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사람들은 왜 월드컵 축구에 열광할까

  • 박윤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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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1-28 06:40  |  수정 2022-11-28 06:50  |  발행일 2022-11-28 제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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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규 논설위원

카타르 월드컵축구 한국-우루과이전은 한국이 패할 것이란 예상을 깬 흥미 만점의 경기였다. 중국의 한 전문가는 "전반전 중반까지 우루과이가 하프라인을 넘기 어려울 정도로 한국이 아시아팀 중 내용 면에서 가장 잘 싸운 경기"라고 평했다. 1986년 전설적 스타 디에고 마라도나가 속한 아르헨티나와 첫 경기 당시 다리가 후들거릴 만큼 위축됐다는 우리 선수들의 모습이 더 이상 아니었다. 무엇보다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국민이 하나 된 모습이 보기 좋았다. 얼마 만이던가. 붉은 악마 응원단에서, 거리 응원단에서, 2천만 시청자에게서 보수와 진보가 따로 없었다. 다 함께 '대~한민국'을 외쳤고, 오로지 한국의 승리만을 염원했다.

'강팀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팀이 강팀이다.' 승부(勝負)의 의외성과 냉혹함이 잘 묻어난 말이다. 스포츠에서 전력이 강한 팀이 예상대로 늘 이긴다면 짜릿한 감동은 없을 것이고, '각본 없는 드라마'란 말도 나올 리 만무하다. 이번 월드컵에선 아시아의 돌풍이 거세다. 아르헨티나가 사우디의 모래 폭풍에 잠기더니 '전차군단' 독일마저 일본 앞에서 멈춰 섰다. 이란과 호주도 첫 경기 패배를 딛고 나란히 1승씩을 챙겼다. 아시아는 늘 축구의 변방이었지만 이번엔 달랐다. 독일과 아르헨티나는 영원한 우승 후보 아닌가. 사우디는 승리 다음 날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해 흥분과 기쁨을 만끽했다.

반면 축구 때문에 선수가 죽기도 했고, 전쟁이 발발하기도 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때 자살골을 넣은 콜롬비아 한 선수가 자국에 돌아가 흥분한 팬의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 1969년 월드컵 예선 온두라스-엘살바도르 경기는 양국 간 실제 전쟁으로 비화됐다. 이른바 '축구 전쟁'으로 역사에 기록돼 있다.

무엇이 이토록 울고 웃게 만드나. 월드컵은 올림픽보다 인기가 높고 시청률도 높다. 세계 인구의 절반인 약 35억명이 TV 등을 통해 시청한다고 한다. 축구는 400g 남짓한 공 하나만 있으면 장비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 그만큼 대중적 스포츠다. FIFA(국제축구연맹) 가입국은 211개국으로, UN(193개국)이나 IOC(206개국)보다 많다. 말이 안 통해도 축구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대륙과 인종이 다르고, 정치·종교·문화가 달라도 축구만큼은 모두 똑같은 규정과 조건을 따르게 된다. '지구촌을 지배하는 유일한 이데올로기가 축구다'는 말도 있다.

축구엔 쫄깃쫄깃한 승부가 있다. 승패는 잔인하면서도 짜릿하다. 만약 승패를 가리지 않고 선수들의 발재간을 보는 것에 그친다면 이처럼 감동적 장면이 연출될까. 해외 도박사이트에선 돈을 건 승부 맞히기가 유행이다. 그러나 도박사들이 최근 다섯 차례 월드컵에서 우승팀을 맞힌 경우는 단 한 번뿐. 오히려 우승 확률 1위 팀이 조별 예선을 통과하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그러자 점쟁이 동물이 등장한다. 2010년 대회 때 '파울'이란 문어가 등장, 예측한 8경기 모두 승패를 맞혀 화제가 됐지만, 이후 등장한 돼지와 고양이 점쟁이의 점괘는 신통치 않았다. 이번엔 낙타 '카밀라'가 점쟁이로 데뷔했고, 최첨단 과학인 AI(인공지능)도 승부예측에 가세했다. 유수의 AI가 우루과이전에서 한국의 패배를 예측했지만 이 또한 빗나갔다. 역시 '축구공은 둥글고, 승패는 아무도 모른다'가 정답이다. 그래서 오늘 가나와의 2차전이 더욱 기다려진다.박윤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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