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총·칼·활'

  • 박규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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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8-09  |  수정 2024-08-09 08:52  |  발행일 2024-08-09 제27면

'총·균·쇠'는 1997년 출간된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스테디셀러다. 1만3천년 인류 역사의 궤적을 좇으며 유라시아 문명의 수월성이 지리적 차이에 있음을 간파해낸다. 다이아몬드 특유의 간결한 문체와 방대한 자료 분석이 압권이다.

'총·균·쇠'가 문명이론서라면 '총·칼·활'은 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맥이다. 파리올림픽에서 양궁은 전 종목을 석권해 5개의 금메달을 쓸어 담았고, 사격 3개, 펜싱 2개의 금빛 낭보를 전해왔다. 소셜 미디어엔 '주몽의 후예' '신궁의 나라' '이순신 장군 보유국' '코리안 스나이퍼' 같은 수사(修辭)들이 넘쳐났다.

한국이 유독 총·칼·활 종목에 강세를 보인다? 오랜 기간 외세 침략에 단련된 우리 민족의 '전투 DNA'가 작용했을 법하다. 하지만 후원기업-협회-선수 간의 성공적 협업 때문이라는 게 보다 현실적 분석이다. 현대차그룹이 40년간 양궁선수 육성에 쓴 돈만 500억원이 넘는다. SK텔레콤은 20년 동안 펜싱협회에 300억원을 후원했다. 전지훈련, 전용 훈련장 지원은 물론 소음훈련, 기능성 장비 개발 같은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현대차는 코오롱과 공동으로 양궁선수들이 쓴 '복사냉각 모자'를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협회 운영엔 일절 개입하지 않았다. 정실과 독선의 축구협회 루틴이었다면 양궁·펜싱·사격의 금맥 캐기가 가능했을까. 무위로 끝났을 개연성이 높다.

올림픽 메달 획득의 지평을 넓히려면 '총·칼·활'에 더해 메달밭 수영·육상 종목의 신예 육성이 절실하다. 수영 49개, 육상엔 48개의 금메달이 걸려 있어서다. 박규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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