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프랑수아 부샤르 'Manuel & Friends'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제공 ⓒ Jean-François Bouchard>
고립과 빈곤의 시대를 넘어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쿠바 청년들의 모습을 담은 전시가 대구에서 열려 눈길을 끈다.
사진 전문 갤러리 아트스페이스 루모스는 오는 7월17일까지 캐나다 출신 장 프랑수아 부샤르(Jean-François Bouchard) 작가 초대전 'The New Cubans(새로운 쿠바인)'을 개최한다.
그동안 세계 각지를 누비며 특정 지역의 하위문화 및 소외된 이들을 소개해온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카리브해 섬나라인 쿠바 청년들의 초상을 담은 사진 작품들을 선보인다.
미주대륙 유일의 사회주의 국가 쿠바는 1959년 피델 카스트로를 중심으로 일어난 혁명 이후 고립의 길을 걸어왔다. 1991년에는 주요 우방국이었던 소련마저 붕괴하면서 쿠바인들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은 지속됐다. 현재의 쿠바 젊은이들은 수십년 전의 모습으로 멈춘 도시의 풍경 아래 다양한 방식으로 삶을 개척하고 있다. 작가는 쿠바인들의 이러한 모습에 착안해 'The New Cubans'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장 프랑수아 부샤르 'Felix & Ehiliani'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제공 ⓒ Jean-François Bouchard>

장 프랑수아 부샤르 ' Etian & Arian'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제공 ⓒ Jean-François Bouchard>
3년 동안 진행된 이 프로젝트를 위해 작가는 280여 명의 쿠바 아바나의 청년들과 교류했다. 특히 주변화되고 낙인찍힌 청년들의 모습에 집중했는데, 사회주의적 이념과 정형화된 이미지에 거침없이 도전하는 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로부터 낙관과 우울, 열정과 상실을 엿볼 수 있다. 한때 위대했던 혁명의 시대가 가고 고립과 빈곤만 남았지만, 사진으로 드러난 쿠바 젊은이들의 욕망과 취향은 강력한 색채와 이미지로 구현돼 관람객의 시선을 자극한다.
이들은 래퍼, 예술가, 혹은 평범한 청년들로 구성되며, 쿠바인이라는 정체성을 넘어 자신의 꿈과 이상을 이루려 한다. 1950년대 미국 문화와 냉전 시기 소련의 영향, 스페인 식민지풍의 독특한 분위기가 오묘하게 뒤섞인 도시의 건물과 풍경을 배경으로 최첨단의 유행을 선도하는 남녀 청년들의 비현실적 조화가 두드러진다. 여기에다 곧 무너질 것만 같은 아바나의 건물들, 당장이라도 폐차장에 보내야 될 것 같은 문화유산급의 노후 차량은 혁명 이후 멈춰 선 쿠바의 시계를 보여주는 듯하다. 또한 화려한 장식들로 가득한 집 안, 사회주의 체제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물건들이 뒤섞인 공간 속에서 최신의 유행과 자유를 추구하는 쿠바의 청년들은 자신의 개성을 뚜렷이 드러낸다. 몇몇 작품 속에 등장하는 드랙퀸(drag queen, 여성 복장을 한 남성)의 모습을 통해서는 사회주의 시절과 달리 개인의 삶에 간섭하지 많는 쿠바 사회의 변화된 면모를 볼 수 있다.
전시 중인 정물 작품에도 눈길이 간다. 평범한 쿠바 가정이 소중히 간직한 오래된 물건들이 오브제가 됐다. 선진국에서는 버려질 법한 낡은 물건들이 가보처럼 취급받는 쿠바의 모습을 통해 쿠바가 직면한 상황과 그들만의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장 프랑수아 부샤르 작가는 "지금껏 하위문화에 대해 큰 관심을 가져왔는데, 내 작업은 특정 국가에 그치지 않는다. 3년 동안 꿈을 펼치는데 어려움을 겪는 쿠바 청년들의 암울한 분위기에 집중하려 했다"면서 "최근 인터넷 보급 이후 자아에 대한 쿠바 청년들의 인식이 급진전된 것이 작품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금 내 프로젝트에 등장한 쿠바 청년 상당수는 쿠바를 떠나 새로운 삶을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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