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피투성이 연인' 유지영 감독 "욕망하는 걸 갖기 위해선 댓가 치러야"

  •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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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1-13 14:23  |  수정 2023-11-14 08:46  |  발행일 2023-11-13
아이 원치 않는 커플 갑자기 임신
평온하던 일상에 균열 찾아와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작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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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영 감독의 두번째 장편영화 '나의 피투성이 연인' 은 원치 않는 임신이 가져온 관계의 파국을 섬세하고 예민한 시각으로 그리고 있다. <디오시네마 제공>

유지영 감독의 두번째 장편영화 '나의 피투성이 연인'이 한국 영화계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오는 15일 개봉을 앞둔 영화는 아이를 원치 않는 커플에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임신이 그들의 삶을 어떻게 파국으로 몰고 가는 지를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 최근 기자 시사회, 프로모션 GV등을 통해 미리 영화를 본 관람객들이 늘어나면서 찬반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등 관심이 커지고 있다.

영화는 감독의 자전적 사실과 허구적 상상이 만나 탄생했다. 주목받는 신인 작가 '재이'와 성실한 영어 강사 '건우'는 비혼, 비출산 커플이다. 평온하던 그들의 일상은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임신소식과 함께 균열을 맞는다. 작가로서의 삶을 고집하는 '재이'와 반대로 가족 공동체를 이루고 싶은 '건우'의 입장이 첨예하게 부딪치기 때문이다. 부족함 없이 행복했던 연인은 이제 함께 있기가 불편하고 부담스러우며, 서로에게 지치고 상처받는 관계로 전락한다.

특히 작가의 길을 철저하게 고수해온 재이에게 임신이 주는 충격은 절대적이다. 임신부가 된 후 재이를 상징하던 칼날처럼 날카로운 언어의 감각은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에는 엄마가 되어가는 재이의 무겁고 둔탁한 몸이 남았을 뿐이다. 예술과 아이를 동시에 가질 수는 없다는 지극히 평범한 명제 앞에서 예술가 재이는 서서히 무너지고, 포기하며, 스스로를 파괴하는 참혹한 형벌의 시간을 맞는 것. 보통의 사람이라면 가장 축복된 임신과 출산의 과정이 재이에게는 십자가를 지는 고통으로 다가온 것이다.

유 감독은 "작가인 재이에게 임신은 곧 절망과 동의어였을 것"이라며, "좋아하는 술·담배를 못하는 것은 물론 책상에는 간식거리가 늘어가고, 평소 먹지 않던 고기까지도 찾게 되는 엄청난 신체적 변화를 경험하면서 충격을 받는다. 무엇보다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글들이 편집자에게 무시당하게 되자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되면서 절망에 빠지게 된 것"이라고 소개했다.

한편에서는 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대한 문제의식을 다루고 있다는 이유에서 이 영화를 '페미니즘 영화'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에 대해 감독은 "영화를 만들면서 의도된 메시지를 던져 사회에 영향을 끼쳐야지 하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유 감독은 "어쩌면 저의 고민이나 동시대의 모습이 고스란히 투영되었기 때문에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서 여성영화, 또는 로맨스, 이별 영화 등 다양한 장르로도 읽힐 수 있을 것"이라며, "저는 단지 각자가 욕망하는 걸 찾고, 그 길을 걷기 위해서는 적잖은 시행착오와 댓가를 치러야 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다. 관객이 극장 문을 나설 때 단 하나의 질문이라도 가지고 나선다면 성공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대구 출신의 유 감독은 2011년 단편 '고백'으로 데뷔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최우수상 △전주국제영화제 감독상 등 주요 상을 휩쓸며 시선을 모았다. 특히 대구 수성못을 배경으로 찍은 첫 장편 '수성못'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무겁지 않게 비틀며, 묵직한 메시지까지 전달해 주목받았다. 두번째 장편인 '나의 피투성이 연인' 역시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여 시민평론가상을 수상했으며, 올해 카를로비바리 국제영화제에서 프록시마 대상을 수상하면서 관심을 모았다.
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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