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옥 수필가·대구문인협회 부회장
모처럼 딸 내외와 아들이 왔다. 딸은 결혼한 지 1년 된 신혼부부이고, 아들은 아직 미혼이다. 밥상 앞에서 딸 내외가 숟가락은 안 들고 눈짓만 서로 교환하더니 "엄마, 이거!"스마트폰을 열어 사진 한 장을 보여 준다. 들여다보니 난생 처음 접하는 사진이다. 인물 사진이 아니라 무슨 판화 그림처럼 검은색 둥근 테에 흰 점 같은 것이 보인다.
"너 안과 갔다 왔니?"
"하이고, 우리 엄마!"
신생아 초음파 사진이었던 거다. 나는 순간 등짝을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정초부터 이런 행운이! 얼마나 기다렸던 소식인가. 자유롭게 지내던 딸이 삼십 대 중반을 넘겨 결혼했을 때 나는 만사 제쳐두고 아기부터 먼저 가지라고 말했었다. 문제는 딸이 아니라 사위였다. 딸 보다 다섯 살이나 연하인 사위가 최소 2년 정도는 아기 없이 신혼생활을 즐기고 싶다고 고집하는 것이었다.
나는 못마땅했다. 신혼은 무슨. 연상녀를 아내로 삼았으면 임신 상황을 아내한테 맞춰야지. 초음파 사진을 이해못한 엄마를 두고 젊은 것들이 드라마도 안 보느냐, 학교 다닐 때 생물 시간도 없었느냐, 입을 모아 흉을 보는데 사위가 슬쩍 끼어든다.
"자녀를 넷이나 둔 베테랑께서."
얘긴즉슨 맞는 말이다. 결혼 후 나는 마치 애 낳고 살림하는 것만이 지상 최대의 목표인 것처럼 그 일에 올인했다. 그때도 초음파 사진이 있었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없었거나, 있었더라도 의사 확인용으로만 쓰였던 게 아닐까. 아들이 좋다, 딸이 좋다, 화제가 무르익는데 나는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아무리 봐도 뭉크의 판화 그림 같다. 바깥쪽의 검은 테가 아기집이고 안쪽의 하얀 점이 아기라고 한다.
1.5㎝라고? 그래, 인간은 이렇게 하나의 점으로 세상에 발을 내딛는구나. 이슬이 물방울 하나로 풀잎을 적시듯이, 발레리나가 엄지발가락 하나로 하늘과 땅 사이에 자기 존재를 증명하듯이, 우리 모두 이렇게 점 하나로 시작을 하는구나.
"식사 안 하세요?"
딸의 재촉에 나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어른답게 신중을 기하느라고, "병원은 다녀왔지? 의사 확인은 거쳐야 하잖아." 딸, 사위가 손뼉을 치며 폭소를 터뜨리는데, 옆에 있던 미혼의 아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엄마, 그럼 이 사진은 사진관에서 찍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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