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립극단 '맥베스' 공연 장면.
백진기 문학박사·호산대 공연예술학과 초빙교수
지난해 12월17일부터 20일까지 대구문예회관 팔공홀에서 공연된 대구시립극단의 '맥베스'는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충실히 재현하려는 공연이 아니다. 이 무대가 겨냥하는 지점은 원작의 언어를 보존하는 데 있지 않고, 그 언어가 품고 있던 비극의 구조를 오늘의 무대 언어로 다시 작동시키는 데 있다. 연출을 맡은 성석배는 언어 중심의 비극을 이미지와 신체, 공간과 기술로 전환하며, 비극을 '설명'이 아닌 체험의 영역으로 이동시킨다.
이 공연은 처음부터 명확한 선택을 한다. 원작이 독백과 대사를 통해 구축한 윤리적 갈등을 장황하게 따라가기보다, 언어를 절제한 채 사건의 진행을 가속한다. 던컨 왕의 살해 이후 장면은 쉼 없이 이어지고, 관객은 인물과 함께 '생각할 시간'을 상실한다. 이는 맥베스가 점차 사고의 주체에서 반응하는 신체로 전락해가는 과정을 무대의 리듬 자체로 구현한 연출적 결단이다.
무대는 안정과 휴식을 허락하지 않는다. 성은 보호의 장소가 아니라 살육의 장소이며, 왕좌는 권력의 상징이 아니라 고립의 구조물로 기능한다. 수직적으로 분절된 공간은 욕망과 위계의 거리를 시각화하고, 인물들은 점점 더 좁은 영역으로 밀려난다. 이 무대에서 비극은 외부로부터 침입하지 않는다. 무대 자체가 이미 비극의 조건이 된다.
이 작품의 중요한 성취 가운데 하나는 홀로그램과 리어 스크린을 활용한 무대장치다. 이 기술은 장식적 효과에 머무르지 않고, 환영과 망상, 예언의 세계를 실제 공간으로 끌어올린다. 원작에서 언어로만 존재하던 환영은 이 공연에서 시각적으로 실재하며, 관객은 맥베스의 내면을 해석하기보다 그 왜곡된 세계를 직접 마주하게 된다. 이미지의 출현과 소멸, 깊이감의 조절은 무대를 단일한 배경이 아닌 다층적 심리 공간으로 확장시킨다.
대구시립극단 '맥베스' 공연 장면.
맥베스를 연기한 김동찬은 이 인물을 고뇌하는 영웅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초반에는 상상과 주저가 공존하지만, 살해 이후 그는 빠르게 행동의 인물로 전환된다. 중반 이후의 연기는 죄책감의 토로보다 집착과 반복에 집중되며, '여자에게서 태어난 자'와 '버넘 숲'에 대한 믿음은 확신이 아니라 매달림에 가깝다. 이 해석 속에서 맥베스는 선택하는 인간이 아니라, 이미 선택된 폭력의 경로를 자동적으로 수행하는 존재로 읽힌다.
맥베스 부인을 연기한 김효숙 역시 초반의 강한 통제력을 지나 몽유 장면에 이르러 신체의 붕괴를 통해 폭력의 대가를 증언한다. 반복되는 손의 움직임과 흔들리는 호흡은 죄책감을 설명하지 않고 육체로 드러내며, 이 인물을 폭력의 공모자가 아니라 그 결과를 가장 먼저 감당하는 인간으로 재정의한다.
마녀와 귀족, 군인, 여성 군상과 아이들로 구성된 앙상블은 이 비극을 개인의 타락이 아닌 사회적 조건으로 확장한다. 마녀는 악의 주체라기보다 욕망을 증폭시키는 구조로 기능하고, 귀족과 군인 군상은 폭력을 학습한 집단의 얼굴을 보여준다.
결국 '맥베스'는 셰익스피어를 해석하는 공연이 아니라, 그의 질문을 오늘의 무대 조건 속에서 다시 발생시키는 작업이다. 언어의 비극을 이미지와 신체, 공간과 기술의 언어로 치환해낸 성석배 연출과 김동찬·김효숙을 중심으로 한 배우들의 절제된 연기는 이 공연을 요란한 박수보다, 오래 지속되는 침묵의 여운으로 기억되게 한다.
<백진기 문학박사·호산대 공연예술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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