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이에도 투표를 한번도 빠진 적 없다…"

영주시민운동장에 마련된 '가흥1동 사전투표소'에 1932년생 배모 어르신이 아내와 며느리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투표소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손병현 기자
제22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29일 정오, 경북 영주시 가흥1동 사전투표소. 고요한 운동장 안으로 지팡이에 의지한 한 어르신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1932년생, 올해 아흔셋인 배모 어르신이었다.
아내와 딸의 양팔을 붙잡고 투표소를 향하는 걸음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투표용지를 건네받는 순간, 손에서 지팡이가 미끄러지며 바닥에 떨어졌지만, 옆에 있던 딸이 잽싸게 주워 들었다. 배 어르신은 미소를 머금은 채 다시 지팡이를 쥐고 기표소 입구까지 부축을 받으며 걸어갔다.
기표소 앞에 다다르자 그는 "여기부터는 내가 해야지"라며 조용히 몸을 일으켰고, 홀로 기표소 안으로 들어섰다.
한참을 투표용지를 들여다보던 배 어르신은 이내 도장을 꾹 눌렀다. 투표를 마친 그는 다시 천천히 걸어 나왔고, 딸과 아내는 조심스레 팔을 내밀었다. 그는 말없이 미소 지으며 그 손을 잡았다.
투표를 마친 배 어르신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투표를 거른 적이 없었어요. 나라가 어지러울수록 우리 같은 사람들이 더 정신 차려야지요"라며 작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말을 남기고, 천천히 자리를 떠났다.

손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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