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종근씨 '어느 순례자의 길' 달구벌문예대전 최우수상 선정

  • 정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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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9-21 18:02  |  수정 2022-09-22 18:07  |  발행일 2022-09-22 제2면

대구시가 주최하고 영남일보가 주최·주관한 만학도 평생학습 수기 전국공모전 '2022 달구벌 문예대전'에서 채종근씨의 '어느 순례자의 길'이 최우수상으로 선정됐다. 우수상에는 권순이씨의 '일흔 일곱에 대학을 졸업하다'와 이영혜씨의 '오리 새끼의 비상'이 뽑혔다. 장려상에는 강현옥씨의 '연밭', 김교환씨의 '좀 늦으면 어때', 김주태씨의 '지구 반대편으로 간 어머니의 가르침' 등이 선정됐다. 최우수상 수상자에게는 대구시장상과 상금 100만원, 우수상은 영남일보사장상과 상금 70만원, 장려상은 영남일보사장상과 상금 50만원이 각각 주어진다. 


만학도의 글쓰기와 학습을 주제로 평생학습을 장려하기 위해 마련된 이번 문예대전에는 대구경북뿐 아니라 서울·경기·인천·대전·광주 등 전국에서 작품이 쇄도했다. 또 호주 등 해외에서도 응모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홍억선 심사위원장은 "뒤늦게 학업을 이어간 만학도의 이야기부터 직업능력, 인문교양, 문화예술교육에 참여한 사연까지 다양한 분야의 수기가 응모됐다"며"만학의 일반적인 기준을 잣대로 평가해 수상작을 선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평생학습시대에 생생하고 진솔한 사연이 접수돼 의미가 깊었다"고 말했다.

 

정지윤기자 yooni@yeongnam.com

 

‘달구벌 문예대전’최우수상 수상작
<어느 순례자의 길>
채종근 

 

작금에 코로나가 창궐하는 동안, 한문 공부를 계속해오던 나는 더욱 폐쇄적인 자세가 되어 방에 틀어박혀 책만 보고 있었다. 갑자기 아이들이 다시 학교에 들어가 보지 않을 것인가 하는 제안을 하였다. 대학원을 한번 가보라는 것이다. 예전 직장생활 중 야간대학원에 잠시 적을 두기는 했으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흐지부지되고 말았던 그 대학원 공부를 다시 해보라니? 아마도 아이들은 점점 나이 들어가며 책만 좋아하는 나를 세상으로 끌어내는 방법으로 대학원을 생각했나보다. 그렇게 한 곳에 적을 두게 되면 사람도 만나고, 집에서 책만 파는 것보다 운동도 될 것이며, 시쳇말로 치매 예방도 된다고 자꾸만 꼬드겼다.
옆에서 가만히 듣던 아내는 딸들의 제안에 불같이 화를 내었다.
“다 늙어서 애들 한 푼 보태주진 못할망정 늙어가는 마누라 돌보고 집안일이나 도울 것이지 대체 무슨 짓이람?”
아이들이 돌아간 뒤 아내의 엄청난 반대에 부딪혔다
‘내 주제에 무슨?’
잠시 끓어올랐던 열정이 순식간에 사그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곧 전화벨이 다시 울렸다.
“엄마는 어떻게든 설득해서 대학원 보내드릴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반대하는 아내와 부추기는 딸들 사이에서 내 마음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갈팡질팡하였다. 통화내용을 몰래 들어보니 아내는 내 학업 문제로 딸들과 밤새 심하게 다투었던 모양이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결국 딸들의 강행으로 그해 가을 경북대학교 대학원 한문학과에 무사히 입학하게 되었다. 면접 때 교수가 지원 서류를 쭉 훑어보더니 연세가 많으신데 인터넷이나 비대면 수업 등을 따라올 수가 있겠냐며 다소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요즘 학생들 수업하는 정도의 컴퓨터 활용능력은 이미 충분히 갖추고 있었던 터라 그런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결국 몇 단계 면접 과정을 거친 후 대학원 합격증을 당당히 딸들에게 보여주니 아빠가 떨어지는 게 더 이상하다며 앞으로 독하게 공부할 각오나 다지라 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뒤늦게 다시 가방을 메고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막상 입학해보니 교수들이 다 나보다 나이 적은 사람들이며, 입학 동기생으로 20, 30대가 다수 있었고, 그나마 다행인 것은 60대가 두어 명 있었다. 그러나 나이를 의식하며 그런 부분에서 기가 죽는다는 것 또한 옳지 않다고 자신을 추슬렀다. 젊은 나이의 사람은 학위를 따서 대학이나 연구소 같은 곳에 적을 두는 희망을 품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무엇인가?
중국 소설 <이슬람교도의 장례식>이란 책에 나오는 그 70대 노인처럼 가는 데까지 가보는 거다. 그 소설의 첫 장면이 꼭 지금과 같은 여름날 저녁이었다. 북경의 어느 이슬람 가족의 집에 일흔이 넘은 노인 하나가 어린아이 하나를 데리고 나타난다. 그 두 사람은 아라비아의 메카까지 순례 가는 길이었다. 그 집에서 쉬다가 다시 출발할 때 아이를 그 집에서 맡아달라고 하고 노인은 혼자 떠난다. 자신은 순례를 가다가 죽을지도 모를 일이며, 그렇게 되면 이 아이가 갈 곳이 없어진다는 것.
아마도 나의 공부란 것이, 혹은 내 나이에 누군가 어떤 공부를 하고 있다면 그 사람의 생각이란 아마도 그 순례 가던 노인과 비슷한 심정이 아닐까. 가는 데까지 가는 것. 이왕 시작했으니 모든 과정을 순조롭게 이행하는 것이 좋겠으나 그렇게 해서 학위를 받은들 무슨 세속적인 큰 의미가 있겠는가. 그 메카까지 걸어서 순례 여행 중이었던 노인처럼 한 발짝 한 발짝 앞으로 전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한문이, 나의 공부가 얼마나 높이 오를 수 있는지 자신을 가늠해 보는 것이다.

나와 한문 공부와의 인연은 태어나면서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내 할아버지께서는 인근에서 존경받는 한 분의 선비이셨으며, 나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천자문>과 <동몽선습>을 익히기 시작했다. 처음 배울 때는 그냥 기계적으로 읽고 외워댔다.
당시에 내 동생들, 사촌들, 육촌들 그리고 마을의 아이들까지 많은 사람이 할아버지에게서 한문을 배웠으나 다 자신의 공부로 이어지지 못했다. 오직 나 한 사람만이 아직도 한문책을 붙들고 있으니 스스로 생각해도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어쨌든 나는 누가 권하지 않아도 겨울방학이면 할아버지에게서 한문을 배우는 것을 하나의 정례적인 일로 하였는데 <명심보감>을 거쳐 <소학> 외편을 배울 무렵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그때 비로소 한문은 정말 해볼 만한 공부라는 생각을 하였던 터였으나 할아버지마저 돌아가시고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취업, 그 후 계속된 이직으로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통에 한문 공부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 30대 중반에 비로소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되어. 저축도 쌓이고, 셋집을 전전하지 않아도 괜찮을 우리 집이 마련되었다. 당시 한창 방송통신대학이 붐을 일으키고 있었고, 6년제의 중어 중문과가 창설 두 해째를 맞고 있었다. 다른 많은 학과가 있었으나 중어중문과를 택한 것 또한 할아버지 앞에서 배우던 한문 공부가 중도에 끊어진 애석함이 무의식중에 작용한 탓이었으리라. 그리고 그때 나는 내 인생에 대해 처음으로 깊이 생각했다. 그전까지는 안정된 삶을 위해, 한 푼이라도 더 보수가 많은 직장을 택해 다니는 외에 아무런 다른 생각이 없었으나, 그런 노력 덕분에 약간의 안정이 찾아오자 비로소 앞으로 남은 인생을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지죄(知罪)라는 것을 생각했다고나 할까? 당시 어떤 글에서 지죄(知罪)라는 단어를 만났는데, 앞뒤를 보면‘자신의 본령’정도의 뜻이라는 게 짐작이 갔으나, 그 글자들이 왜 그런 의미가 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뒤에 <맹자>에서 그 출처를 찾아냈다.

孔子 曰 知我者 其惟春秋乎 罪我者 其惟春秋乎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알아주는 자도 그 오직 춘추 때문일 것이며, 나를 비난하는 자도 그 오직 춘추 때문일 것이다.

그 문장에서 앞뒤의 두 글자를 따서 만든 단어가 ‘지죄(知罪)’라는 단어였다. 나는 평생 기댈 정신적 언덕이 필요하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문책을 수불석권(手不釋卷)하였다. 지하철을 타거나 공항에서 기다리던 비행기가 연착하거나 누구를 만나려고 기다리거나 간에 자투리 시간이 있으면 어김없이 펴보는 글이 ‘상형문자’의 책이었다.
내가 가방을 메고 학교에 다니는 것을 아는 친구들은 나를 보고 말한다. 오랫동안 한문 공부를 해오던 터였고, 복지관 도서관 등 여기저기 강의도 해오던 것을 잘 아는 그들은 “야, 재주도 좋다. 요즘은 대학에 한 구멍 뚫은 거야?”한다.
나는 그게 아니라 아직도 배울 것이 많은 학생 신분일 뿐이라며 다른 설명 없이 그저 웃음뿐이다. 딸들은 우리 아버지 요즘 인강 듣고 대학원 다니느라 바쁘다고 하면 친구들이 그 나이에 학업이 가능하시냐고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한다며 쉴 새 없이 종알댄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한시를 몇 편 보다가 문득 자탄(自嘆)이란 제목으로 내 심경을 몇 자 적어 본다. 이 내용을 평측과 운을 맞추어 고시나 율시 형태로 만들 것이나 우선 밑그림을 스케치하는 기분으로 적어본다.

자탄(自嘆)

빗자루를 잡았으면 열심히 쓸 일이다.
목탁을 들었으면 열심히 두드릴 일이다.
책을 들었으면 종이가 뚫어지게 볼 일이나
책만 들면 어디서 날아온 잠에 내 눈이 감기네.
세상엔 길도 많고 솥 밑구멍 뺄* 일도 많거늘
미련 老야, 그대 어째서 상형문자 골짜기로 들어섰나?
네 일을 네가 모르니 남이 어찌 알겠는가?
어차피 돌아 나오기 틀렸으니
갈 데까지 가는 거다. 쉬다 가다 하는 거다.

* 솥 밑구멍 빼다 : 우리 말 속담에 ‘재미 내어 콩 볶다가 솥 밑구멍 뺀다.’라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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