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항 수도산 덕수공원에 조성된 수도산충혼탑. 눈물 같기도, 핏방울 같기도, 불꽃 같기도 한 모양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충혼탑 양 옆으로는 돌격하는 형상의 국군과 학도병이 동상이, 뒤에는 위패 봉안실이 있다.
국군·학도병 동상 옆 '수도산 충혼탑'
눈물·핏방울·불꽃 같은 모습과 마주
자유민주주의 산교육·안보의식 고취
수도산 반바퀴 도는 호국감사둘레길
학도의용군 전적비~해도근린공원
주요 전적지 잇는 '호국문화의 길'
국가유공자 숙원 통합보훈회관 건립
전국 첫 환동해호국역사관도 속도
포항 수도산은 80m가 채 되지 않는 산이다. 높지 않은 정상이지만 포항 시내가 360도 조망된다. 포스코와 포항운하, 호미반도 등의 전경이 펼쳐지고 영일만의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수도산 동쪽 아래로 포항 그린웨이 철길숲이 지나간다. 푸른 길 따라 북쪽에는 포항여고가 자리하고 남쪽으로는 형산강과 이어진다.
포항여고는 한국전쟁 당시 포항여중이었던 곳이다. 그곳에서 1950년 8월, 71명의 학도병이 2천500여 명의 북한군과 백병전으로 싸웠다. 북한군은 수도산을 타고 내려왔다. 그들은 포항을 장악하고 경주와 울산을 통해 부산으로 남하하려 했다. 수도산 일대는 수많은 학도병과 국군이 목숨을 던져 한 달 넘게 맞서 싸운 한국전쟁 최대 격전지 중 한 곳이었다.
◆수도산 덕수공원
수도산의 원래 이름은 백산(白山)이었다고 한다. 포항 시내 기준 서쪽에 있어서 서산(西山)으로 불리기도 했다. 산 밑의 서산 터널이 옛 이름의 기억이자 증거라 한다. 조선시대에는 세조의 왕위찬탈에 항거한 모갈거사(茅葛居士)라는 분이 이 산에서 은둔하다가 스스로 곡기를 끊고 순절했다고 한다. 이후 그의 충절을 되새겨 모갈산(茅葛山)이라 불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일제 강점기인 1923년에서 1926년에 포항 시내 상수도가 설치됐는데 그 배수지를 이 산정에 설치한 후부터 수도산(水道山)으로 불리게 됐다. 도심 한복판의 산이다 보니 등산로가 잘 개발돼 있다. 사방으로 들머리 날머리가 연결돼 있으며 사계절 등산객과 행락객으로 붐비는 시민의 휴식처다.
수도산 일대 덕수동에는 '덕수공원'이 조성돼 있다. 약한 오르막을 따라 수양버들이 아름다운 작은 연못과 모갈정 쉼터를 지나면 '수도산 충혼탑'을 마주하게 된다. 눈물 같기도 하고 핏방울 같기도 하고 불꽃 같기도 한 모습이다. 탑 좌우에는 돌격하는 형상의 국군과 학도병이 동상으로 자리하고 충혼탑 뒤쪽의 건물에는 위패 봉안실이 마련돼 있다.
수도산 충혼탑은 6·25전쟁 당시 전사한 포항출신 2천68위 호국영령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1964년 시민들의 뜻을 모아 건립한 탑이다. 이후 1982년과 1994년, 2008년 등 세 차례 개축 및 확장해 왔으나 충혼탑의 노후화 및 위패봉안실의 누수 등으로 2013년에 다시 세워졌다고 한다.
위패 봉안실은 6·25전쟁사와 치열했던 포항지역전투를 배우고 안보의식을 고취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돼 있으며, 조국과 민족을 위해 산화한 지역 호국영령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평소 위패 봉안실은 잠겨 있지만 호국 보훈의 달인 6월에 한 달간 개방하며, 매년 그들의 희생에 감사하는 행사가 치러지고 있다.

포항 반공순국청년동지위령비. 수도산충혼탑 오른쪽 계단을 오르면 보인다. 이 위령비는 한국전쟁 전후 시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분투하다 유명을 달리한 포항 출신의 청년 130명과 이름 없이 희생된 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다.
충혼탑 오른쪽으로 난 계단을 조금 오르면 '반공순국청년동지위령비'가 있다. 이 위령비는 한국전쟁 전후 시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분투하다 유명을 달리한 포항 출신의 청년 130명과 이름 없이 희생된 영령들을 추모하는 비석이다.
이곳에서는 1981년부터 매년 10월 '자유수호희생자 합동위령제'가 거행된다. 희생된 영령들의 넋을 위로하고 국가 안보의식 고취와 영원한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에 산교육이 될 수 있도록 해마다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길과 작은 봉우리마다 포항 시내가 사방 훤하다. 그렇게 이어져 수도산을 반 바퀴 도는 길을 '호국감사둘레길'이라 부른다.
포항은 한국전쟁의 상흔이 많은 도시다. 학도병의 희생이 가장 컸던 천마산 전투, 소티재 전투, 비학산 전투, 기계안강 전투, 형산강 전투 등 셀 수 없이 많은 전투가 있었다. 당시 포항 시내가 인민군에게 점령됐고, 함포와 폭격으로 시가지는 폐허가 됐었다.
전쟁을 치른 지 80여 년이 지났다. 아직 남북이 대치하고 있고 전쟁의 상흔은 깊은 상처로 남아있지만 이 작고 귀여운 산에서 보는 포항은 평화롭고 묵직하다.

포항 학도의용군 호국문화의 길 안내판. 호국문화의 길은 포항여고(과거 포항여중) 정문 앞에 세워진 학도의용군 6·25전적비에서부터 수도산 덕수공원의 충혼탑,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과 포항지구 전적비, 전몰학도 충혼탑을 거쳐 기계안강지구 전투 전적비와 격전지 전망대까지 이어져 있다.
◆호국문화의 길
수도산 덕수공원 입구에 '학도의용군 호국문화의 길' 안내판이 있다. '호국문화의 길'은 포항여고(과거 포항여중) 정문 앞에 세워진 학도의용군 6·25전적비에서부터 수도산 덕수공원의 충혼탑을 거쳐 남쪽 수도산 자락 탑산의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과 포항지구 전적비, 전몰학도 충혼탑을 지나 기계안강지구 전투 전적비와 격전지 전망대까지 이어져 있다.
지난해 포항시는 포항여고에서 시작해 전몰학도 충혼탑에서 해도근린공원을 잇는 '포항 호국 트레일(Trail)'을 조성해 포항의 대표 관광코스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해도근린공원은 '최후의 방어선 형산강 워커 라인(Walker Line)' 표지석과 형산강 도하작전 연제근 영웅 특공대군상, 6·25 참전 유공자 명예 선양비 등이 자리하고 있는 한국전쟁의 주요 전적지다. '학도 의용군 호국 문화의 길'과 '포항 호국 트레일'은 거의 겹치지만 두 길을 합하면 조금 더 완전한 포항 호국의 길이 이어진다.
경북에는 308곳의 현충시설이 있다. 독립운동시설이 162개소, 국가수호시설이 146개소다. 그중 포항은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을 비롯해 용화사 위령탑, 전몰학도 충혼탑, 6·25전쟁 호국 영웅탑, 3·1의거 기념탑, 대전 3·1의거 기념관 등 30여 곳으로 경북에서 가장 많은 현충시설을 갖고 있다.
포항은 삼국시대부터 왜적은 물론 북방 민족의 침입에 대항하는 국방의 전략적 거점이었다. 임진왜란과 한말 수많은 의병들이 활동한 호국의 땅이었고 한국전쟁 낙동강 최후의 방어선이었다.
'포항(浦項)'이라는 이름은 '항구의 길목'이라는 뜻으로 국토수호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내포하고 있다. 호국국방도시로서 역사의 고비마다 불굴의 호국정신으로 국토를 수호해 온 포항은 '대한민국 호국 성지 포항'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한 많은 고민과 계획을 가지고 있다.

2023년 신축된 포항시통합보훈회관. 포항지역 보훈단체의 숙원사업으로, 형산강 권역 호국역사문화제를 최초로 열었다.
보훈단체에 따르면 현재 포항지역에는 10개 보훈단체에 국가유공자 2만여 명, 보훈 가족 4만5천여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포항시는 6·25참전자유공자회 포항시지회 등 10개 단체에 사업운영 및 행사비를 지원하고 있다.
2023년에는 국가유공자 숙원사업이었던 통합보훈회관 신축을 완료했으며 형산강 권역 호국역사문화제를 최초로 개최했다. 국가보훈부 지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전국 최초의 '환동해호국역사문화관' 건립도 속도를 내고 있다.
포항시 남구 오천읍 일월동 일대에 건립 예정인 '환동해호국문화역사관'은 '강원-포항-울산'을 아우르는 한반도 동해안의 호국역사 전시장이 될 예정이다. 호국 역사를 담은 다양한 전시와 프로그램, 체험 활동 등을 통해 기념, 전시, 체험, 교육적 기능을 동시에 제공하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을 예정이며 2027년 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산남의진 호국선열 추모제, 3·1절 기념식, 기계안강지구 전투전승행사, 전몰학도의용군 추념식 등은 매년 지속되고 있다.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도 꾸준히 해 오고 있으며 의병활동 등의 다양한 체험프로그램, 3·1만세운동 재현, 호국 음악회나 연극, 해병대와 함께하는 여러 행사 등은 미래를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기존의 현충 기념시설도 정비, 보완해 나갈 예정이다. 그리고 현충시설 간 연결망을 보다 구체화해 호국의 길 또는 호국보훈 테마거리 등을 조성해 포항이 명실상부한 호국역사문화도시임을 공고히 해 나갈 계획이다.
호국성지 포항의 행보는 미래로 향해 있다. 우리 미래 세대에게 역사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전쟁의 참상을 일깨우며 국가의 역사와 가치에 대한 자부심을 키울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리고 자유와 평화의 무게를 전하는 것, 그것은 현세대의 책무이기 때문이다.
글=류혜숙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공동기획 - 포항시>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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