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향 인사를 찾아서] '봉화 출신' 남화영 소방청장 "인구 감소·사회인프라 급변…소방 시스템도 새로운 도전 직면"

  •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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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4-17 08:09  |  수정 2024-04-17 08:10  |  발행일 2024-04-17 제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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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화영 소방청장은 2016년 대구 서문시장 화재가 38년 재임기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화재 현장이라고 했다. 〈소방청 제공〉

2003년 2월18일 발생한 '대구 지하철 참사'는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꼽히는 최악의 지하철 사고였다. 뇌졸중으로 인한 반신불수와 심한 우울증을 앓던 김대한이 자신의 신변을 비관해 벌인 '묻지마 테러'였다. 당시 사고로 객차 12량이 전소하고, 192명의 사망자와 6명의 실종자, 151명의 부상자가 생겼다. 대구 지하철 참사는 우리나라 철도안전의 기준을 새롭게 설정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또 화재진화라는 전통적 역할에 머물러 있던 소방관의 업무 범위를 119구급차 운용 등으로 폭넓게 확장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남화영 제5대 소방청장은 우리나라 소방업무의 성장과 변천을 함께해 온 인물이다. 부산대 물리학과를 다니던 1986년 3월 소방 장학생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 지금까지 38년을 한결같이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데 매진하고 있다. 남 청장은 "소방관의 길로 들어선 결정적 계기는 지도교수님의 조언이었다. 교수님은 '미국은 한국과 다르게 소방관에 대한 인식이 매우 높다. 자네가 20~30년을 내다보고 직업을 선택한다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큰 혜안으로 지도해 주시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소방관 재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화재 현장이 있습니까.

"대구본부장으로 근무하던 2016년 11월30일 대구 서문시장에서 발생한 화재 현장이 기억에 남습니다. 불은 4지구에서 시작되었고, 점포 800여 개가 순식간에 불에 탔습니다. 당시 화재는 신고 접수 단계부터 선제적으로 750여 명의 소방공무원과 90여 대의 소방차량이 신속히 출동해 주변 상가로 불이 번지는 것을 막고, 인명피해 없이 화재를 진압했습니다. (안타까운 화재였지만) 상인분들과 시민들께서 소방이 최선을 다한 덕분이라며 고마운 마음을 전해주셨을 때 정말 가슴이 뿌듯하고 보람도 있었습니다. 소방공무원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보람은 재난 현장에서 선제적으로 대응해 국민의 귀중한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순간입니다."

▶베테랑 소방관으로서 가장 강조하는 부분이 무엇입니까.

"생각해보면 지나온 시간들이 쌓여 지금 이 자리에서 다양한 정책들을 펼치고 추진하는 힘의 원천이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방청장이 된 지금도 재난 대응은 초기 단계부터 신속 대응, 최대 대응, 최고 대응이라 강조하고 있습니다. 소방공무원은 국민이 맡긴 책임의 무게를 가진 만큼 늘 현장을 최우선으로,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총력대응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복잡·다양해지는 재난 환경
과학적 대응 전략 마련 추진

"수요증가 요인·인력 재배치 등
빅데이터 분석 모델 개발 진행
2050소방미래비전委도 가동 중
국내외 전문가 21명으로 구성
7월까지 다양한 실행방안 제시"



▶ 'K소방'의 글로벌 진출에 관심을 가졌다고 들었습니다.

"지난해 11월20일부터 22일까지 글로벌 유통망 개척과 국내 우수 장비의 수출 지원 확대를 위해 '중동지역 유망시장개척단'을 꾸려 두바이와 싱가포르를 다녀왔습니다. 두바이 현지에서 UAE,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쿠웨이트, 요르단 등 중동 5개국 해외 바이어 29곳, 국내기업 17곳이 참여한 가운데 수출 및 기술상담회를 개최하였고, 126건의 수출 상담을 통해 현지에서 73억원가량의 구매 예정 협약도 맺었습니다. 외국 업체와 국내 업체의 수출 업무협약도 6건(중동 6개국 5건, 나프코 1건)을 체결하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소방의 미래가 궁금합니다.

"서울 롯데월드타워는 전체 높이가 555.65m 지상 123층·지하 6층, 부산 해운대 엘시티는 지상 117층 511m입니다. 대구 달성군 대구국가산업단지 쿠팡 대구첨단물류센터는 축구장 46개 크기에 연면적 33만㎡(10만평) 규모이고, 인천과 경기 고양·화성 등에도 이와 비슷한 규모의 건물이 있습니다. 서울역 공항철도 탑승장은 지하 7층(50m 정도), 고속터미널 9호선은 지하 5층 약 36.8m입니다. 이런 급변하는 대외적 사례들이 소방이 대응해야 할 미래 환경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8년 전 서문시장 4지구 화재
38년 근무 중 가장 잊지 못해

"초기 신속·최대·최고대응 원칙
750명 인력과 장비 선제적 투입
인명 피해 없이 진화해 큰 보람
K-소방 글로벌 진출에도 노력
작년 중동서 수출 계약 등 성과"



▶소방 가족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습니까.

"지난달 4일 서울소방학교에서 2001년 3월4일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다세대 주택화재 때 순직하신 여섯 분의 대원을 기리는 '소방영웅길' 지정 기념식이 있었습니다. 또 경기 평택에 '이병곤길', 울산에 '소방관 노명래길'이 있습니다. 소방관의 사명은 '퍼스트 인 라스트 아웃(First In, Last Out)'입니다. 제가 늘 동료들에게 하는 말이 아침에 '잘 다녀오겠습니다', 저녁에 '잘 다녀왔습니다'라는 가족과의 약속을 꼭 지키자고 합니다. '순직'이라는 단어는 소방관에게 무거운 짐과 같은 금기어입니다. 순직자와 유가족에 대한 예우와 지원을 확대하고, 소방 가족의 마음을 치유하고 위로하는데 한 치의 소홀함이 없도록 할 것입니다."

▶인구감소, 노령화, AI 등장이 소방 업무의 변수가 될까요.

"최근 모든 분야에서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불확실성 또한 커지고 있습니다. 소방도 환경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여야 하고, 국민 안전을 지켜야 하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조직 내부적으로는 인구감소와 고령화, 새로운 소방수요 증가 요인 등을 과학적으로 예측하고, 사회적 변화에 맞춰 인력 충원과 재배치, 관서 설치, 보직 관리 등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빅데이터 분석 모델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우리 소방이 다가오는 미래를 선도적으로 준비하기 위해 '2050 소방미래비전위원회'도 구성했습니다. 국내 전문가 16명과 외국 전문가 5명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오는 7월까지 소방업무와 관련하여 인구·환경·기술·사회 4개 영역으로 30여 개 과제를 발굴하고, 과제별로 핵심 이슈 추진전략과 실행방안을 마련해 소방이 나아갈 비전을 제시할 것입니다."

▶인구감소, 지방소멸에 대한 소방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제가 경북소방본부장으로 재직할 때 처음 도입된 '119아이행복 돌봄터'가 있습니다. 돌보미 양성 교육을 받은 여성 의용소방대원들이 소방서에 마련된 돌봄터에서 전문적인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소방서가 24시간 근무하는 곳이니까 3세부터 12세 아이들이 있는 부모들은 언제든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제도가 전국적으로 확대된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가져 봅니다."

▶소방관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습니까.

"세상은 자기가 바라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 그것을 향해 행동하는 사람에게 기회를 준다고 합니다. 요즘 멋진 친구들이 많습니다. 고등학교 갈 때 진로를 이미 결정하고 한국소방마이스터고를 진학한다든지, 요리학교, 게임 학교 등으로 진출하는 젊은이가 많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본인이 좋아하고 꾸준히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 진로를 신중하게 정하고, 준비를 잘해서 오랜 기간 꿈을 이루어 가시길 추천합니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 희생 봉사할 마음이 굳은 친구들이라면 적극적으로 소방공무원을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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