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전 '대구현대미술제' 가치·정신 계승
거대한 미술작품·탁 트인 풍경 멋진 조화
올해는 13일~10월12일 디아크 일대서 개최
'난장난장난장' 주제 17개팀 작가 18명 참여
달천예술창작공간 입주작가 교류전도 열려
어느덧 14년째다. 세어보니 지금껏 한해도 빠짐없이 열린 야외 미술제가 있다. 이 미술제는 그동안 폭우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태풍이 몰아치는 날씨에도, 심지어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꿋꿋이 펼쳐졌다. 야외에서 열리는 행사, 그것도 미술제를 이렇게 해마다 개최한다는 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규모가 작은 것도 아니다. 일단 매년 수십 명의 작가들이 참여한다. 그것도 드넓은 광장 곳곳에 대형 작품을 선보이는 방식이다. 기간도 무려 한 달간이다. 놀라운 점은 또 있다. 이렇게 야외를 메운 작품들이 모두 현대미술 작품이라는 점이다. 우리에게 새로움과 충격을 선사하는 그 미술 말이다. 여기에 한 가지 놀라운 점이 더 있다. 그건 이런 현대미술의 장이 다름 아닌 대구, 그것도 달성군 한가운데 펼쳐지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1970년대 이곳에서 열려 화제를 모은, 우리나라 현대미술에 한 획을 그었던 그 미술제를 연상시키듯이 말이다.

달성 대구현대미술제는 매년 가을 강정보 일대를 거대한 현대미술 전시장으로 만든다. 특히 푸른 잔디밭 위에 전시된 대형 작품들은 마치 거대한 물체가 불시착한 듯 놀라운 광경을 선사한다. 사진은 지난해 개최된 미술제 전시 장면. <달성문화재단 제공>
◆거대한 작품들과 자연 경관이 조화를 이루는 곳
이 미술제가 바로 매년 가을 강정보 일대를 거대한 현대미술 전시장으로 만드는 '달성 대구현대미술제'다. 이맘때쯤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는 익히 알려져 있는 미술제이기도 하다. 특히 해마다 푸른 잔디밭 위에 전시된 대형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이런 작품들은 마치 거대한 물체가 불시착한 듯 놀라운 광경을 선사한다. 이를 통해 평범한 일상의 풍경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꾼다.
그 뒤로 아름답게 교차하는 낙동강과 금호강의 모습도 장관이다. 그 모습이 여느 미술관이나 전시장보다도 웅장한 광경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두 강의 물줄기가 만나는 이곳 강정보의 지형적 특색이다. 이처럼 거대한 작품과 특유의 자연 경관이 빚어낸 조화는 이 미술제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풍경이다. 그 앞에선 누구나 자연스레 휴대전화를 들고 사진을 찍기 마련이다. 행여 미술에 관심이 없을지라도 말이다.
그래서일까. 이 미술제에서만큼은 '현대미술이 어렵다'는 말이 통용되지 않는다. 눈앞에 서 있는 작품들과 탁 트인 풍경이 조화를 이루는 흥미로운 장면은 현대미술이 지닌 중요한 역할을 상기시킨다. 그것은 아무리 낯설고 놀라운 모습일지라도 결국 우리의 현실과 조화를 이룰 수밖에 없는 현대미술의 모습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현대미술과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가장 생생한 접점일지도 모른다. 2012년부터 시작된 이 미술제가 그간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야외 미술제를 고집해 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미술제에선 '현대미술이 어렵다'는 말이 통용되지 않는다. 눈앞에 서 있는 작품들과 탁 트인 풍경이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달성문화재단 제공>
◆미술제 자체가 하나의 현대미술 전시
9월13일부터 10월12일까지 열리는 올해 미술제에서도 이런 지점들을 고스란히 만날 수 있다. 올해 미술제 역시 독특한 경관을 자랑하는 강정보 디아크 광장 일대에서 열린다. 새롭고 낯선 작품들과 주변 경관이 이루는 특유의 조화를 통해 현대미술의 가장 생생한 접점을 선사할 계획이다.
특히 올해는 예년보다 한층 더 거대하고 집약적인 형태의 미술제를 만날 수 있다. 무엇보다 전반적으로 규모가 커진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실제로 올해 선보이는 작품들 가운데 상당수가 4~5m 이상의 높이를 지니고 있다. 여기에 이런 작품 대부분이 드넓은 언덕 위에 자리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실제로 체감하는 크기는 훨씬 더 크게 느껴질 전망이다.
작품 배치 또한 이전보다 훨씬 밀집된 형태로 구성했다. 관람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독특한 외관의 디아크 건물을 중심으로 작품 전체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도록 배치했다. 올해는 이와 같은 변화를 통해 이 미술제가 지닌 또 다른 면모를 부각시킬 예정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 미술제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전시라는 사실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미술제의 기획을 맡은 강효연 예술감독은 "이곳을 찾는 분들에게 이 미술제의 의미를 보다 적극적으로 전달할 방법을 고민했다. 그런 면에서 지난해보다는 훨씬 더 집중적인 형태로, 야외에서도 하나의 현대미술 전시를 감상할 수 있도록 미술제를 구성했다"고 말했다.

전시와 더불어 아름답게 교차하는 낙동강과 금호강의 모습도 장관이다. 그 모습이 여느 미술관이나 전시장보다도 웅장한 광경을 보여준다. <달성문화재단 제공>
◆'난장난장난장' 주제로 펼쳐질 미술제
올해 주제 역시 이런 특징을 반영했다. 바로 '난장난장난장'이다. 어지러운 상황을 뜻하는 '난장'이라는 말 속에서 유쾌한 의미의 '장난'이라는 단어가 발견되는 방식이다. 혼란한 사회적 상황과 예술의 본질적인 행위를 연결시킨 이런 식의 언어유희는 이 미술제가 다름 아닌, 하나의 현대미술 전시라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에 대해 강효연 감독은 "1차 세계대전 이후 혼란한 사회 속에서 발생한 예술이 바로 '다다이즘'이다. 당시 난장과 장난이 뒤섞인 다다이스트들의 행위는 그런 혼란에 예술로 맞서려는 의지이기도 했다. 오늘날 현대미술 역시 그런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했다. 과거만큼이나 여전히 혼란한 사회 속에서 작가들은 과연 어떤 난장과 장난으로 이를 극복하고 있는지를 보여줄 계획이다"라고 설명했다.
작품들도 주제에 걸맞게 구성했다. 이로 인해 예년보다 시의성 짙으면서도 보다 유쾌한 형태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우선 저임금 여성 노동자의 현실을 익살스러운 조형물로 표현한 신민, 대부업체의 불법 전단지를 모아 보석 형태로 만든 홍준호, 각종 상품들의 포장지를 연결해 대형 조형물을 선보이는 원선금의 작품 등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펼쳐지는 '난장'의 모습을 가장 표면적으로 보여준다.
이와 더불어 타인을 밟고 올라서려는 현대인의 욕망을 조각으로 형상화 한 임승천, 지나치게 타인을 의식하는 습성을 눈동자로 표현한 류재하, 여러 대의 대형 스피커를 통해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낸 김영섭 등 혼란한 현대인의 내면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작품들도 있다. 여기에 건설 현장의 바리케이드를 활용한 정승, 낡고 빛바랜 산업유물을 활용한 박기진 등의 독특한 작품을 비롯해 구지은, 김성수, 서동신, Studio 1750, 심승욱, 왕지원, 정득용, 정재범, 홍범 등 총 17팀(18인)의 작가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현대미술의 면면을 만날 수 있다. 말 그대로 오늘날 현실을 난장과 장난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이다.
◆젊은 작가들의 특별한 교류전과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까지
여기에 올해는 특별한 전시도 준비된다. 디아크 문화관 내에서 열리는 교류전 '물결의 연대기'다. 이 전시는 특히 달성군에 위치한 달천예술창작공간 입주작가들이 참여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연대기라는 이름에 걸맞게 올해 입주한 권민주, 미소, 김유주, 이정우, 최승화 등 제5기 작가들의 작품뿐만 아니라, 지난 2021년 개관 이래 매년 이곳을 거쳐 간 역대 입주작가 27인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이 교류전은 미술제가 단순한 현대미술과의 접점을 넘어, 이곳 달성군을 기반으로 활동해 온 젊은 작가들을 소개하는 장으로도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다.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매주 토요일 및 추석 연휴 동안 열리는 야외 버스킹 무대를 비롯해, 주말에는 전시를 감상하며 책을 즐길 수 있는 야외 도서관과 북콘서트도 펼쳐진다. 또한 미술제 참여 작가들이 기획한 시민 참여 프로그램도 진행되며, 여기에 달성군 대구 편입 30주년을 기념한 공모전의 작품을 활용한 독특한 조형물까지 함께 만날 수 있다. 전시와 더불어 다양한 방식으로 미술제를 즐길 수 있는 요소까지 더한 셈이다.

실내에서 만날 수 있는 전시도 있다. 올해는 달천예술창작공간 입주작가들이 참여하는 젊은 작가들의 특별한 교류전을 만날 수 있다. 사진은 지난해 미술제 실내 전시 장면. <달성문화재단 제공>
◆14년보다 더 오랜 시간을 연결하는 미술제
이 미술제가 특별한 이유가 또 있다. 그건 이 미술제가 이곳의 과거와 현재까지도 연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제의 전신이 1970년대 이곳에서 열린 '대구현대미술제'라는 사실만 해도 그렇다. 당대 실험적인 작가들이 대거 참여했던 이 미술제는 1970년대 우리나라 미술계의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도 평가받는다. 오늘날 미술제는 50년 전 당시 이곳에서 펼쳐진 현대미술의 가치와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미술제를 주관하는 달성문화재단 관계자는 "이 미술제는 한편으로 이곳이 지닌 역사적 가치를 알리는 자리이기도 하다. 매년 열리는 미술제를 통해 이곳 강정보가 우리나라 현대미술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장소였는지를 많은 분들에게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의 정신은 계승하되, 그것을 오늘의 현실과 조화시키는 것 또한 이 미술제의 특징이다. 현대미술은 결국 우리의 현실과 연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혼란한 사회의 모습을 '난장'과 '장난'으로 그린 올해뿐만 아니라, 매년 그런 맥락을 이야기해 온 이 미술제의 행보가 그것을 증명한다. 그것은 또한 과거의 미술제와 지금의 미술제가 교차되는 놀라운 순간이기도 하다. '달성 대구현대미술제'는 그런 면에서 어느덧 14년째를 맞은 미술제인 동시에,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을 연결하는 미술제이기도 하다.
글=이선욱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달성문화재단 제공
<공동기획-달성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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