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형의 스포츠와 인문학] 헝가리의 智德體, 사회적 장기몰입 유도가 '헝가리 현상' 낳아…우리도 적절한 보상제도 마련해야

  • 박지형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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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6-07  |  수정 2024-06-07 08:05  |  발행일 2024-06-07 제12면

[박지형의 스포츠와 인문학] 헝가리의 智德體, 사회적 장기몰입 유도가 헝가리 현상 낳아…우리도 적절한 보상제도 마련해야
박지형 문화평론가

근래 스포츠판을 보면 어느 종목 할 것 없이 죄다 뒤숭숭한 분위기다.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는 한 어린 선수가 자신보다 아홉 살이나 많은 선배 선수와 드잡이질 끝에 그 주장 선수에게 부상을 입히는 사고가 터졌다. 야구판에서는 한 전직 국가대표 선수가 현역 시절 모시던 감독, 국가대표 대선배, 까마득한 프로 후배 등에게 연이어 망언에 가까운 저격 발언을 하여 큰 논란이 되었다. 여자배구에서는 '후배 괴롭힘 의혹'에 이은 징계와 그것이 사실과는 다르다는 반발에 따른 법정 소송이 이어지고 있다. 쇼트트랙에서는 몇 년 전 국민들을 패닉에 빠뜨렸던 국가대표 동료 간의 고의충돌 사건이 다시 재발한 것이 아닌가 의심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스포츠판에서 사건사고들은 물론 항상 있어 왔다. 하지만 유독 최근 들어 사건이 더 잦아지고 내용이 더 황당해지는 것은 단순히 필자의 느낌만은 아닌 것 같다. 이러한 경향은 스포츠판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정치판, K팝 신, 각종 SNS나 유튜브 등의 매체를 봐도 모두들 예전에 비해 날카로워져 있고 버릇없어져 있으며 조건반사적이 되어 있다. 의연함과 진중함, 어른스러움은 간데없고 모두 사춘기 아이처럼 감정만 앞세우고 있다. 정연한 논리보다는 얄팍한 자기 연민이, 대의명분보다는 기분이 우선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이러한 현상이 스마트폰 기반의 문화에서 상당 부분 기인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10년 전만 해도 1시간 정도는 가던 유튜브 영상들이 최근에는 15분에서 10분까지 줄어드는가 싶더니 이제는 '쇼츠' '릴스'라는 폼이 나오며 몇십 초 단위로 줄어들었다. 2000년 즈음만 하더라도 인류는 지겨운 것을 봤을 때 백스페이스 버튼을 누르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3초 정도였다고 하지만, 오늘날은 채 1초도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한 마디로 이제 인류는 조금이라도 '참는 것'을 못 견뎌 하도록 길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헝가리 현상'이라는 말이 있다. 20세기 중반 헝가리 출신 인재들이 연이어 7명이나 노벨상을 수상하게 되자 그때부터 특정 시기, 특정 지역에서 갑자기 인재가 쏟아져 나오는 미스터리한 현상에 이런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헝가리 현상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당시 교육과정과 입시에서 단답형 문제를 최대한 배제하고 오랜 시간을 들여 깊은 사고를 해야 풀 수 있는 고난도 문제를 채택했다. 이러한 긴 주기의 몰입과 그에 뒤따른 진한 성취감은 많은 헝가리 학생들로 하여금 실제 인생에서의 문제를 대할 때 있어서도 탁월한 근성을 가지게 해주었고 이것이 수십 년 뒤 놀라운 성과로 이어졌다는 이야기다.

재미있는 것은 비슷한 시기에 헝가리는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강력한 축구팀을 가진 국가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황금의 팀'이라 불렸던 당시 헝가리 팀은 그 유명한 '페렌츠 푸스카스'를 앞세워 A매치에서 24경기 무패 행진을 이어간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 결승에서 서독에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던 것이 유일한 흠이라면 흠인데 이것은 당시 서독에서도 '베른의 기적'이라 부를 만큼 의외의 결과였다.

무너져가는 한국 스포츠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오늘날 한국의 교육 문화 전체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성찰, 수정이 뒤따라야 한다고 본다. 아이들로 하여금 초단 주기의 도파민 중독이 아닌 중장기의 건전한 보상 시스템을 맛보게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헝가리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사회구성원들의 '지(智)'와 '덕(德)'뿐만이 아니라 '체(體)'까지 강화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과제일 것이기 때문이다.

박지형 문화평론가

[박지형의 스포츠와 인문학] 헝가리의 智德體, 사회적 장기몰입 유도가 헝가리 현상 낳아…우리도 적절한 보상제도 마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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