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긴급 대국민 특별 담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12·3 비상계엄' 사태 후 공직사회가 마주한 트라우마는 상당했다. 계엄을 계기로 이뤄진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심판과 6·3 조기 대선의 파장도 컸다. 대면 접촉을 꺼리는 풍토와 복지부동형 근무태도가 자리잡은게 대표적이다. 불확실성이 그리운 짙은 그늘이다. 행정서비스 수요자인 시민들에겐 불행한 일이다. 행정당국의 경우, 사업 정책 추진력 약화와 행정 안전성 저하 등이 적잖이 목격된다. 교육당국은 교육 정상화를 기조로 학사 운영에 나섰지만, 사회개혁과 교육 정책적 변화의 불확실성에 대한 '고요 속 외침'이 계속되고 있다. 이들 모두 '잃어버린 1년'의 시간을 뒤로 하고 안정화에 갖은 애를 쓰지만 '계엄' 여파를 쉽게 누그러뜨리기엔 적잖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지난해 12월4일 오후 대구 중구CGV한일극장앞에서 열린 윤석열 퇴진 대구시민시국대회 참가자들이 윤석열 대통령을 규탄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영남일보 DB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2024년 12월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비판하는 시국대회를 열고 있다. 영남일보 DB
박용수 인사혁신처 차장이 지난달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가공무원법 개정안 입법예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개정안에는 공무원 복종 의무 삭제 내용이 담겼다. 연합뉴스
◆공직사회 강타한 계엄 후폭풍
"비상계엄사태 이후 불필요한 오해나 리스크를 줄이고 신중함을 기하려 하는지 직원 간 말수가 줄고, 문서 검토가 늘어났습니다." 대구 달성군청의 한 직원은 계엄 사태 이후 전반적인 공직 사회 분위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12·3 비상계엄'은 공직 사회를 잔뜩 웅크리게 만들었다. 그 시발점은 계엄 당일 발생한 행정당국의 조치 상황이었다. 당시 계엄에 대한 매뉴얼이 전무한 일선 지자체들은 대혼란에 빠졌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문서 대신 구두 지시가 일반화됐고, 청사 폐쇄 등 각종 지시가 번복됐다. 큰 혼돈을 겪은 지자체 직원들이 업무 처리 과정에서 보고·승인 절차를 강화하는 등 조직적 안전장치를 자체적으로 마련한 것이다.
달성군청 한 공무원은 "이전엔 아이디어를 먼저 꺼내보고 논의하는 분위기였다면, 지금은 정리된 문서와 근거를 갖고 접근하는 방식으로 업무 스타일이 바뀌었다. 혼란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행정처리의 기준선을 높이는 과정"이라며 "행정의 일관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동시에, 시민 행정 질서 유지에 최전선에 있는 지자체가 더이상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줘선 안된다는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고 했다.
계엄 후 일선 지자체들이 고삐를 바짝 죄고 있는 건 '사업 추진력'이다. 계엄을 계기로 공직 사회 신뢰가 무너진 만큼, 행정당국 내 '집단적 자성'을 통해 각종 행정력에 더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흘러 나온다.
대구 중구청 한 공무원은 "계엄 이후 즉각적인 혼란이나 큰 변화가 체감되진 않았지만, 그 후폭풍은 힘들었다. 지자체 사업들이 어느정도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에서 있었던 탄핵 심판과 정권 조기 교체 등이 일부 부서 업무 추진에 영향을 미쳤다"며 "이럴 때일수록 공무원들이 힘을 내야 한다. 최근 이재명 정부의 계엄 동조자 색출 등에 동요하지 말고, 오직 주민들만을 생각했으면 한다. 최근 국가 지방공무원법상 '복종 의무' 조항 삭제도 이뤄진 만큼, 행정 공무원의 책무가 그만큼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대구시 한 공무원도 "비상계엄 등과 관련해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기엔 많이 조심스럽다"며 "다만,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면 지방행정이나 정책 추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우려가 된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행정당국 내 '계엄' 흔적을 하루빨리 지우려면 '상명하복 위계질서'로 대변되는 행정조직 전반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게 급선무라고 했다. 경북대 하혜수 교수(행정학과)는 "그간 상급자의 지시를 따르는 게 공무원의 책무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이젠 '지시를 따랐다가 정권이 바뀌면 처벌받을 수도 있다'는 불안이 조직내 깊숙이 자리 잡았다"며 "상급자의 지시를 따르는 행위 자체가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의구심이 생기고, 이런 분위기는 행정조직 전반의 안정성을 뒤흔든다. 문제는 '무엇이 위법·부당한가'는 누가 판단하느냐에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2월4일 오후 12시30분쯤 대구 수성구 한 학교 운동장에서 학생들이 함께 공놀이를 하고 있다. 전날 비상계엄령 선포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지만 대구지역 학교 현장에는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고 학사 운영이 유지됐다. 영남일보 DB
대구 중구 신명고 학생 24명이 2024년 12월11일 발표한 시국선언문. 영남일보DB
윤석열 퇴진 대학생운동본부 경북대학교지부 회원이 2024년 12월4일 대구 북구 경북대학교 인문대학 입구에 윤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대자보를 붙이고 있다. 영남일보DB
◆교육계 '충격' 학생들만 바라보자
'12·3 비상계엄'사태는 교육계에도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계엄 당시 교육당국은 학생들이 더 이상 혼란과 불안에 떨지 않도록 하는 게 급선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국가 존립 위협을 느낀 학생들이 거리로 나와 목소리를 높여서다.
대구에선 지난해 말 계엄 사태를 비판하는 지역 대학생들이 주축이 된 '시국선언(사회적 책임과 변화를 촉구하는 집단적 의사 표현)'에 고교생들도 동참해 주목을 받았다. 대구 첫 시국선언 고교생인 신명고 학생 24명은 지난해 12월11일 SNS를 통해 계엄 사태에 대해 규탄 목소리를 냈다. 당시 시국선언을 한 신명고 한 학생은 "역사책에서만 보던 비상계엄을 실제로 겪으니, 그동안 책으로만 배우며 느꼈던 아픔이 다시 반복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컸다"며 "계엄 사태는 정치적 입장을 떠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인지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뜻을 같이한 학생들과 시국선언문을 작성했다. 이후 학교 안에선 교사들의 정치적 발언이 확연히 조심스러워진 분위기가 있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계엄 사태 후 탄핵 심판 및 정권 교체와 맞물려 교육계에 불어닥친 가장 큰 난제는 '교육 정책'의 연속성이었다. 전 정부의 핵심 교육 정책인 의대 정원 증원 계획, AI 디지털교과서 도입 등에 급제동이 걸려서다. 특히, 고교 현장의 입시 전략이 뒤틀리면서, 학생·교사·학부모 모두 당혹감에 빠졌다.
대구 수성구에 있는 한 고등학교 교장 A씨는 "의대 정원이 2천명 증원됐을 때, 개인적으로 단기간에 밀어붙이면 부작용이 생겨 다시 원위치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입시에 큰 혼란이 온다고 봤다"며 "계엄을 거쳐 탄핵 심판까지 이어지며 예상은 적중했고, 그사이 변화에 맞춰 준비했던 학생들만 불안과 혼란을 겪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AI 자체는 시대적 흐름이라 인정한다. 하지만 AI 디지털교과서를 검증 없이 교육 현장에 밀어붙인 게 큰 문제였다. 정권이 바뀌자마자 '교육자료'로 격하됐는데, 막대한 예산이 들어간 정책이 정권 변화에 따라 흔들렸다"며 "결국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교육 현장의 몫이다. 학생들의 진로가 걸린 문제는 변수 자체를 줄이기 위해 기준을 조속히 그리고 명확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계엄 사태 등 국가 비상 사태에 따른 후폭풍 탓에 교육 정책의 방향성과 교육 현장 내 지향점이 크게 흔들리는 상황이 되어선 안된다고 조언했다. 경북대 박균섭 교수(교육학과)는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교육 정책의 큰 줄기가 급격히 흔들리는 것은 한국 교육의 고질적 문제다. 교육정책은 일관성이 보장될 때 치료 효과가 난다"며 "계엄선포, 정권 교체를 통해 교육정책에도 정치 양극화와 보수·진보 프레임이 그대로 투영되면서 교육의 본질보다 정치 논리가 앞서는 상황이다. 이런 혼란을 최대한 줄이려면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동현(사회)
산소 같은 남자
조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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