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인터뷰] “슬픔의 유통기한은 타인이 정하더라”…단촌역에 남은 마음, 시가 되다

  • 정운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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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1-17 09:08  |  수정 2026-01-17 09:09  |  발행일 2026-01-17
김열수 시인의 첫 시집 나도 빈집에 남은 낙타였다 표지<독자제공>

김열수 시인의 첫 시집 '나도 빈집에 남은 낙타였다' 표지<독자제공>

폐역이 된 의성 단촌역의 풍경을 닮은 시집 한 권이 조용히 독자들을 흔들고 있다. 김열수 시인의 첫 시집 '나도 빈집에 남은 낙타였다'는 아내와의 사별 이후 남겨진 시간이 무엇을 남기는지, 그리고 그 상실이 어떻게 '말'이 아닌 '시'로 건너가는지를 101편에 담았다. 단촌역을 소재로 한 시 '단촌역'은 "한 줄은 떠남, 또 한 줄은 머묾을 갈랐다"는 구절로 떠난 이와 남은 이의 간격을 한 장면에 고정한다.


김 시인은 '위로'라는 단어가 쉽게 소비되는 시대일수록, 상실을 겪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밝은 말이 아니라 "같은 높이로 몸을 낮추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슬픔을 살펴보았다"고 했다. 슬픔의 뿌리에는 늘 상실이 있었고, 상실의 여정은 당사자에게 끝이 없는데도 주변에는 '슬픔의 유통기한'이 존재하더라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위로가 위로가 아니라 부담이 되고, 어느 순간 피하고 싶은 마음으로 바뀌며, 그 결과 상실한 사람은 스스로 고립을 선택하기도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상실을 겪는 이들에게 '힘내라' '행복해야 한다'는 말이 오히려 죄책감을 키울 수 있다고 했다. "행복과 기쁨을 강요하면, 그들은 죄를 짓는 행위처럼 받아들이게 된다"는 말은, 위로하는 쪽의 선의가 언제든 상처가 될 수 있음을 경계한다. 김 시인이 택한 방식은 '설득'이 아니라 '동행'이다. "누군가를 일으키려면 반드시 쓰러져 있는 그와 같은 높이로 몸을 낮춰 붙잡고 함께 설 수 있어야 한다"는 문장은, 그의 시가 낯선 희망을 들이밀기보다 젖은 자리에 함께 앉는 이유를 설명한다.


김열수 시인

김열수 시인

시를 쓰는 과정은 그 자신에게도 '치유의 기술'이라기보다 '감정의 분해'에 가까웠다. 그는 감정이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 복합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마음속 감정을 한 덩어리로 뭉쳐 자기 정체성으로 고정하면 슬픔이 더 커지지만, 그것을 하나씩 꺼내 살펴보면 '나'가 아닌 '객체'로서 다룰 방법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누군가는 쓰고, 누군가는 읽을 수 있어야 슬픔은 치유가 된다"고 말했다. "쓰다 보면 스스로 그 아픔의 진실을 알게 되고, 읽다 보면 그 진실이 불편하지 않아진다"는 고백은, 이 시집이 개인의 기록을 넘어 독자의 경험으로 확장되는 지점을 보여준다.


짧은 시 '눈물'은 그의 태도를 가장 압축한다. "그만 울라 마셔요 / 그녀는 지금 슬픔 덜어내는 중이예요." 울음을 멈추라고 재촉하지 않고, 슬픔을 '과정'으로 인정하는 문장이다. 단촌역의 멈춘 철길처럼, 삶에도 멈춰서는 구간이 있다. 김열수 시인은 그 구간을 부정하지 않고, 낮은 시선으로 기록해 건넨다. 떠남과 머묾 사이에 서 있는 이들에게, 그의 시가 건네는 말은 크지 않다. 대신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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