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실은 23일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의 브리핑을 통해 이재명 대통령의 장관급 내각 인선을 발표했다. 윗줄 왼쪽부터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 조현 외교부 장관 후보자, 정동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 안규백 국방부 장관 후보자,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 후보자, 유임된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아래 줄 왼쪽부터 김성환 환경부 장관 후보자,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국무조정실장에 임명된 윤창렬 LG글로벌 전략개발원장.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발표한 11개 부처 장관 후보자에 대한 키워드는 '파격'과 '능력 중심'으로 압축된다. 특히 이 대통령의 '실용주의'로 대표되는 국정 철학이 두루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파격 인선 핵심은 '민간'
이번 인선에서 화제를 모은 것은 기존 정치인 또는 관료 출신 대신 민간 전문가들의 발탁이다. 이 대통령이 이날 신임 장관 인선을 발표하면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민간 전문가 2명을 발탁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배경훈(49) LG AI연구원장은 전자물리학·전자공학 전공자로 AI와 빅데이터 분야에 전문성을 갖췄다. 앞서 대통령실에 합류한 네이버클라우드 AI이노베이션 센터장 출신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과 함께 이 대통령의 'AI 드라이브'를 주도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스타트업 등 민간 산업 분야의 발전을 촉진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로는 한성숙(58) 네이버 고문이 발탁됐다. 한 후보자는 1997년 인터넷 발전 초창기 대표적 포털 사이트였던 엠파스의 창립 멤버였다. 회사를 옮긴 뒤 네이버를 지금의 위치로 끌어올리는 데 공헌했고 웹툰·네이버페이 서비스의 성장을 주도했다. 한 후보자는 2017∼2022년까지 5년간 여성 최초로 네이버 최고경영자(CEO)를 지내기도 했다.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로는 김영훈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명했다. 대통령실은 "민주노총 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노동계의 목소리를 대변해 온 인물로, 산업재해 축소 및 '노란봉투법' 개정이나 '주 4.5일제' 도입 등 일하는 사람의 권리를 강화하는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정치권은 민간 전문가들로 내각을 채운 것은 파격적 인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통상 정부 부처 수장은 정치인·교수·관료 출신이 기용돼 왔다. 정치인은 리더십과 조율 능력이 탁월하고, 관료는 부처 행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안정적이라는 점에서 선호된다. 교수의 경우 관련 분야 전문성을 인정받아 발탁되는 경우가 많다.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제1차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간 전문가는 현장 실무에 대한 깊은 이해와 전문성이라는 분명한 장점이 있지만 행정에 대한 이해나 재산·가족관계 등 전방위적 검증을 받아야 하는 인사청문회가 부담이라는 평가다.
이같은 상황에도 이 대통령이 두 사람을 장관 후보자로 발탁한 것은 위기 상황의 한국 경제를 타개할 일종의 '승부수'로 풀이된다. 인수위 없이 새 정부가 출범한 만큼 지금 당장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을 쓰겠다는 이 대통령의 평소 생각이 투영됐다는 설명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도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기업 출신을 다수 기용한 이유를 묻는 말에 "대한민국 경제를 살리기 위한 특단의 조치"라고 말했다.
현역 정치인이긴 하나 국방부 장관에 '민간' 출신의 더불어민주당 중진인 안규백 의원이 지명된 것도 화제를 모았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이후 첫 민간인 출신 국방장관으로, 이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공약이 실현된 것이다. 안 후보자는 국회 국방위 간사 및 국방위원장 등 5선 국회의원 이력의 대부분을 국방위에서 활동해 군에 대한 이해도가 풍부하다는 것이 강훈식 비서실장의 설명이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23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장관 후보자 지명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임·지역 안배도 눈길
특히 송미령 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도 유임돼 화제를 모았다. 강 비서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보수와 진보의 구분 없이 기회를 부여하고 성과와 실력으로 판단하겠다는 이재명 정부의 국정 철학인 실용주의에 기반한 인선"이라고 소개했다.
송 장관은 입장문을 내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그동안 쟁점이 됐던 정책이나 법안 등에 대해 새 정부의 국정 철학에 맞춰 적극 재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송 장관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농업·농촌 정책 방향을 연구해온 전문가로, 지난 2023년 12월 29일 전 정부 두 번째 농식품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이날 발표된 12명 장관급 후보자 가운데 영남과 호남의 '안배'도 이뤄졌다는 평가다. TK(대구·경북) 2명, PK(부산·울산·경남) 2명 등 영남 지역 4명, 호남(전북 3명·전남 1명) 4명, 수도권(서울·경기) 2명, 충청(유임) 1명, 강원 1명 등으로 지역 안배가 골고루 이뤄졌다는 설명이다.
특히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권오을 전 의원을 국가보훈부 장관 후보자로 발탁한 배경에 대해 강 비서실장은 "경북 안동에서 3선 의원을 역임했으며, 지역과 이념을 넘어 '특별한 희생에는 특별한 보상'이라는 보훈의 의미를 살리고 국민 통합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여당 현역 의원들의 대거 입성도 있었다. 환경부 장관 후보자로는 민주당 김성환 의원이,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로는 강선우 의원이, 해양수산부 장관에는 전재수 의원이 각각 이름을 올렸다.
대구 출신의 강선우 후보자에 대해 대통령실 측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간사 및 여가위원회 위원을 거치며 사회적 약자의 권익 보장을 위해 활동해 온 정책 전문가"라며 "소통과 경청을 바탕으로 사회 갈등과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통일부 장관 후보자로는 민주당 중진 정동영 의원, 외교부 장관 후보자로는 조현 전 외교부 1차관이 각각 지명됐다.
국무조정실장으로는 윤창렬 전 국무조정실 국무1차장이 임명됐다. 강 비서실장은 "균형 잡힌 시각으로 정책집행에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한다는 평가를 받은 만큼, 무너진 행정부 시스템을 복원하고 나아가 대한민국의 복합 위기를 해결해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강 비서실장은 이날 발표된 후보자 가운데 일부는 국민추천제 추천 인물 리스트에도 포함됐던 인사들이라고 덧붙였다. 강 비서실장은 "공익을 위해 일해 줄 것을 바라는 국민의 여망이 함께하고 있다"며 "이들의 임명이 국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각오를 새롭게 해달라"고 당부했다. 여성 후보자는 강선우, 송미령, 한성숙 등 3명이다. 성비 고려 여부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많은 여성 인사를 발굴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빠른 청문 절차를 주문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중동 분쟁 등 국제 정세가 긴박하게 흐르고 있으며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해지고 있다"며 "청문 절차가 빠르게 진행돼 당면 위기에 내각이 신속히 대응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언급을 했다고 강 비서실장은 전했다.

정재훈
서울정치팀장 정재훈입니다. 대통령실과 국회 여당을 출입하고 있습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