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지켜온 동해의 붉은 혼] 5. 6·25전쟁 최후의 보루 기계안강지구 전투(상)

  • 박관영·류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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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5-28 18:02  |  발행일 2025-05-28
“낙동강 전선 지켜라” 40여일 격전 끝에 승리 … 아군 1500여명 산화

6·25전쟁 발발 45일만에 기계 점령

북한군 경주·부산 진격 목표로 공격

무차별 공세에 속수무책 밀린 국군

절체절명 위기에 학도병들도 참전

짧은 훈련과 총쏘는 법만 배워 투입

북한군 보급로 차단 등 격력한 전투

그때 안강들의 나락은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나락이 자빠진 자리에는 사람이 처참하게 죽어있었다. 북한군이 아니면 아군이었다. 밤이 되면 어래산에는 예광탄이 빨간 선을 그으며 수없이 날아다녔고 무차별 사격이 요란했다. 북한군12사단이 기계를 점령한 것은 1950년 8월 9일이다. 한국전쟁발발 45일 만이다.


기계는 포항의 입구였고, 남쪽으로는 안강-경주, 서쪽으로는 영천-대구로 이어지는 요지였다. 포항이 함락되면 임시정부가 있는 부산과, 내륙으로는 경주와 대구가 위험했다. 포항 일대 전선은 목숨을 걸고 사수해야하는 최후의 보루였다. 안강들과 기계들이 번갈아 내려다보이는 어래산을 경계로 북한군과 아군의 싸움은 40여 일간 계속됐다. 기계안강지구 전투다.


어래산을 바라보는 성계리 들판 초입에 '6.25전쟁 격전지 기계·안강지구 전투 전적비'가 서 있다. 기계안강지구 전투에서 산화한 1500여 명 젊은이들을 기리기 위해 2016년에 세운 비다. 비에는 전공기와 참전부대 및 지휘관 명단이 새겨져 있으며 전적비명은 참전자와 주민의견을 수렴해 정했다고 한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어래산을 바라보는 성계리 들판 초입에 '6.25전쟁 격전지 기계·안강지구 전투 전적비'가 서 있다. 기계안강지구 전투에서 산화한 1500여 명 젊은이들을 기리기 위해 2016년에 세운 비다. 비에는 전공기와 참전부대 및 지휘관 명단이 새겨져 있으며 전적비명은 참전자와 주민의견을 수렴해 정했다고 한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 낙동강 방어선과 기계점령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선전포고 없이 기습적으로 남한을 침공한 북한군은 사흘 만에 수도 서울을 함락했다. 그들은 매우 빠르게 남하했다. 목표는 8월 15일 부산을 점령하고 남북통일을 이루겠다는 것, 즉 미군의 개입 전 신속히 한반도를 점령하는 것이었다. 어떤 대비도 없었고, 당시 국군은 전투기는커녕 전차 한 대도 보유하지 못한 상태였다. 국제연합은 북한을 침략자로 규정하고 대한민국에 대한 원조를 결정했다. 유엔군사령부가 설치되었고 미국을 비롯한 세계 10여개 국가의 군대가 한반도로 날아왔다. 1950년 7월 말까지 후퇴를 거듭하며 지연작전을 수행하던 국군과 유엔군은 8월 1일 낙동강에 연속적인 방어선을 편성했다. 낙동강 동부와 그 일대의 험준한 산맥을 천연의 요새로 삼은 것이었다.


이 무렵 북한군은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에 강력한 방어진지를 구축하기 전에 신속한 추격 작전으로 이를 돌파한다'는 계획을 수립하고 8월 5일을 전후해 낙동강 일대의 모든 전선에서 일제히 공격을 개시했다. 북한군의 일명 '8월 공세'가 시작된 것이다. 이로 인해 낙동강 방어선 곳곳이 위기에 처하게 된다. 특히 길안 일대의 수도사단 방어진지가 급속하게 와해되면서 청송-기계 축선이 무방비 상태에 놓이게 됐다. 북한군12사단은 이 공백지대를 통해 저항 없이 남하해 8월 9일 기계를 점령했다. 북한군은 기계, 안강, 경주을 점령한 다음 부산으로 진격할 계획이었다. 북한군의 기계 점령은 중동부전선 최고의 위기였다. 이에 육군본부는 포항지구전투사령부를 급편하고 대구에서 신편 중이던 25연대를 안강지구에 긴급 투입했다. 이때부터 기계-안강 일대에서는 피아간 뺏고 빼앗기는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지게 된다.


경북 포항시 남구 송도동 포항지구전투전적비. 포항지구 전투에서 용감히 싸웠던 국군의 전투상을 기념하기 위해 육군 제1205건설공병단에서 1959년 3월 31일 세웠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경북 포항시 남구 송도동 포항지구전투전적비. 포항지구 전투에서 용감히 싸웠던 국군의 전투상을 기념하기 위해 육군 제1205건설공병단에서 1959년 3월 31일 세웠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삣고 뺏기는 쟁탈전 속 남침 저지 성공

낙동강 방어전서 많은 참전 용사 전사

국군·유엔군의 대규모 반격 토대돼

성계리 들판 초입에 전적비 세워

75년 전 나라를 지킨 호국영령 기려

◆ 어래산 전투와 기계탈환


8월 9일 안강에 투입된 25연대는 안강 북쪽 6㎞지점의 어래산 능선 445고지 일원에 배치됐다. 11일에는 국군17연대가 안강지구에 도착해 기계-포항 간 도로를 차단했다. 8월 12일 북한군12사단은 445고지에 병력을 집중 투입해 25연대를 압박하기 시작했고 계속된 북한군의 공세에 밀려 결국 25연대는 분산되기에 이른다. 445고지 확보에 실패한 국군은 13일 17연대를 어래산에 투입했다. 이 무렵 국군 수도사단 소속의 각 예하 연대에는 학도병이 배속되어 부족한 병력을 보충하고 있었다. 17연대 소속의 학도병 148명은 어래산 능선 참호에 2인 1조로 배치됐다. 대부분 너무 짧은 훈련으로 총을 쏘는 요령만 배운 수준이었으나 싸우겠다는 의기와 사기는 높았다. 8월 13일부터 진행된 17연대의 445고지 탈환전은 악전고투의 연속이었다. 결국 16일 오후 6시경 445고지를 완전히 장악하면서 기계 탈환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17연대가 기계 남쪽 445고지 탈환전을 벌이는 동안 기계 서북쪽 죽장 방면에서는 18연대가 기갑연대의 측방엄호를 받으며 기계를 향해 진격했다. 북한군12사단의 주보급로를 차단하면서 남북에서 적을 포위 공격하려는 작전이었다. 18연대는 16일 기계읍 구지리 일대까지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17일 새벽 18연대 2대대가 구지리 서남쪽 288고지를 점령하고, 이에 앞서 1대대가 288고지 동북쪽 253고지를 점령하자 북한군은 지휘체계가 무너지면서 소부대 단위로 분산된 채 비학산으로 철수했다. 17일 오후 18연대는 기계에 진입해 산발적으로 저항하는 적을 소탕했다. 445고지를 장악하고 있던 17연대도 남쪽에서 협공을 가했다. 이로써 기계 인근 북한군은 대부분 격멸되었고 일부 병력만이 포위망을 뚫고 북쪽으로 후퇴했다. 기계 탈환전에서 수도사단은 북한군 1245명을 사살하고, 무기 및 탄약 다수를 노획하는 전과를 거뒀다. 전쟁 발발 후 국군이 거둔 최대의 전과였다.


포항시 북구 기계면 화대리에 있는 용화사는 기계안강전투에서 전사한 고 권태흥 대위(육사9기)의 배우자인 한연호 여사가 남편이 전사한 장소에 건립한 절이다. 용화사 앞마당에는 기계안강전투에 참전한 용사들을 추모하는 위령탑이 있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포항시 북구 기계면 화대리에 있는 용화사는 기계안강전투에서 전사한 고 권태흥 대위(육사9기)의 배우자인 한연호 여사가 남편이 전사한 장소에 건립한 절이다. 용화사 앞마당에는 기계안강전투에 참전한 용사들을 추모하는 위령탑이 있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포항시 북구 기계면 화대리에 있는 용화사는 기계안강전투에서 전사한 고 권태흥 대위(육사9기)의 배우자인 한연호 여사가 남편이 전사한 장소에 건립한 절이다. 용화사 앞마당에는 기계안강전투에 참전한 용사들을 추모하는 위령탑이 있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포항시 북구 기계면 화대리에 있는 용화사는 기계안강전투에서 전사한 고 권태흥 대위(육사9기)의 배우자인 한연호 여사가 남편이 전사한 장소에 건립한 절이다. 용화사 앞마당에는 기계안강전투에 참전한 용사들을 추모하는 위령탑이 있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 곤계봉 전투


비학산 일대에서 병력을 보충하고 부대를 재편성한 북한군은 8월 26일 야간에 대규모 공격을 재개해 다음날 새벽 기계지구와 도음산을 재점령했다. 이로써 북한군은 '9월 공세'를 전개할 수 있는 발판을 확보하게 된다. 전황을 보고받은 미8군 워커사령관은 '잭슨특수임무부대'를 편성해 경주로 급파하고 국군1군단의 작전통제를 담당하게 했다. 9월 2일 북한군은 경주를 점령하기 위해 기계-445고지-곤계봉(곤제봉, 형제봉)-경주 축선으로 대대적인 공격을 전개했다. 북한군은 기계-안강 도로를 따라 전차를 선두로 주력부대를 투입했고 일부 병력을 18연대의 측후방으로 침투시켰다. 이러한 협공에 수도사단의 방어선은 돌파되고 만다. 9월 4일 사단장은 예하 연대를 무릉산-곤계봉-호명리 선으로 철수시켰다. 그리고 무릉산과 곤계봉 간 정면에 기갑연대, 3연대, 17연대를 배치하여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곤계봉 남쪽에는 미17연대 3대대가 배치돼 수도사단을 지원했다.


이 무렵 주력을 안강에 집결시킨 북한군은 경주를 점령한 후 단시일 내에 부산으로 향하고자 했다. 북한군12사단은 공격 목표로 곤계봉을 설정하고, 9월 6일 새벽 4시부터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했다. 경주 북방 12㎞ 지점의 곤계봉은 형산강변의 개활지와 안강 일대의 감제가 가능한 중요 지형이었다. 따라서 수도사단과 북한군 12사단은 곤계봉 확보에 전체 작전의 성패를 걸고 치열한 쟁탈전을 벌였다.


17연대에 배속되어 곤계봉 전투에 참전하였던 손대익 학도병은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증언한다. "능선에는 조그만 바위가 많았다. 바위에 숨어 적과 대치하다가 머리만 내밀었다하면 바로 사격을 가하면서 수류탄으로 맞서며 올라갔다. 적은 쓰러지면서도 도망가지 않고 그 자리를 사수하고 있을 정도로 치열하게 맞서왔다. 앞서가던 동창 백운섭 군이 관통상을 입고 내려왔다. 얼마 후에는 편시도 군마저 상반신 파편상을 입고 만신창이가 된 채 내려오고 있었다. 1대대에 있던 마지막 동창생들이 고지를 내려갔다. 나는 외톨이가 된 것처럼 서글픔이 밀려왔다."


9월 6일부터 13일까지 이어진 곤계봉 전투는 주로 야간에 백병전으로 전개됐으며, 하루에 15회 이상의 공방전이 펼쳐져 쌍방에 막대한 피해를 안겼다. 수차례 고지의 주인이 바뀌는 치열한 공방전 끝에 9월 13일 15시에 국군17연대 2대대가 곤계봉을 공격, 2시간의 치열한 교전 끝에 곤계봉을 탈환했다.


◆ 수많은 목숨으로 이루어낸 반격의 토대


곤제봉 탈환을 계기로 급반전된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의 반격으로 연결됐다. 9월 16일 반격을 개시한 수도사단은 다음날 형산강 대안에 교두보를 확보한 후 18일 안강을 탈환했다. 북한군12사단은 방어에 유리한 어래산-445고지-236고지 선에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완강하게 저항했다. 양측은 9월 22일까지 이 선상의 주요 지형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8월 초부터 약 40여 일 동안 전개된 전투에서 어래산의 주인은 17차례나 바뀌었다. 결국 국군이 어래산을 점령하고 기계를 재탈환함으로써 기계안강지구 전투는 종지부를 찍었다. 이로써 북한군은 낙동강전선 동부지역을 돌파하는 작전에 실패했고, 국군은 반격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이 필사의 항전에서 수많은 참전용사가 목숨을 잃었다.


어래산을 바라보는 성계리 들판 초입에 '6.25전쟁 격전지 기계·안강지구 전투 전적비'가 서 있다. 기계안강지구 전투에서 산화한 1500여 명 젊은이들을 기리기 위해 2016년에 세운 비다. 비에는 전공기와 참전부대 및 지휘관 명단이 새겨져 있으며 전적비명은 참전자와 주민의견을 수렴해 정했다고 한다.


어래산 동쪽 육통리에는 '6.25 기계·안강지구 학도의용군 전적비'가 있다. 기계안강지구 전투에서 용감히 싸웠던 학도의용군의 공적을 기려 2000년 11월 대한민국 학도의용군회에서 건립했다. 6.25 당시 학도병으로 참전했던 이종달 옹이 자신의 땅을 기부했다고 한다.


포항시 북구 기계면 화대리에 있는 용화사는 기계안강전투에서 전사한 고 권태흥 대위(육사9기)의 배우자인 한연호 여사가 남편이 전사한 장소에 건립한 절이다. 용화사 앞마당에는 기계안강전투에 참전한 용사들을 추모하는 위령탑이 있다. 탑에는 당시의 이야기가 새겨져 있다. 그 마지막은 이렇다. '여기 한 덩이 돌에 피보다 더 진한 이 민족의 한을 새기나니 영령들이시여 불멸의 구국 용사되어 고이 잠드소서.'


글=류혜숙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공동기획-포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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