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건 경제전문기자
미국 정부가 기존 수수료가 1천700~4천500달러 수준이던 전문직 취업비자(H-1B) 신규 발급에 10만달러(한화 약 1억4천만원) 수수료를 부과하기로 하면서 통상 갈등이 새 국면을 맞고 있다. 전 세계의 신규 신청자가 대상이며 기존 소지자와 갱신자는 제외된다. 미국 정부가 내세운 공식 명분은 임금 하락 방지다. H-1B 비자는 해외 전문 인력을 미국 기업에 투입하는 통로로 활용되면서 미국 현지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잠식하고 임금 수준을 끌어내린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특히 인도와 중국 출신 인력이 IT 업계에 대거 진출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런 불만을 정책적 근거로 삼아 "외국 인력을 미국에서 싸게 쓰려면 그 만큼 비용을 지불하라"는 논리를 앞세워 고액 수수료 부과를 정당화 했다. 이번 조치는 사실상 다른 나라와의 협상 테이블 위에서 미국 내 고용 확대라는 조건을 다시 한 번 강제하겠다는 의도에 가깝다.
하지만 이 조치가 한국 기업들에 미칠 충격은 적지 않다. 신규 H-1B를 통해 미국 현장에 전문인력을 배치하는 비용이 단숨에 10만달러씩 불어나면서 한국 대기업의 협력(하청)업체로 대기업의 프로젝트를 돕는 중견·중소기업의 미국 진출은 현실적으로 막힐 수밖에 없다. 대구경북에서도 자동차부품을 생산하는 에스엘과 삼보모터스 등이 미국 현지에 공장을 두고 있다.
신규 H-1B로 미국 진출 국내 기업들은 앞으로 인건비 문제 때문에 프로젝트 일정과 생산성 자체가 위협받게 된 셈이다. 이 여파는 곧바로 한·미 관세 협상에도 반영될 전망이다. 한국 정부로서는 관세 인하를 이끌어내려면 투자만이 아니라 인력 이동의 자유까지 패키지로 확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고도 현장에서 필요한 인력을 제때 확보하지 못해 실질적인 성과가 크게 훼손될 수 있다. 한국은 이미 대규모 투자와 관세 협상이라는 난제를 풀어내기에도 벅찬 상황에서 이번 전문비자 수수료 문제까지 맞물리며 협상 부담이 더욱 커졌다. 미국이 이번 조치를 특정 국가가 아닌 전 세계 신규 신청자에게 일괄 적용한 만큼, 보복성으로 해석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지난번 이민 단속에 적발된 후 귀국 조치된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 배터리 공장 근로자들의 경우에는 어떨까. 귀국한 한국인 근로자들의 복귀 여부는 법적으로 두 갈래로 나뉜다. 강제 추방(removal order)을 받은 경우와 자발적 퇴거(voluntary departure)에 동의한 경우다. 전자는 미국 이민법(INA)에 따라 재입국이 일정 기간 또는 영구적으로 금지된다. 이 경우 재입국 허가 신청(Form I-212)을 제출해야 하고 승인을 받아야만 새로운 비자 청원이 가능하다. 반면, 자발적 퇴거를 선택했다면 추방 명령에 따른 중대한 불이익은 피할 수 있지만 새 H-1B 비자 청원이나 고용주 스폰서십을 통해 다시 비자를 받아야 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문제는 이번 단속에서 일부는 비자 만료나 조건 위반으로 분류됐고, 또 일부는 유효한 비자를 갖고 있었음에도 자발적 퇴거로 처리되는 등 상황이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결국 현실적으로는 근로자들이 미국 현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법적 절차보다 미국 정부의 정치적 의지가 더 큰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원칙상 누구든 재입국 허가나 신규 비자 청원을 신청할 수 있지만 이번처럼 한국인 근로자가 대규모로 단속된 사안은 개별 심사로 처리되기보다는 한·미 간 협상 테이블에서 패키지로 다뤄질 공산이 크다. 미국은 관세, 투자, 비자 문제를 한데 묶어 미국 내 고용 확대를 강제하려 하고, 한국은 외환 유출과 인건비 부담 때문에 비자 문제를 협상 선결 조건으로 내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국 조지아 공장 근로자들의 복귀 문제는 행정적인 다툼의 여지보다는 한·미 간 협상이 어떤 타협점을 찾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 현실적인 전망이다.

고건(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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