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걸그룹 에스파 멤버 카리나가 지난달 27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대선을 불과 이틀 앞두고, 유세 현장은 뜻밖의 단어들로 요동치고 있다. '코끼리' '젓가락' '2번 점퍼'가 유세 구호로까지 등장하며, 논란은 정치권을 넘어 아이돌 팬덤까지 번졌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는 지난달 27일 마지막 TV토론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겨냥해 경기도지사 시절 법인카드로 과일 값(2천791만원)을 결재한 의혹을 두고 "집에 코끼리라도 키우냐"고 비꼬았다. 그런데 하필 같은 날, 걸그룹 에스파의 멤버 카리나가 빨간색 숫자 '2'가 새겨진 '더 엘리펀트(The Elephant)' 브랜드의 점퍼를 입고 등장하면서 두 사건이 '코끼리'라는 키워드로 얽히는 기묘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준석 후보는 이날 토론에서 이재명 후보 아들의 과거 온라인 댓글을 거론하며 "여성의 신체에 젓가락을 꽂겠다는 발언이 여성 혐오냐"고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에게 질문했다. 문제의 댓글 대상이 공교롭게도 카리나였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팬덤과 여성단체는 즉각 반발하며 '2차 가해'라고 강력 비판했다.
논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카리나는 브랜드나 디자인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지만, 하필 그 시점에 해당 점퍼를 입고 사진을 올리면서 논란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해당 점퍼는 일본 브랜드 '바케라(VAQUERA)' 제품으로, 편집숍 '더 엘리펀트(The Elephant)'를 통해 판매된 것이었다. 그러나 빨간 색상에 숫자 '2', '더 엘리펀트'라는 판매처 이름까지 더해져 온라인상에서는 정치적 해석이 덧씌워졌다. 카리나는 서둘러 사진을 삭제하고 "전혀 의도가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파장은 걷잡을 수 없었다.
이준석 후보가 카리나의 실명이 포함된 관련 기사를 SNS에 공유하면서 논란은 더욱 거세졌다. 카리나 팬덤은 즉각 성명을 내고 "명백한 2차 가해"라고 비판했다.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도 "정치적 의도는 없었다"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팬들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정치권의 반응 역시 첨예하게 갈렸다. 민주당은 이준석 후보의 제명을 요구하며 공세를 폈고, 시민단체와 여성단체는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국민의힘 일각에선 "이재명 후보 아들의 책임을 먼저 묻는 게 순서"라며 맞섰다. 유세 현장 곳곳에서는 '젓가락' '코끼리' '2번 옷' 같은 구호가 난무하며 혼란이 증폭됐다.
이준석 후보의 한마디가 촉발한 사건이 예상치 못한 우연과 맞물려 이번 대선에서 '정치' '팬덤' '젠더'를 아우르는 복잡한 혼란 양상을 빚고 있는 것이다.

이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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