 연구했다.

요즘 계속 김명신의 박사학위 논문이 문제가 되고 있다. 지명도가 없는 일개인 '김명신'이라면 신문과 방송의 기삿거리가 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는 개명하여 현재의 '김건희'로 대통령의 부인, 영부인의 신분이 됐다. 뉴스의 특성상 유명인의 사소한 것도 뉴스가 되는 것이다. 더구나 비정상적인 부분이 해결(조치)되지 않으면 속보성(續報性)으로 더욱 조명을 받는다.

나는 그 분야에 대해 잘 모르고 관심도 없지만 그래도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RISS(학술연구정보서비스)를 통해 찾아 읽어보았다. 2007년 국민대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김명신의 박사논문은 '아바타를 이용한 운세콘텐츠 개발 연구'이다. 심사위원 5명은 이 논문을 박사학위 논문으로 인준했다.

이 박사논문은 어느 교수가 지적한 대로 각주가 30개뿐이다. 각주가 많다고 좋은 논문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출처를 밝히며 논리적 이해와 설득을 돕기 위한 기제인 각주가 있어야 할 데에 없다면 충실하지 못한 논문이 된다. 특히 '이론적 배경, 선행연구 고찰'과 같은 챕터에서는 반추의 노력의 결과이기도 한 각주의 용도가 높아진다. 그런데 이 논문은 각주가 미흡했다. 참고문헌도 마찬가지였다. 논문의 '서론' 부분 '연구의 필요성, 연구목적, 연구범위 및 방법'의 서술에서는 문구의 중복, 술어의 중복이 많았다. '서론'의 각 절 글머리에 서론 격인 도입부 없이 바로 '이 연구의 범위 및 방법은 다음과 같다'로 시작, '첫째…, 둘째…, …여섯째…'식으로 붙여넣었다. 한 문장인데 '~ 관심을 갖는 것은 ~ 관심을 가져왔다'와 같은 비문(非文)도 있었다. 능동과 피동, 접속사, 줄바꾸기도 제대로 정리돼 있지 않았다. 특수대학원이더라도 논문의 기본은 준수해야 하는데, 논문작성법을 숙지하고 쓴 논문 같지 않았다.

박사학위 논문만 보았을 때 독창적인 주제 설정도, 돋보이는 노력도, 논리적 전개도, 품격있는 문장도 모두 벗어난 수준이었다. 여기에다 연구부정행위인 표절문제를 얹으면 더 이상 논의할 이유가 없게 된다. 숙명여대 구연상 교수는 자신이 2002년 발표한 논문('디지털 콘텐츠와 사이버문화')의 상당 부분을 이 논문이 표절했다며 분노했다. 이 논문 제2장 제1절(디지털콘텐츠와 운세콘텐츠)은 3~4쪽 정도인데 "100% 똑같았다"고 했다. 외부 포함 5명의 교수들이 이런 논문을 어떻게 심사하여 통과시켰는지 의문이다.

그녀의 1999년 숙명여대 석사논문 '파울 클레(Paul Klee)의 회화의 특성에 관한 연구'도 표절률이 매우 높다고 보도됐다. 김명신의 논문에 대한 표절 의혹이 번지면서 학위를 수여한 해당 대학의 교수와 학생들도 재조사를 촉구하며 진실규명을 외치고 있다.

박사학위 석사학위를 수여한 대학이나, 학위를 받은 본인이나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넘었다. 현재의 영부인이 그 이전에 정상적인 노력으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면 존경할 만한 일이나 표절에 의한 취득이라면 치욕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아무런 것도 없이 침묵하고 있다.유영철 전 영남일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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