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경제 대국 만든 최고 지도자' 장쩌민 前 국가주석 별세

  • 입력 2022-12-01 08:02  |  수정 2022-12-01 08:14  |  발행일 2022-12-01 제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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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1월15일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이 브루나이 오키드 가든 호텔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중국의 제3대 최고 지도자였던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이 30일 사망했다. 향년 96세.

신화통신에 따르면 장 전 주석은 30일 낮 12시13분(현지시각) 백혈병 등으로 인해 상하이에서 치료를 받다 별세했다.

장 전 주석은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로 실각한 자오쯔양(趙紫陽·1919∼2005) 전 당 총서기의 뒤를 이어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에게 발탁돼 당 총서기에 오른 뒤 15년 동안 중국 최고 권력을 움켜쥔 채 중국 경제 발전을 지휘했다. 1989년 11월 덩샤오핑이 맡고 있던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에 이어 1993년 3월 국가주석까지 맡으며 중국 최초로 당(黨)·정(政)·군(軍)의 모든 권력을 거머쥔 뒤 2003년까지 중국 최고 지도자로 재임했다.

톈안먼 사태라는 격동을 거쳐 중앙 정치 무대에 등장한 고인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을 충실히 계승하며 중국의 경제 도약을 일궜다. 또한 최고 지도자 재임 중 굵직굵직한 정치, 경제, 외교의 이정표를 세웠다.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 유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홍콩(1997년)과 마카오의 반환(1999년)이 임기 동안 이뤄졌다.

그의 대표 사상은 '3개 대표 이론'이다. 전통 사회주의 국가에서 배척받는 자본가 계급을 끌어안는 것이 골자다. 이는 2002년 중국공산당 제16차 전국대표대회(16大)에서 중국공산당 당헌(黨章)에 정식으로 삽입됐다.

은퇴 이후에도 상하이방(上海幇·상하이 출신 정재계 인맥)의 원로로서 중국 정계에 깊숙이 개입하며 현역 지도자를 견제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기에는 상하이방이 시 주석의 '정적세력'으로 분류되면서 정치적 입지가 약화하기도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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