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풍요로운 문화도시 산소카페 청송] 8. 청송사랑화폐와 전통시장

  • 김광재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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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8-19 20:20  |  수정 2025-08-19 18:32  |  발행일 2025-08-19
청송사랑화폐 매년 700억 발행…화마 덮친 지역경제 회복 ‘견인차’
청송 진보전통시장. 김주영 작가는 이곳에서의 기억과 전국의 시장을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100년 전 보부상 이야기인 대하소설 '객주'를 썼다. 진보전통시장은 '객주'가 태동한 곳이라 할 수 있다.

청송 진보전통시장. 김주영 작가는 이곳에서의 기억과 전국의 시장을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100년 전 보부상 이야기인 대하소설 '객주'를 썼다. 진보전통시장은 '객주'가 태동한 곳이라 할 수 있다.

청송郡내 전통시장 모두 6곳

인구소멸 위기 딛고 활로 모색

2020년 도입된 청송사랑화폐

소비 진작·매출 증대 효과 커

지역화폐 할인율 6·7월에 올려

산불 극복 마중물 역할 '톡톡'

구매 관광객 5일장 색다른 체험

고향사랑기부 답례품으로 가능

조선 보부상들의 삶을 그린 대하소설 '객주'는 진보전통시장에서 태동했다. 진보 장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김주영 작가는 이렇게 밝히고 있다.


"어릴 때부터 나는 땀 냄새가 푹푹 배어나는 그들의 치열한 삶의 모습을 보아왔다. …… 명색 작가가 되면서 나는 그 강렬했던 인생들을 어떤 방식으로든지 배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고백적인 강박감에 부대껴왔다."


진보의 장꾼들에 대한 어릴 적 기억과 전국을 돌아다니며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그는 100년 전 보부상들의 이야기를 썼다. 1979년부터 5년간 신문에 연재하고 9권의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13년, 울진과 봉화 사이의 십이령길을 넘나들던 보부상의 이야기로 108회를 연재하고 제10권을 발간해 소설 '객주'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지배층으로부터 멸시를 받았을지언정 보부상들이 수행한 사회경제적 역할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각 지역이 나름대로 특색 있는 문화를 가꾸고 이어온 것도 그들의 덕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없었다면 경상도 지역 제사상에 문어나 돔배기가 올라갈 수 없었을 것이며, 그런 전통이 이 지역에 뿌리내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들이 다닌 길과 장터가 혈관이고 장기였으며, 그들은 산소와 영양분을 나르고 감염을 막아주는 붉은피톨, 흰피톨이었다.


그러나 소설 객주의 시대는 지금으로부터 약 150년 전이고, 김주영 작가 기억 속의 진보장터 모습은 70여 년 전이다.


청송 진보전통시장은 청송군에 있는 6개 전통시장 중 규모가 가장 크다. 평소 60여개 점포가 문을 여는 상설시장이면서, 3일과 8일에는 장날이라 노점이 활기를 더한다.

청송 진보전통시장은 청송군에 있는 6개 전통시장 중 규모가 가장 크다. 평소 60여개 점포가 문을 여는 상설시장이면서, 3일과 8일에는 장날이라 노점이 활기를 더한다.

객주문학관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진보전통시장이 있다. 청송군에 있는 6개 전통시장 중 규모가 가장 크고 역사도 오래됐다. 평소 60여 점포가 문을 여는 상설시장이면서, 3일과 8일 장날에는 노점이 함께 열려 더욱 활기를 띤다.


주차장·아케이드·화장실 등 고객 편의를 위한 시설이 갖춰져 있으며, 문화관광형 시장육성사업·시장경영패키지 지원사업·전통시장 행복경영매니저 운영 사업 등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한 여러 사업이 시행됐거나 현재 시행 중이다.


한 해 연인원 5만 명의 손님이 찾는 시장이지만, 과거 영양·안동·영덕을 연결하는 교통요지의 장터로 번성했던 시절에 비할 수는 없다.


전통시장을 포함한 지역경제 전반의 위기 탓이다. 정부가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여러 시책을 펴고 있으나, 사람도 돈도 계속 수도권으로 몰리고 저출산·고령화는 심각해지고 있다. 최근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지급하면서 농어촌 인구소멸지역에 추가 지원을 실시한 것도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청송군은 전국 군 단위 중에서도 재정자립도가 매우 낮은 편이다. 대규모 사업체가 없어 세수기반이 취약하고 고령화로 인한 사회복지비 비중은 크기 때문이다.


군은 국·도비 확보와 공모사업에 주력하면서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청송사랑화폐다.


진보시장에서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한 상인은 할인율을 6월에 15%, 7월에 20%로 높이면서 청송사랑화폐 사용량과 매출이 모두 늘었다고 했다.


청송 군민이 청송사랑화폐로 시장에서 물건을 구입하고 있다. 2020년 처음 발행된 청송지역상품권 '청송사랑화폐'는 지역 소상공인들의 숨통을 틔워주고 있다.

청송 군민이 청송사랑화폐로 시장에서 물건을 구입하고 있다. 2020년 처음 발행된 청송지역상품권 '청송사랑화폐'는 지역 소상공인들의 숨통을 틔워주고 있다.

청송사랑화폐는 지역자금의 역외 유출을 방지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2019년 조례 제정을 거쳐 2020년 처음 발행됐다. 농협, 신협, 새마을금고 등 지역 금융기관에서 5~10%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해 연말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처음엔 80억 규모로 계획을 했으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2020년 260억원, 2021년 455억원으로 발행액이 늘어났다. 거의 모든 영업장이 유례 없는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청송사랑화폐가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경북도가 빅데이터 분석 전문업체에 의뢰한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청송 지역은 청송사랑화폐 발행으로 매출 증가와 소비 진작 효과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2월부터 2021년 12월까지 청송사랑화폐의 누적 결제금액은 690억원, 총 결제 건수는 약 5만9천 건이었으며, 최대 결제 업종은 슈퍼마켓(37억원)으로 나타났다.


청송사랑화폐 활성화(2021년 2월) 전후 가맹점의 총 매출을 비교해 보면 약 45.3% 증가했다. 주로 일상생활에 밀접한 업종에서 효과가 컸으며, 소비 진작 효과도 평균 167.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역외 유입 분석 결과 외지인 결제 비율은 일반 한식 38.2%, 주유소 34.2%, 슈퍼마켓 5% 순으로 조사됐다.


2021년 9월 청송군은 '청송사랑화폐 : 코로나시대, 지역에 활기를 불어 넣다'라는 주제로 국제슬로시티연맹이 주관하는 '2021 국제슬로시티 어워드' 도시정책 분야에 응모해 우수 프로젝트 상을 받았다.


총 6개 분야 별로 1개 도시만 선정되는 이 상을 아시아권에서는 유일하게 청송군이 수상한 것이다. 청송사랑화폐가 국제적인 모범사례로 평가받은 것이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청송사랑화폐는 주민들의 일상생활에 뿌리내려 2022년부터 올해까지 매년 700억원 규모로 발행되고 있다. 청송군은 주민들의 불편사항을 경청해 개선책을 마련하고, 지속적인 부정유통 단속을 실시하고 있다.


매년 높은 구매율과 환전률을 기록하고 있는데, 지난해에는 구매율이 좀 하락했다. 연매출 30억 이상의 업체는 가맹점에서 제외하도록 한 행안부 지침에 따라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청송사랑화폐를 사용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었다. 마땅한 대체 점포가 없는 지역에서는 행안부에 이 지침을 변경해 달라는 건의를 하고 있다.


아케이드 등 현대시설을 갖춘 청송전통시장. 4일과 9일 장날이면 손님들로 북적인다.

아케이드 등 현대시설을 갖춘 청송전통시장. 4일과 9일 장날이면 손님들로 북적인다.

청송전통시장이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청송 지역은 청송사랑화폐 발행으로 매출 증가와 소비 진작 효과가 큰 것으로 분석됐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청송전통시장이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청송 지역은 청송사랑화폐 발행으로 매출 증가와 소비 진작 효과가 큰 것으로 분석됐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올해 청송사랑화폐는 지난 봄 대형 산불로 크게 타격을 입은 지역경제를 되살리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발행액 700억 원 중 290억 원이 6월까지 판매됐으며, 산불피해 극복을 위해 할인율을 15%로 올린 6월에는 80억 원, 할인율을 20%로 올린 7월부터 지금까지는 130억 원이 판매됐다. 농민수당·택배비 지원 70억을 제외하면 올해 청송사랑화폐 잔액은 약 130억 원 정도다. 이 특별할인에는 국비 60억 원, 도비 9억 원이 산불피해지역 추가지원으로 배정돼 군비 52억여 원을 절감할 수 있게 됐다.


지역화폐 발행이 각 지자체로 확산될 당시, 일부에서는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며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지금도 그러한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각 지자체와 기관에서 분석한 내용을 보면 소상공인 매출 증대, 자금 역외 유출 방지 등을 통해 지역경제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결과가 대부분이다.


지역화폐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현재 우리사회가 맞닥뜨린 극단적인 지역불균형으로 수도권을 제외한 대부분 지방이 소멸위험에 놓인 상황임을 간과한 견해인 듯하다. 지역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여러 정책들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지역화폐발행과 같은 지자체의 자구노력은 그 의미가 작지 않다.


전국 81개 지역의 지역화폐를 운영하고 있는 BC카드가 지난 2년간 전국에서 발생한 지역화폐 매출 데이터 분석한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체 카드 매출이 4% 감소하고, 고객 수가 1% 줄어든 것과는 반대로 지역화폐 사용 가맹점의 매출과 고객 수는 전년 대비 각각 9%, 20% 증가했다.


BC카드는 특히 2024년 6월 기준 지역화폐 가능 가맹점의 생존율은 82%인 반면, 지역화폐 미사용 가맹점은 66%에 그쳐, 지역화폐가 단순한 소비 촉진 수단을 넘어 가맹점의 생존 가능성까지 높이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1일과 6일 장이 서는 청송 현서면 화목시장. 청송군은 2022년부터 올해까지 매년 700억원 규모의 청송사랑화폐 발행으로 전통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1일과 6일 장이 서는 청송 현서면 화목시장. 청송군은 2022년부터 올해까지 매년 700억원 규모의 청송사랑화폐 발행으로 전통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3년 전 한국관광공사가 흥미로운 빅데이터 분석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감소 인구 1인의 소비지출을 관광객 유치로 대체하려면, 연간 숙박 관광객 18명과 당일 여행객 55명의 소비가 합산돼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인구감소지역의 지역경제활성화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청송사랑화폐가 관광객들이 기분 좋은 소비를 하고 좀 더 기억에 남을 여행을 하도록 돕는 촉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관광명소를 둘러본 뒤 청송사랑화폐를 구매해 5일장을 찾아가 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진보시장 외에 청송시장(4일·9일), 현동 도평시장(5일·10일), 부남시장(3일·8일), 안덕시장(4일·9일) 현서 화목시장(1일·6일)이 있다.


또 고향사랑기부 답례품으로 청송사랑화폐를 받는 것도 특별한 여행의 시작이 될 것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청송을 꼭 방문하겠다고 자신과 약속을 한 셈이니까 말이다.


글=김광재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공동기획 - 청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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