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민 칠곡경북대병원 산부인과 교수

입원 병상에 누운 임산부가 불편한 표정으로 배를 감싸고 있으며, 의료진은 차트를 보여주며 상태를 설명하고 있다. 고위험 임신으로 병원에 내원한 산모의 진료 장면으로, 세심한 관리와 의료진의 역할이 강조되는 순간이다.<영남일보 AI 제작>
'고위험 임신'이라는 말은 듣기만 해도 불안하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생명을 품은 채, 산모 스스로도 건강에 위협을 받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위험 임신은 단순한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조기 진단과 꾸준한 관리가 뒤따르면 충분히 건강한 출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점점 늦어지는 결혼과 출산, 고령 임신의 증가로 인해 고위험 임신을 마주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여기에 만성질환과 스트레스, 환경적 요인까지 겹치며 임신 자체의 조건이 과거보다 복잡해졌다. 그만큼 임신 전부터 출산 후까지 전 과정에 대한 세심한 관심이 요구된다.
◆고위험 임신, 나이만의 문제 아냐
고위험 임신은 임신 중 산모나 태아가 일반적인 임신보다 건강상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은 경우를 뜻한다. 흔히 만 35세 이상 고령 임신만을 떠올리지만, 이는 고위험 임신의 일부에 불과하다. 오히려 19세 이하의 임신도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 임신을 준비하거나 임신한 여성의 건강 상태, 나이, 병력, 가족력, 과거 임신 경험 등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고위험 여부가 결정된다. 이처럼 고위험 임신은 특정 연령대나 조건에만 국한되지 않고,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상적 가능성에 가깝다.
◆ 임신 전·중·후 모두 주의
고위험 임신은 임신 전, 임신 중, 출산 후 세 시기로 구분해 접근할 수 있다. 임신 전 단계에서는 고혈압, 당뇨병, 자가면역질환, 심장질환 등 기저질환을 가진 경우가 대표적이다. 비만, 대사증후군, 갑상선 질환 등도 고위험 임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반복 유산이나 자궁내막 이상, 이전 임신에서 합병증이 있었던 여성은 재발 가능성이 높다. 임신 중에는 조기 진통이나 조산, 임신성 고혈압, 임신성 당뇨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태아의 성장이 늦거나 지나치게 클 경우, 양수의 양이 너무 많거나 적은 경우, 전치태반이나 태반 조기박리와 같은 상태도 고위험 요인이다. 출산 직후에도 위험은 끝나지 않는다. 산후 출혈, 자궁 내 감염, 폐색전증, 혈압 이상 등이 고위험 산모에게서 발생할 수 있는 주요 합병증이다.
◆초기에 위험 요인 확인 가능
고위험 임신의 진단은 임신 초기부터 시작된다. 병원을 방문하면 먼저 산모의 연령, 병력, 가족력, 과거 임신 경험 등을 확인하는 문진이 이뤄진다. 이후 키와 체중, 혈압 등의 기본 신체검사와 함께 혈액·소변 검사를 통해 당뇨, 빈혈, 감염 등 내재된 위험 요소를 선별한다. 초음파 검사는 태아의 위치, 성장 상태, 태반의 상태를 정기적으로 확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임신 중기에는 정밀 초음파를 통해 태아의 장기 구조와 기형 유무를 점검할 수 있다. 고위험 여부가 명확하지 않더라도 정기적인 검진은 변화하는 상태를 실시간으로 반영해 안전망 역할을 한다.
◆진료는 더 자주, 관리는 맞춤형으로
고위험 임신으로 진단되면 진료 주기부터 달라진다. 일반적으로는 임신 28주까지 한 달에 한 번, 이후엔 2주 간격, 36주 이후에는 주 1회 진료를 받는다. 하지만 고위험 산모는 그보다 더 자주 병원을 찾아야 한다. 쌍둥이 임신의 경우 태아의 성장 속도 차이를 지속적으로 추적해야 하며, 임신성 당뇨가 있는 경우 혈당 관리가 중요해 자가 혈당 체크 및 정기적인 검사 빈도가 늘어난다. 필요에 따라 약물 치료, 식이 조절, 침상 안정, 입원 관리가 병행된다. 무엇보다 '정해진 공식'은 없다. 산모마다 위험 요인과 건강 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의료진과 상의해 개인별 맞춤 계획을 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 이상 증상, 즉시 병원 가야
고위험 임신이라면 일상에서도 더욱 철저한 주의가 필요하다. 흡연과 음주는 당연히 안된다. 격한 운동이나 무리한 여행도 삼가야 한다. 충분한 휴식과 수면, 균형 잡힌 식단 유지가 기본이다. 특히 다음과 같은 증상은 즉각적인 병원 방문이 필요한 경고 신호다. △질 출혈 △복통 △규칙적인 자궁 수축 △심한 부종 △시야 흐림 △태동 감소 등이다. 산모가 이러한 변화를 자각하는 것이 중요하며, 보호자 역시 이 같은 증상을 인지하고 있어야 빠른 대처가 가능하다.
◆가족 협력이 산모 안전 지킨다
고위험 임신의 또 다른 축은 바로 가족이다. 산모가 안정감을 갖고 임신 기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남편과 가족의 배려는 정서적 안정을 넘어 실제 임신 결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산모가 심리적 불안을 느끼거나 과도한 책임감을 짊어지지 않도록 생활 전반에서 협력이 필요하다. 단순히 걱정하고 지켜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산모의 일정 관리, 식사 준비, 병원 동행 등 실질적인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고위험 임신, 두려움보다 준비가 먼저
고위험 임신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여성, 나이가 많거나 너무 어린 산모, 반복된 유산을 경험한 산모, 태아 이상 진단을 받은 산모 등 우리 주변 어디서나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준비다. 임신을 계획할 때부터 자신의 건강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임신 후에는 의료진과 함께 치밀하게 대처해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위험은 줄일 수 있고, 대부분은 관리할 수 있다. 태어날 아기를 위한 첫 번째 선물은 '안전한 준비'다.

강승규
의료와 달성군을 맡고 있습니다. 정확하고 깊게 전달 하겠습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