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포항은 삶의 온기 생동
순백의 후포해수욕장은
처음 눈에 담는 순간부터
마음 호흡 넓혀주는 안식처
나곡·후정·봉평해수욕장 등
저마다 사연 품은 다른 세계
"여행은 마음을 넓히고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의 이 말은 단순한 격언이 아니다. 인간이 공간을 이동하며 환경과 자신을 성찰하는 행위를 통찰한 말이다. 그는 '여행이란 결국 자신을 배우는 과정'이라 했다.
여행과 휴식은 삶의 무대를 잠시 비우고, 다시 돌아갈 힘을 축적하는 내적 재정비의 의식이다. 특히 자연 속에서 쉼은 문명의 층위를 잠시 벗어나, 인간 고유의 호흡을 회복하는 일종의 복귀다.
훼손되지 않은 강과 바다, 산과 숲은 복잡한 세상의 소음을 걷어내며, 우리가 잃어버린 내면의 평온을 되찾게 한다.
여행이 자연에 머무를 때만 그 깊이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자연과 인간의 손길이 조화를 이루는 공간에서는 또 다른 형태의 아름다움, 즉 자연의 곡선에 인간의 감각이 더해진 새로운 미학이 싹튼다.
창덕궁 후원의 자연스러운 지형과 연못, 일본 정원의 절제된 곡선, 르네상스 정원의 정밀한 구성처럼 인간은 공간에 의도와 감각을 더해 자연과의 대화를 완성한다.
이런 공간에서는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 몸과 마음이 자연의 섭리에 조율되며 세월이 자아내는 고유한 울림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울진은 청정한 자연과 인간의 의도가 담긴 구조물이 온화하게 공명하며 서로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동해의 귀한 보물이다.
후포해수욕장과 등기산스카이워크는 인간의 감각이 스며든 또 하나의 풍경으로, 여행자의 시선을 붙잡으며 색다른 감동을 준다.
울진 후포항 요트계류장. 후포항은 봄의 축제, 여름의 생동, 가을의 고요, 겨울의 따뜻함이 서로 다른 색을 지펴 여행자의 마음을 조용히 흔드는 곳이다.
◆바다의 노래를 걷다…후포해수욕장과 후포항
울진의 남쪽 끝자락, 후포 바닷가에 발을 디디면 가장 먼저 솔바람이 말을 건넨다. 순백의 후포해수욕장은 처음 눈에 담는 순간부터 마음의 호흡을 넓혀주는 안식의 자리다. 맑은 물빛, 햇살에 금빛으로 부서지는 모래, 발끝을 스치는 잔잔한 파도는 존재의 중심을 고요히 일깨운다.
백사장의 정적을 지나면 어선과 파도, 삶의 온기가 생동하는 후포항이 열린다. 새벽 어선이 들어올 때, 짙은 바다 냄새와 하루의 첫 빛이 항구 위로 번진다. 후포어시장의 붉은 대게와 은빛 생선, 상인들의 활기는 이 항구의 시간을 움직이는 생생한 리듬이다. 회 한 점을 입에 넣는 순간, 후포의 바다 맛과 함께 이 땅의 강인한 생명력이 전해진다.
봄이 오면 항구는 대게의 붉은 색으로 환히 물든다. '울진대게축제'는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바다에서 삶을 일군 사람들의 시간과 기쁨이 모여 빛나는 잔치다. 겨울 끝자락의 풍성함은 음식이 아니라 바다와 사람이 맺은 신뢰의 결실이다.
여름이면 후포해수욕장은 평화로운 관조의 대상이 아니라 역동적인 청춘의 무대로 변한다. '비치발리볼 대회'가 시작되면 공이 튀는 경쾌한 소리와 승리를 향한 젊음의 함성이 쉼 없이 밀려오는 파도 소리와 격렬하게 어우러진다.
이 순간, 바다는 고요한 배경이 아니라 청춘의 열기가 약동하는 운동장이 된다. 작열하는 태양, 부드러운 모래, 시원한 바닷바람이 만들어내는 순간의 에너지는 그 어떤 예술보다 강렬하며, 이는 후포의 여름만이 선사하는 가장 뜨겁고 생동감 넘치는 시(詩)와 같다.
후포의 사계는 정지된 그림이 아니라 네 번의 깊은 호흡이다. 봄의 축제, 여름의 생동, 가을의 고요, 겨울의 따뜻함이 서로 다른 색을 지펴 여행자의 마음을 조용히 흔든다.
울진 후포 '등기산스카이워크' 끝자락에 있는 선묘낭자상은 의상대사와 당나라 처녀 선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신라 화엄종의 초석을 닦는 데 이바지한 선묘의 위대한 헌신을 기리는 이 조각은 보는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하늘과 바다가 포개지는 길, 등기산스카이워크
후포항 북쪽 언덕에 오르면, 바다 위로 길게 뻗은 투명한 길이 마치 하늘로 향하는 듯하다. 등기산스카이워크는 단순한 관광 시설이 아니라, 동해의 수평선과 인간의 시선이 만나는 장엄한 경계의 무대다.
밤바다를 밝히는 등대가 자리한 이곳은 오랜 세월 항해자들의 나침반이 돼준 역사적 장소다. 바람에 흔들리는 해송 사이를 걷다 보면 파도 소리가 시간의 저편에서 길어 올린 기억처럼 들려온다.
정상에 서면 '빛의 정원'이라 불리는 등기산공원이 시야에 펼쳐진다. 세계 각국의 등대를 축소한 모형들이 한자리에 모여, 인간이 빛으로 길을 찾아온 역사를 작은 세계 속에 담아낸다. 그 옆의 신석기 유적은 아주 먼 옛날 바다와 함께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조용히 전한다.
울진 후포항 북쪽 언덕에는 바다 위로 길게 뻗은 투명한 길이 있다. 하늘로 향하는 듯한 이 길은 '등기산스카이워크'다. 등기산스카이워크는 단순한 관광 시설이 아니라, 동해의 수평선과 인간의 시선이 만나는 장엄한 경계의 무대다.
스카이워크는 이 풍경의 정점이다. 총길이 135m, 그중 57m가 투명한 강화유리로 돼 있어 발아래로 펼쳐진 바다가 시야를 압도한다. 이 길을 걷는 순간, 여행자는 단순한 유리 위의 행인이 아니라 현실과 감각의 경계를 유영하는 존재가 된다. 바람과 파도의 떨림, 심장의 박동이 거대한 리듬으로 하나가 되는 경험이다.
이 하늘 산책길 끝자락에는 선묘낭자상이 있다. 이 상(像)은 의상대사가 귀국할 때 험한 풍랑을 만나자, 스스로 바다에 몸을 던져 용이 돼 대사의 배를 신라까지 무사히 이끌었던 당나라 처녀 선묘의 헌신적인 이야기를 전한다.
선묘의 희생은 단순한 연모를 넘어, 의상대사의 불법(佛法)을 펼치고자 하는 뜻을 받들어 자신을 바다에 바친 깊은 불심과 바다를 향한 믿음의 증표다. 신라 화엄종의 초석을 닦는 데 이바지한 선묘의 위대한 헌신을 기리는 이 조각은 보는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울진 후포 '등기산 스카이워크'는 총길이 135m로 그중 57m가 투명한 강화유리로 돼 있어 발아래로 펼쳐진 바다가 시야를 압도한다. 바람과 파도의 떨림, 심장의 박동이 거대한 리듬으로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게되는 길이다.
밤이 오면 스카이워크는 신비로운 빛의 길로 변한다. 투명한 바닥 아래 조명이 바다를 비추고, 등기산공원은 별빛과 항구의 불빛이 겹치는 낭만의 회랑이 된다. 이 시간만큼은 누구나 자연에 속한 존재이자 동시에 빛을 빚어낸 인간 세계의 일부임을 깨닫는다.
울진 남쪽 끝자락 후포 바닷가에 닿으면 솔바람이 먼저 다가온다. 순백의 후포해수욕장은 마음의 호흡을 넓혀주는 안식의 자리다. 사진은 울진 후포해수욕장 조형물 모습.
◆저마다 다른 빛을 가진 풍경, 울진의 해수욕장
울진의 해변은 하나의 풍경이 아니라, 저마다의 사연을 품은 또 다른 세계다.
조용한 어촌의 숨결이 스민 나곡해수욕장은 사유를 위한 정적을 선물한다. 송림과 바다가 맞닿은 후정해수욕장은 캠핑과 차박의 낭만을 허락하며, 봉평해수욕장은 가족을 위한 편안한 안식처가 된다. 숲 가까이 자리한 구산해수욕장은 얕은 수심과 반려견과의 행복한 교감을 나누기에 좋다. 길게 이어진 백사장과 장엄한 일출로 하루를 여는 망양정해수욕장까지, 각기 다른 표정을 지닌 해변들은 자연이 존재만으로 인간의 마음을 치유함을 일러준다.
울진 후포 등기산 공원. 바람에 흔들리는 해송 사이를 걷다 보면 파도 소리가 시간의 저편에서 길어 올린 기억처럼 들려온다.
◆숲과 바다가 속삭이는 시간
디지털 문명이 아무리 빠른 속도로 우리를 휩쓸어도, 인간 영혼의 진정한 회복은 언제나 자연의 리듬에서 비롯된다. 울진의 광활한 숲과 바다, 깊은 계곡과 따사로운 햇살은 계절마다 다른 화음으로 우리를 근원으로 부른다. 산길의 바람은 오래된 이야기처럼 귓가를 스치고, 숲은 현대인이 잊은 시간의 흐름을 되새기게 한다. 고요히 바다 앞에 서면 수평선을 넘어오는 태초의 빛이 삶의 무게를 부드럽게 풀어낸다.
동서양의 고전이 노래한 '자연과 인간의 조화'는 이곳 울진에서 추상이 아닌 현실의 감각으로 체감된다.
자연은 피난처가 아니라, 내면의 진실을 발견하는 사색의 성전이다. 현기증 나는 속도의 시대일수록 우리는 침묵의 힘과 느림의 미학을 배워야 한다. 속도에는 여유의 균형이, 느림에는 순간을 붙드는 집중이 필요하다. 자연의 리듬 속에 존재를 겸허히 놓을 때, 우리는 잃어버린 자기 호흡을 되찾게 된다.
울진은 순수한 자연과 인간의 손길, 느림과 빠름의 두 세계가 조화롭게 맞물린 동해안의 귀한 쉼터이자 명상의 공간이다.
손병복 울진군수는 "관광은 이제 머물며 지역의 매력을 체험하는 체류형 관광이 중심"이라며 "걷기 길, 레저, 휴양시설이 자연스럽게 연계된 울진에서 진정한 쉼을 느낄 수 있게 하겠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울진 방문이 단순한 관람이 아니라 인생의 깊이를 더하는 체험의 여행임을 보여준다.
울진 후포 등기산 공원. 세계 각국의 등대를 축소한 모형들이 한자리에 모여, 인간이 빛으로 길을 찾아온 역사를 작은 세계 속에 담아낸다.
울진의 자연 앞에서 우리는 존재의 순수한 기쁨을 되찾고,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다시 연다.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싶다면 울진에서 며칠 머물며 '자연의 속도로 걸어보라' 그 길 위에서 바람은 사색을 돕고, 숲은 잃어버린 자기 호흡을 되살린다. 마음은 가을 호수처럼 맑아지며, 생명의 떨림이 다시 온몸을 채운다. 저녁노을이 잔잔히 바다 위에 스며드는 순간, 인간과 자연의 경계는 서서히 옅어지고, 파도와 나뭇잎의 속삭임이 삶의 근원적 고요를 일깨운다.
자연에 겸허히 발맞추는 순간, 우리는 존재의 가장 순수한 호흡을 되찾게 된다.
글=윤일현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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