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광현 칠곡경북대병원 신경과 교수
60세 직장인 A씨는 최근 이상한 경험을 반복했다.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는 길에 왼쪽 눈이 흐려지고, 동시에 오른쪽 팔다리에 힘이 빠지는 느낌이 찾아왔다. 몇 분 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회복됐다. 두세 차례 같은 일이 반복됐지만 병원을 찾진 않았다. '그냥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날 아침, 오른쪽 팔다리에 다시 힘이 빠졌고, 이번엔 돌아오지 않았다. 병원 응급실을 찾은 그는 다발성 뇌경색 판정을 받았고, 왼쪽 경동맥이 심하게 좁아져 있는 것이 확인됐다. 그에게 몇 차례 찾아왔던 이상 증상은 '지나가는 일'이 아니라, 뇌가 보낸 위험 경고였던 것이다.
◆초기에 병원 찾아야
A씨의 사례처럼 몇 분간 이상 증상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경우는 '일과성 허혈 발작(TIA)'으로 불린다. 흔히 '소중풍'이라고 부르지만, 결코 '작은 병'이 아니다. 짧은 시간 동안 뇌혈류가 일시적으로 차단되면서, 언어 장애나 감각 마비, 시야 이상, 균형 장애 등 신경학적 증상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이다. 미국 하버드 의대는 TIA를 '뇌졸중의 리허설'이라고 표현한다. 실제로 TIA 발생 후 2일 이내 약 5%, 7일 이내 약 8%, 90일 이내 약 15~20%의 환자에게 진짜 뇌졸중이 발생한다는 연구가 있다. 그만큼 TIA는 '운 좋게 지나간 일'이 아니라 '지금 치료하면 막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 신호 주는 '뇌'
대부분의 사람들은 뇌졸중이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지는 병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뇌는 수일에서 수주 전부터 경고 신호를 보낸다. 갑작스럽게 말을 못하거나 팔다리에 힘이 빠지는 경험, 시야가 순간적으로 흐려지는 현상 등이 반복되면, 이미 뇌혈류에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이 '괜찮아졌으니 병원까지 갈 일은 아니지'라고 생각한다. 바쁜 일상 속에서 증상이 사라졌다는 이유로 넘기거나, 노화 탓으로 돌리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뇌는 증상이 회복되었다고 해서 정상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다. 혈관 속 위험은 여전히 남아 있고, 언제 다시 막힐지 알 수 없다.
일과성 허혈 발작은 병이 아니라 '치료 기회'다. 증상이 나타난 직후 병원을 찾아 정밀 검사를 받으면 뇌졸중을 예방할 수 있다. 뇌 MRI, MRA(혈관 촬영), 심장 초음파, 심전도 등을 통해 원인을 파악하고, 상황에 따라 약물 치료·시술·수술을 결정한다. 그 과정이 빠를수록 뇌를 지킬 수 있는 확률도 높아진다. 영국 국가보건서비스(NHS)는 "TIA는 대부분 응급 상황으로 분류돼야 하며, 증상이 발생하면 즉시 병원을 방문하라"고 권고한다. 국내 병원에서도 'TIA 응급 경로'를 따로 운영해, 발작 이후 48시간 이내 환자 진료를 신속히 시행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 발병 원인 따라 치료 달라
TIA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크게 두 가지 양상으로 나뉜다. 첫째는 저관류다. 이는 뇌로 가는 혈관 중 주요 혈관(경동맥, 중대뇌동맥 등)이 심하게 좁아졌을 때 발생한다. 혈압이 떨어지면 뇌로 가는 혈류가 급감해, 해당 영역의 신경 기능이 일시적으로 마비된다. 이 경우에는 혈관 재개통 치료가 필요하다. 좁아진 혈관에 스텐트를 넣거나, 경동맥 내막을 절제하는 수술이 대표적이다. 둘째는 색전성 폐색 후 재개통다. 이는 심장이나 대혈관에서 떨어져 나온 혈전(색전)이 뇌혈관을 잠시 막았다가 다시 녹거나 이동하면서 증상이 회복되는 경우다. 이 경우 원인이 심장이라면 항응고제, 동맥 기원이라면 항혈소판제를 사용해 재발을 막는다. 정확한 원인 진단 없이 단순히 혈액순환 개선제를 먹거나 한방 치료만 받는 것은 오히려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다. TIA는 '원인을 찾아 막아야 하는 병'이지, '기운을 보강하는 병'이 아니다.
다음과 같은 증상이 있다면, 반드시 TIA를 의심해야 한다. △한쪽 팔다리에 갑자기 힘이 빠지거나 감각이 없어짐 △말을 더듬거나 발음이 어눌해짐 △한쪽 눈이 흐려지거나 시야 일부가 가려짐 △갑자기 중심을 잃고 몸이 휘청거림 △이유 없이 두통과 함께 시야나 의식이 흐려짐 등 이런 증상이 수분~수시간 내에 사라졌더라도 절대 안심해선 안 된다. 바로 이 순간이 뇌졸중을 막을 수 있는 기회다. 병원을 찾는 데 주저할 이유가 없다.
◆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
일과성 허혈 발작은 가볍게 지나가는 일이 아니다. 돌이킬 수 없는 뇌손상을 막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시간'이다. 그 시간을 놓치면, 이후 남는 건 마비, 언어 장애, 일상생활 상실 같은 후유증뿐이다. 증상이 사라졌다고 병까지 사라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증상이 없을 때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뇌졸중을 예방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TIA는 환자에게 주어진 두 번째 기회이자 마지막 기회다. 뇌는 말을 하지 않지만, 늘 신호를 보낸다. 한쪽 눈이 갑자기 어두워졌다면, 한쪽 손이 이상하게 감각이 둔해졌다면, 그건 뇌가 보내는 구조 요청이다. 그 신호를 듣고 움직일 수 있을 때가 바로 치료의 골든타임이다. A씨처럼 바쁘다는 이유, 피곤해서 그렇겠거니 하는 생각, 금방 괜찮아졌다는 경험이 반복될수록 뇌는 점점 더 위험해진다. 진짜 뇌졸중은, 아무 예고 없이 오는 병이 아니다. 그 전에 반드시 뇌가 문을 두드린다. 그 문을 외면하면 안된다.

강승규
의료와 달성군을 맡고 있습니다. 정확하고 깊게 전달 하겠습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