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지켜온 동해의 붉은 혼] 9. 포항 시민과 해병대, 그 특별한 관계

  • 박관영·류혜숙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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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7-23 20:20  |  발행일 2025-07-23
포항 해군·해병대항공순직자 추모비. 이 추모비는 포항시 남구 청림동 몰개월 비행기 공원에 위치해있다. 조국 해양수호 임무를 수행하다 순직한 해군 및 해병대 항공 조종사들의 넋을 기리고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포항 해군·해병대항공순직자 추모비. 이 추모비는 포항시 남구 청림동 몰개월 비행기 공원에 위치해있다. 조국 해양수호 임무를 수행하다 순직한 해군 및 해병대 항공 조종사들의 넋을 기리고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포항시 남구 청림동 몰개월 비행기 공원 내 포항 해군·해병대항공순직자 메모리얼 벽. 해군해병대 항공 순직자 48명의 이름이 새겨있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포항시 남구 청림동 몰개월 비행기 공원 내 포항 해군·해병대항공순직자 메모리얼 벽. 해군해병대 항공 순직자 48명의 이름이 새겨있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포항은 한국전쟁 발발 직전인 1949년 시(市)로 승격했다. 당시 인구 5만여 명의 작은 어촌마을이었던 포항은 전쟁을 거치며 많은 가족과 이웃을 잃었고 황폐해졌다. 그때 해병대가 왔다. 해병대의 존재는 도시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여전히 포항에서 해병대가 지니는 의미는 정말 대단하다. 지난 수십 년간 태풍, 지진, 산불 등 막막하고 힘든 모든 순간에 해병대는 포항시민의 곁을 지켰다. 그들은 상륙돌격장갑차를 몰아 폭풍 속으로 돌격했고, 지진 피해현장에서 가장 먼저 상황 파악에 나섰다. 들에서, 산에서, 거리에서, 어디서든 도움이 필요한 곳마다 그들이 있었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해병대가 포항으로 온 지 6개월 만인 1959년 9월17일, 우리나라 기상관측사상 최악의 태풍으로 불리는 태풍 '사라'가 한반도를 강타했다. 포항도 예외는 아니었다. 형산강이 범람했고 다리와 도로가 파괴됐으며 수많은 집들이 떠내려갔고 사람들은 위험에 처했다. 그때 해병대의 상륙장갑차대대(LVT)가 익사 직전의 주민들을 구출해냈다. 공병대대가 출동해 강에 떠내려가는 시민들을 구했다.


태풍이 물러간 후에는 해병대 제1사단 공병대가 전 인원과 장비를 투입해 철야로 작업, 단 일주일 만에 파괴된 교량과 도로를 전부 복구했다. 수해로 유실된 집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과정에서 해병대 제1사단 공병대대 김문기 상사가 낭떠러지로 밀려나는 불도저를 구하려다 순직하는 안타까운 사고도 있었다.


그때부터 2003년 태풍 '매미', 2016년 초대형 산불, 2016년 태풍 '차바', 2017년 포항지진 등 재해재난이 일어날 때마다 그 고통스러운 현장에는 해병대가 있었다.


2022년 포항에 큰 피해를 남긴 태풍 '힌남노'의 내습 당시 해병대는 한국형 상륙돌격장갑차(KAAV)와 고무보트(IBS)를 투입해 침수 지역 내 고립된 주민 수색 및 구조 활동을 펼쳤다.


해병대의 군사작전에 준하는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지원은 주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힌남노의 피해 복구가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태풍 '난마돌'이 북상하자 해병대는 KAAV 10여 대, IBS 30여 대를 남부소방서와 북부소방서를 포함한 주요 침수 위험지역에 각각 배치시키는 등 추가 피해를 대비하기도 했다.


특히 힌남노에 의한 포스코 포항제철소의 태풍 침수 피해는 컸다. 포스코와 협력사 임직원뿐만 아니라 포항 시민과 해병대 등이 합심해 일평균 1만5천여명, 도합 100만 명이 설비복구에 참여했고 78일 만에 대부분 정상화하는 데 성공했다. 태풍보다 강한 공동운명체적 땀과 열정의 성과였다.


포항 남구 오천읍 문덕리의 문덕 헬로부대거리. 2021년 상인 주도로 시작된 이래 2023년 포항시의 활성화 추진과 포스코의 지원으로 특화 거리가 됐다. 포은문화축제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포항 남구 오천읍 문덕리의 문덕 헬로부대거리. 2021년 상인 주도로 시작된 이래 2023년 포항시의 활성화 추진과 포스코의 지원으로 특화 거리가 됐다. 포은문화축제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해병대는 포항시민의 따뜻한 이웃


평화로운 때에도 해병대는 포항시민의 따뜻한 이웃이다. 해안경계 작전 중 의식을 잃고 도로에 쓰러져 있는 시민을 발견해 구하거나, 바닷물에 빠진 피서객을 구한 해병대 중사의 이야기가 국민신문고를 통해 뒤늦게 알려진 적도 있다.


해병대는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읍면지역을 중심으로 주기적으로 이동진료실을 설치하고 군의관, 간호장교, 의무부사관, 의무병 등이 참여해 주민들의 건강상태를 무료로 점검해주고 있다. 특히 평소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직접 찾아가 내과·정형외과 등의 진료를 통해 몸을 살피고, 물리치료를 통해 온기를 주고받으며, 상담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고, 백세를 기원하는 사진을 찍으며 따뜻한 마음을 전한다.


농촌에 일손이 부족할 때도 해병대가 달려간다. 재해로 쓰러진 벼를 세우거나 떨어진 과일을 줍거나 무너진 하우스의 복구는 물론이고, 봄·가을 두 차례 농번기 때마다 장병들은 모내기와 모판 나르기, 열매솎기, 봉지 씌우기 등에서부터 수확 및 운반 작업, 벼 베기 등 일손이 가장 많이 필요한 시기를 농부들과 함께 한다.


해병대는 지역 행정기관과 긴밀히 소통하면서 저소득 고령 농가를 가장 먼저 돕고 있으며 지역별 현장상황실과 구호소를 운용하는 등 대민지원 중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 예방에도 철저히 대비한다. 해병대가 매년 대민지원에 투입하는 병력은 2만여 명에 이른다.


몇 해 전 초여름 도구해안에서 여기저기 흩어져 쓰레기를 줍고 있는 빨간 옷의 사나이들을 본 적 있다. 훈련 전 정비인가 했는데, 지방자치단체에서 청소도구 등을 지원받아 해병대 장병들이 포항의 그 긴 해변을 청소한단다. 이러한 해병대의 해안환경정화활동의 역사는 20년이 넘는다고 한다.


다무포 고래마을의 새하얀 담벼락에도 해병대 장병들의 손길이 닿아 있다. 해병대는 여러 읍면동 및 인근 학교와 자매결연으로 끈끈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으며 지역 내 복지시설을 꾸준히 찾아 봉사하고 있다.


현역 해병만이 아니다. 지역 내 큰 행사가 있는 날이면 해병대전우회에서 발 벗고 나서 주차 정리와 같은 자원봉사로 질서 유지를 돕는다. 지난 7월4일에는 해병대 예비역들로 이루어진 '해병대 해룡회'가 출범했다. 해병대 예비역의 조직력과 사명감을 기반으로 지역사회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현역 장병들과의 연대를 통해 지역을 지키겠다는 봉사단체다. 이는 민군상생의 새로운 모델이며 단순한 봉사를 넘어선 시민의 힘과 연대의 상징이다


◆함께, 더 가까이


"포항의 승리를 위해 해병대 장병 여러분의 힘찬 응원이 필요합니다!"


프로축구팀 포항 스틸러스의 경기가 홈구장 포항스틸야드에서 치러지는 날이면 들을 수 있는 장내 아나운서의 멘트다. 빨갛게 변한 전광판에 해병대 앵커와 '팔각모 사나이'라는 글자가 나오면 포항 스틸야드에 온 해병대원은 모두 기립해 해병대 박수와 함께 군가를 제창한다. 그러면 해병대원뿐만 아니라 포항시민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스틸러스의 승리를 위해 목청이 터져라 군가를 부른다. 철저한 오와 열, 칼 같은 박수, 터질 듯 커다란 목소리는 전율이다. 그 모습에 짜릿한 충격을 받아 해병대를 꿈꾸는 소년들도 많다.


일반인에게 사단의 담은 참 높게만 느껴진다. 그러나 스틸야드의 객석에 해병대 장병들이 포항 시민들과 나란히 앉아 함께 승리의 함성을 지르듯, 해병대는 지역사회와 함께하고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다양한 노력을 한다.


1997년에 시작된 '해병대 캠프'는 해병대를 알리는 데 혁혁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해병대 캠프는 1회당 200명 내외를 신청 받아 여름과 겨울에 운영하고 있는데, 지난 1월 '2025년 겨울 해병대 캠프'까지 총 135회에 걸쳐 3만6천명 이상이 수료했다.


14세부터 75세까지 남녀노소 참가자들은 닷새간 다채로운 훈련을 수행하며 무적해병대정신을 수양한다. 전문교관진과 군의관이 포함된 의료진을 구성해 철저한 안전감독과 오랜 노하우를 바탕으로 국내 최고 수준의 병영문화캠프를 주관하고 있다.


포항 남구 오천읍 문덕리의 문덕 헬로부대거리.

포항 남구 오천읍 문덕리의 문덕 헬로부대거리.

포항 문덕 헬로 부대 거리 곳곳에는 헬로부대 공감쉼터가 설치돼 있다. 쉼터에 앉아 천장을 보면 육해공군 각 부대 및 사단의 부대마크가 보인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포항 문덕 헬로 부대 거리 곳곳에는 헬로부대 공감쉼터가 설치돼 있다. 쉼터에 앉아 천장을 보면 육해공군 각 부대 및 사단의 부대마크가 보인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매년 봄 해병의 거리에서 열리는 '해병문화축제'도 민관군 대통합의 장이다. 특히 폭넓은 부대 개방은 반가운 일이다. 그것은 무적해병의 자긍심을 드높이고 방문객의 자긍심마저 하늘을 찌르게 한다. 또한 모든 연령층을 아우르는 체험 부스와 해병의 거리에 울려 퍼지는 지역예술인들의 공연 등은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해병의 거리에서 냉천을 건너면 '문덕헬로부대거리'가 있다. 오천읍 문덕리 일대가 개발되면서 조성된 상업지역으로 해병대와 철강산단 배후의 원룸 밀집 지역이기도 하다.


문덕헬로부대거리는 2021년 상인 주도로 시작된 이래 2023년 포항시의 적극적인 활성화 사업 추진과 포스코의 도움으로 해병대가 주둔하고 있는 오천읍의 특성이 반영된 특화 거리가 됐다.


거리 입구에 팔각모를 쓴 해병대원 조형물이 경례를 하고 있다. 거리곳곳에는 헬로부대 공감쉼터가 설치돼 있다. 쉼터에 앉아 천장을 보면 육해공군 각 부대 및 사단의 부대마크가 보인다. 누군가에게는 긍지고, 누군가에게는 뿌듯한 추억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몸서리나게 궁금한 사인이다. 새롭게 개발했다는 문덕헬로부대찌개와 문덕헬로소주도 궁금하다.


가을이 깊어가는 11월이면 문덕헬로부대거리 일대에서 '포은문화축제'가 열린다. 오천읍은 포은 정몽주의 고향으로 포은문화축제는 포은선생의 충절과 정신을 지역문화의 정체성으로 계승하기 위해 2007년부터 매년 개최해온 오천읍의 대표축제다.


축제는 젊음의 페스티벌 및 전야제를 시작으로 해병대 군악대 및 의장대의 축하공연과 함께 본격적인 막이 오른다. 함께, 더 가까이 마음을 모으고 서로가 가진 것을 나누는 것, 그것이 포항 시민과 해병대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다.


글=류혜숙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공동기획 - 포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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