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의 푸른길, 이야기를 따라 걷다] ‘대게의 고장’ 강구대교 건너면 집게발에 놀라고 갓 찐 향에 취한다

  • 박관영·류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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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6-05 06:30  |  발행일 2025-06-04
3. 하루 더 머물고 싶은 하구마을, 강구
강구, 예로부 터 수산물 풍부한 어항으로 지금은 대게로 유명해져
1988년 대게축제 계기로 식당도 늘고 몰려든 사람들로 인산인해
강구항 공판장 경매현장도 장관…대게 수만마리 보는 재미 쏠쏠
강구항 영덕대게거리 조형물. 강구항 영덕대게거리는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주관하는 음식테마거리로 지정됐고 '2015 한국관광의 별'과 '2017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한국 100선'에도 선정됐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강구항 영덕대게거리 조형물. 강구항 영덕대게거리는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주관하는 음식테마거리로 지정됐고 '2015 한국관광의 별'과 '2017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한국 100선'에도 선정됐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오십천을 바라보며 강구대교를 건넌다. 1992년에 완공된 이 다리는 범선 모양이다. 낮에는 영덕대게를 잡아 올린 만선의 모습으로 당당하고, 밤이면 색색의 불빛으로 반짝거리며 빛의 항해를 연다. 다리 건너에는 강변의 곡선을 따라 가게들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고, 이 건물 저 건물마다 대형 대게 조형물이 하늘을 향해 그 커다란 집게발을 치켜들고 있다. 그것은 얼마나 강렬하고 순정한지, 바라보는 누구라 할지라도 어떤 의구심 없이 '아, 이곳은 대게의 고장이구나'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곳은 8코스로 나눈 영덕 블루로드 중 남호해수욕장에서 시작되는 2코스 '특별한 게 대게'의 도착지이자, 블루로드 A코스인 '빛과 바람의 길'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영덕의 맛과 멋이 있는 강구, 머물고 싶은 마을, 강구로 간다.


영덕 강구대교. 강구항 영덕대게거리는 강구대교 동안에서부터 강구항 방파제 초입의 동광어시장까지 약 1㎞ 이어진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영덕 강구대교. 강구항 영덕대게거리는 강구대교 동안에서부터 강구항 방파제 초입의 동광어시장까지 약 1㎞ 이어진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 강구대교를 건너며


강구는 강 어구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무려 40㎞를 달려온 오십천이 바다와 하나 되는 자리다. 아주 오래전부터 오십천을 따라 발달한 범람원과 하안단구의 평평한 땅에 사람들이 터를 잡았고, 바다와 통하는 물길의 목에는 자연스럽게 항구가 생겨났다. 삼국시대에는 왜구의 노략질을 막는 전초기지였다. 태조 왕건이 나비산에서 하룻밤을 머물렀을 때 고려 수군이 주둔해 그의 행차를 보호했던 곳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는 현의 외항으로서 동해안의 주요 어항이자 군사요충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강구는 수산물 풍부한 어항으로, 또한 군사기지의 군항으로 이름났던 곳이다.


이 강물에도 뼈아픈 역사가 흐른다.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을 계기로 이른바 전기의병이 전국에서 일어났을 때, 한 의병장이 이곳에서 순국했다. 그는 의성사람 김하락(金河洛)으로 이천에서 화포군으로 구성된 의병부대를 조직한 뒤 남한산성, 의성, 청송, 경주 등에서 연합의진을 결성해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후 김하락 의진이 영덕에 도착한 때는 1896년 5월 22일이다. 그는 신운석(申運錫)의 영덕의진 등과 함께 연합해 6월 3일과 4일 이곳 오십천에서 격전을 벌였다. 6월 4일은 폭우가 내리던 날이었다고 한다. 악천후 속에 관군의 집중 공격을 받은 의병들은 흩어졌고 김하락 장군은 총탄을 맞고 큰 부상을 당했다. 그는 "적군의 포로가 되기보다는 물고기 밥이 되겠다"라 말하고 불어난 오십천 강물에 몸을 던졌다. 상류 오십천대교 부근 호호대(浩浩臺)라 불리는 바위에서다.


의성사람 김하락(金河洛)은 이천에서 화포군으로 구성된 의병부대를 조직한 뒤 남한산성, 의성, 청송, 경주 등에서 연합의진을 결성해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김하락 의병장이 신운석(申運錫)의 영덕의진 등과 함께 연합해 전투를 벌인 오십천변 남천숲.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의성사람 김하락(金河洛)은 이천에서 화포군으로 구성된 의병부대를 조직한 뒤 남한산성, 의성, 청송, 경주 등에서 연합의진을 결성해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김하락 의병장이 신운석(申運錫)의 영덕의진 등과 함께 연합해 전투를 벌인 오십천변 남천숲.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이후 조선은 일제에 강제 병합됐고, 수탈의 역사가 시작된다. 일본 어부들이 몰려와 오십천 하구에 거주하기 시작했으며 연근해의 어족자원은 이들의 손에 들어갔다. 그러한 동안 몇 차례 태풍과 홍수를 겪은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안전과 편리한 어로 작업, 잡은 수산물의 신속한 처리 등을 위해 근대식 어항의 필요성을 느꼈다. 1913년 축항 공사가 시작됐고, 몇 번의 자연재해로 공사가 거듭되다가 결국 1936년에 준공된다. 이즈음 강구교의 건설도 시작돼 이듬해 콘크리트 다리가 완성됐다. 강구대교 아래 200m 지점에 있는 강구교다. 다리가 완성되자 강구항의 해산물들은 전국 곳곳으로 퍼져나갔고 강구항은 동해안의 풍족한 항구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광복 후에도 강구교는 부산과 강릉, 대구와 서울 등지로 수산물을 운반하는 데 중요한 고리 역할을 했다. 한국전쟁 때는 파죽지세로 남하하는 북한군을 막기 위해 폭파되기도 했다. 현재 강구교는 공사 중이며 2025년 12월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영덕 강구항 해파랑공원. 해파랑공원 옆에는 대게거리가 있고 공원에서 바닷길을 따라 영덕 블루로드가 이어진다. 8코스로 나눈 영덕 블루로드 중 남호해수욕장에서 시작되는 2코스 '특별한 게 대게'의 길이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영덕 강구항 해파랑공원. 해파랑공원 옆에는 대게거리가 있고 공원에서 바닷길을 따라 영덕 블루로드가 이어진다. 8코스로 나눈 영덕 블루로드 중 남호해수욕장에서 시작되는 2코스 '특별한 게 대게'의 길이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 강구항 영덕대게거리


강구대교 끝자락에서 오십천이 찰랑 손닿을 듯한 지하에 촘촘하게 들어서 있는 상가들을 본다. 도로 아래에서 강물에 다리를 뻗은 모습이 어딘가 이국적이다. 그동안 도로를 따라 휘황하게 이어지는 대게거리에 정신을 뺏겨 알아차리지 못한듯하다. 옛날에는 좁은 도로를 따라 대게 노점이 펼쳐졌었다고 한다. 그러자 영덕군에서는 1996년에서 1997년 사이 강구대교와 강구교 사이 지하 약 200m 구간을 정비해 상가 거리를 조성하고 81동의 상가를 입주시켜 '풍물지하 어시장'을 열었다고 한다. 이것이 영덕대게거리의 시작이다. 그리고 곧이어 1998년에 '영덕대게'를 상표 등록하고 '영덕대게축제'를 시작했다.


영덕대게의 역사는 오래 됐다. 고려 말 정치가이자 학자인 권근의 '양촌집'에 따르면 930년 병산전투에서 크게 승리한 왕건이 이후 안동과 영양, 영해를 거쳐 경주로 향하던 길에 축산면에서 처음 영덕대게를 맛보았다고 한다. 왕건은 돌아간 뒤에도 그 맛을 잊지 못했고, 고려 개국 후에는 진상품으로 수라상에 올랐다고 한다. 또는 왕건이 고려 개국 후인 940년에 이 지역을 순시하다 영덕대게를 맛보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미 지역 특산물로서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덕대게의 가공은 1937년에 시작돼 강구항을 통해 서울, 부산, 대구 등으로 팔려나갔다. 이후 1950년대에 강구항의 조일산업주식회사가 통조림 대게를 생산하면서 영덕대게는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영덕군은 1969년에 처음으로 활자판 인쇄의 통계연보를 발행하면서 그 표지에 영덕대게를 형상화했는데, 이는 영덕의 대표적인 특산물인 영덕대게에 대한 자부심이자 적극적인 주목이었다.


1998년의 첫 영덕대게축제를 전후로 강구항 주변의 영덕대게 식당은 점점 늘어난 것으로 여겨진다. 영덕군은 2005년 대게특구로 지정됐는데, 당시 강구항의 대게식당은 250여 개에 달했다고 한다. 영덕대게는 다른 지역의 대게에 비해 몸통과 다리가 크고 껍질이 얇으며 살이 많고 맛이 담백하다. 영덕대게는 영덕군의 영해 대진(大津) 앞바다에서 감포(甘浦) 앞바다에 걸쳐 잡히는데 영덕군 일원의 앞바다가 주산지다. 영덕대게의 어획 기간은 12월에서 다음 해 5월까지다. 특히 강구면과 축산면 앞바다에서 3~4월에 잡힌 영덕대게를 우리나라의 대게 가운데 으뜸으로 친다. 바다 밑바닥이 개흙이 전혀 없는 깨끗한 모래층이어서 깊고도 더욱 담백한 맛을 내기 때문이다. 이 시기 맞춰 영덕대게축제가 열리며 겨우내 강구항 일대는 영덕대게를 맛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영덕대게는 국내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대한민국 대표브랜드 대상' 수산물 부문에서 2012년 첫 수상을 시작으로 2013년, 2015년부터 2024년까지 연속 수상했다. 총 12회 대상 수상이라는 전무후무한 성과다. 또한 강구항 대게거리는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주관하는 음식테마거리로 지정됐고 '2015 한국관광의 별'과 '2017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한국 100선'에도 선정됐다.


강구항 영덕대게거리는 강구대교 동안에서부터 강구항 방파제 초입의 동광어시장까지 약 1㎞ 이어진다. 지하 상가식당과 골목 안 가게들을 합하면 그 길이와 숫자를 헤아리기도 어렵다. 가게마다 게 삶는 찜통이 허연 김을 뿜어낸다. 동광어시장은 4층 규모로 어시장과 식당가가 어우러져 있다. 어시장은 당일 경매 받은 대게와 활어, 해산물로 넘쳐나고 식당에서는 품질 좋은 대게부터 싱싱한 활어회까지 맛볼 수 있다.


영덕 강구항. 2011년 3월 9일 국가어항에서 항만인 연안항으로 승격돼 연안과 원양어업의 전진기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대게철에는 수많은 대게 잡이 어선들이 강구항에 집결한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영덕 강구항. 2011년 3월 9일 국가어항에서 항만인 연안항으로 승격돼 연안과 원양어업의 전진기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대게철에는 수많은 대게 잡이 어선들이 강구항에 집결한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강구항은 2011년 3월 9일 국가어항에서 항만인 연안항으로 승격돼 연안과 원양어업의 전진기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많은 수산물이 거래되고 있고 홍게나 고동 등의 수산물 가공 공장도 여럿이다. 대게철에는 수많은 대게 잡이 어선들이 강구항에 집결한다. 일주일에 서너 번 대게 배가 들어오는 날이면 강구항 공판장에서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조업을 마친 배에서 대게를 내리고, 곧장 경매장 바닥에 늘어놓는다. 대게 수천수만 마리가 하늘을 향해 다리를 치켜든 모습도,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경매 현장도 강렬하다. 새벽녘 영덕대게를 잡으러 나가는 뱃머리 위로 붉게 떠오르는 태양도 장관이다. 떠나는 배를 보려고, 만선으로 돌아오는 배를 보려고, 강구에서 잠을 청하는 이들도 많다.


강구항 뒤편 흥성한 대게거리의 끝자락에는 '해파랑 공원'이 펼쳐진다. 푸른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대게 조형물이 있고, 잔디광장과 산책길, 놀이터, 바닥분수 등이 조성돼 있는 너른 공간이다. 이곳은 영덕대게축제의 메인 장소로 다양한 행사를 치르고 휴식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2016년에 만들었다. 파랑이 오랜 세월 깎아놓은 평평한 파식대에 자리한 공원은 때때로 망망한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정온한 평원 같다. 그래서 블루로드는 이곳에 잠시 멈추어 숨을 고르고는 빛과 바람의 고장으로 나아간다.


글=류혜숙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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