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문인협회가 추천하는 이달의 지역작가 도서 4권] 사랑하며 기도하며 외

  • 대구문인협회
  • |
  • 입력 2026-01-09 06:00  |  수정 2026-01-08 18:24  |  발행일 2026-01-08
사랑하고 기도하며/김진수 지음/그루/128쪽/1만원

사랑하고 기도하며/김진수 지음/그루/128쪽/1만원

◆사랑하고 기도하며/김진수 지음/그루/128쪽/1만원


시집 '사랑하며 기도하며'는 말보다 침묵이 먼저 마음에 닿는 순간들을 한 편 한 편의 시로 엮어낸 서정의 기록이다. 김진수 시인은 사랑을 이야기할 때 소유나 성취보다 나눔과 배려를 먼저 떠올리고, 기도라는 말 대신 간절한 청원보다는 감사와 기다림의 언어로 삶을 바라본다. 그의 시에는 크고 선명한 목소리나 감정을 과시하는 표현 대신, 조용히 숨을 고르며 하루를 견뎌온 사람의 사유가 담겨 있다.


이 시집에 등장하는 풍경들은 대체로 낮고 고요하다. 겨울나무의 묵묵한 침묵, 봄비를 기다리는 시간, 들꽃이 머무는 낮은 자리와 소소한 일상의 장면들은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시인은 자연의 숨결과 일상의 작은 풍경을 통해 삶의 본질에 천천히 다가간다. 그 과정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스며 있는 온기, 말없이 건네는 배려, 지나치기 쉬운 순간들의 소중함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시인은 '살아간다는 일'이 거창한 목표를 이루는 일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기다리며 하루를 성실히 건너는 일임을 담담하게 말한다. 그의 문장들은 독자의 마음 가장 깊은 곳을 은은히 밝히며 위로와 성찰을 동시에 건넨다. 그 빛은 삶을 단번에 바꾸는 강렬함은 아니지만, 오늘을 견디게 하는 작은 희망으로 오래 머문다. '사랑하며 기도하며'는 특정한 믿음이나 종교적 해석을 요구하지 않는다. 사랑하려 애썼던 하루, 말없이 지나간 감사의 순간을 기억하는 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처럼 이 시집을 만날 수 있다. 살아간다는 것이 결국 사랑하고, 기다리고, 감사하는 일임을 알려주는 시집이다.


빛을 사유하다/백후자 지음/바른북스/228쪽/1만5천300원

빛을 사유하다/백후자 지음/바른북스/228쪽/1만5천300원

◆빛을 사유하다/백후자 지음/바른북스/228쪽/1만5천300원


카메라를 들면 세상은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풍경의 표정은 달라지고, 그 장면을 바라보는 마음 또한 미묘하게 흔들린다. 이 책은 그렇게 빛과 마음이 만나는 순간들을 사진과 글로 함께 기록한 한 권의 사진 에세이다.


셔터를 누르는 행위는 순간을 붙잡기 위한 것이었지만, 시간이 흐른 뒤 돌아보면 그 순간들이 오히려 사진가의 삶과 기억을 붙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 길 위에서 스쳐지나간 얼굴들까지 이 책에 담긴 장면들은 모두 일상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풍경들이다. 그러나 작가는 그 평범한 순간들 속에서 빛이 만들어내는 미묘한 변화와 감정의 결을 놓치지 않는다. 사진 한 장, 짧은 문장 하나에는 그때의 공기와 온도, 그리고 말로 다 전할 수 없는 마음의 결이 함께 스며 있다. 이 책의 사진과 글은 화려한 기술이나 극적인 장면을 앞세우지 않는다. 대신 천천히 바라보고 오래 머무르는 시선으로 삶의 단면을 기록한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지나쳐 온 장면일지라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오래 마음에 남을 이야기로 다가온다. 독자는 사진 속 풍경을 따라가며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자연스럽게 겹쳐 보게 된다.


빛은 늘 흘러가고 순간은 사라지지만, 그 빛 속에 깃든 이야기는 오래 남는다. 이 책은 사진이 기록을 넘어 기억과 위로가 될 수 있음을 조용히 증명한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세상을 다시 바라보고 싶은 이들에게, 이 사진 에세이는 잔잔하지만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지구를 돌리며 왔다/이현정 지음/여우난골/126쪽/1만2천원

지구를 돌리며 왔다/이현정 지음/여우난골/126쪽/1만2천원

◆지구를 돌리며 왔다/이현정 지음/여우난골/126쪽/1만2천원


'지구를 돌리며 왔다'는 이현정 시인의 첫 시조집이다. 시조라고 하면 흔히 엄격한 형식을 갖춘 낯선 장르라 생각하기 쉽지만, 이 시집은 자유롭고 유연한 서사가 시조의 정형 속에 자연스럽게 담겨 있어, 전통의 틀을 지키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놓치지 않는 독창적인 문법을 선보인다.


시집을 읽다 보면 감정의 온도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순간과 고요히 내려앉는 순간이 교차하는데, 어떤 시에서는 삶을 향한 강렬한 열망과 에너지가, 다른 시에서는 공허와 허무의 세계가 물 흐르듯 전개된다. 시인은 이러한 감정들을 결코 과장하지 않으며 지극히 일상적인 언어와 선명한 이미지로 갈무리하여 독자가 자신의 경험을 시 위에 겹쳐 읽게 만든다. 덕분에 시 속 서사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삶의 풍경이 된다. 화려한 중심, 크고 중요한 것보다 작고 사소하며 소외된 것들에 귀 기울이고 그러한 존재에게서 삶의 진짜 무게를 발견하는 시인의 시선 또한 참으로 특별하다.


이 시집의 가장 독보적인 점은 사유의 확장성에 있다. 시인은 우주의 질서와 그 안에서 명멸하는 생의 비의(秘意)를 집요하게 탐구한다. 찰나의 순간에서 영겁의 세월을 읽어내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존재의 본질을 파고드는 시인의 안목과 통찰은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남긴다. 이현정 시인이 구사하는 서정의 언어는 일상적이면서도 감각적이고, 날카로우면서 긍정적이다. 삶의 고통과 허무조차 지구를 자전시키는 동력으로 포용하는 상상력은 독자로 하여금 일상의 경이로움을 깨닫게 하며 우리 모두가 우주의 흐름에 참여하고 있는 소중한 주체임을 일깨워준다.


빈 의자/정춘자 지음/도서출판 그루/160쪽/1만3천원

빈 의자/정춘자 지음/도서출판 그루/160쪽/1만3천원

◆빈 의자/정춘자 지음/도서출판 그루/160쪽/1만3천원


정춘자 시집 '빈 의자'는 근대와 현대의 삶의 풍경을 아우르며 인간 존재의 쓸쓸함과 따뜻한 연민을 함께 길어 올린 시편들로 구성돼 있다. 시인은 불면의 밤을 견디며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삶의 회한을 꾸밈없는 언어로 풀어낸다. 돌아가는 자의 젖은 목소리, 노을빛처럼 스미는 쓸쓸함은 노경(老境)에 이른 시인의 지혜와 맞닿아 깊은 울림을 전한다.


이 시집의 시편들은 잃어버린 한국인의 인정과 풍속을 흑백 사진처럼 되살린다. 가난과 굶주림이 일상이던 근대의 삶, 해방 전후와 한국전쟁,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온 개인의 노정이 시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놓쳐버린 시간에 대한 아쉬움, 늙어가는 존재에 대한 연민과 사라져가는 것들의 서글픔이 담담하면서도 깊게 스며든다. 정춘자의 시는 기교를 앞세우기보다 불계공졸의 태도로 사물의 말을 곡진히 듣는다. 몇 가지 재료만으로 언어를 빚어 억지로 대상을 구부리지 않고, 자연스레 행과 연 사이에 숨을 고르게 한다.


특히 표제작 '빈 의자'는 객관적 상관물인 '의자'를 통해 버려진 노인의 현실을 환유적으로 드러내며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빈 의자'는 개인의 체험을 넘어 보편적 정서를 건드리는 서정의 힘을 보여준다. 삶의 구체적 장소에서 태어난 시들은 인간의 영고성쇠와 허무를 노래하며 독자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고통과 기억을 지나 순수한 언어로 세계를 속삭이는 이 시집은, 오늘의 독자에게 오래 남을 감동을 전한다.


정리=김형범 대구문인협회 부회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