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건축가가 쓴 '유럽 도시 여행의 가장 좋은 출발점은 시청사'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유럽 대부분의 도시들은 도시 중심에 위치한 시청사나 대성당을 중심으로 정치, 경제. 행정, 문화예술 공간들이 애워싸며 그 중심 공간의 웅장함과 화려함으로 도시의 역사와 권위를 나타냈다고 한다. 이런 전통적인 도시의 구조는 현재까지도 유효하게 적용되는 도시가 많아 중요한 공공건축물을 짓는 경우 여전히 이 원칙이 고려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시청사는 여행의 출발점이자 대표적인 관광지가 되어 그 도시의 다양한 상징을 입은 랜드마크가 되고 있다. 세느 강변의 대표 관광지인 파리시청사, 네오고딕 양식의 오스트리아 빈 시청과 광장, 천문시계로 유명한 프라하 구시청사, 바르셀로나 고딕지구의 핵심 건물인 바르셀로나 시청사 등은 금방 떠올리게 되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프랑스 파리 관광 지도. 도시 중심에 시청이 위치한다. <구글 지도 캡처>
여행 블로거들도 유럽의 많은 도시를 소개할 때, 대부분 도시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시청사나 대성당을 시작으로 도시를 안내하는 가이드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다지 많지 않은 내 여행지들을 떠올려봐도 유럽 도시들의 화려한 시청과 웅장한 대성당, 그것과 연결된 상징광장이 도시의 중심 랜드마크로 자연스러운 관광의 시작이 됐던 기억이 난다.
2026년의 새로운 시작을 계획할 때, 대구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대구 신청사가 아닐까? 신청사 건립에 대한 계획안과 설계사를 선정 완료했으니, 곧 새로운 시청사를 갖게 될 것이다. 며칠에 걸쳐 생중계된 설계공모 심사 과정에서 공모에 참가하는 설계사들이 그려내어 풀어주는 신청사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건축가로서뿐만 아니라, 대구시민으로서 설레는 마음으로 즐겁게 지켜봤다.
대구 신청사 부지는 개인적으로 너무 익숙하기도 낯설기도 하고, 잘 알기도 전혀 모르기도 한 곳이다. 고등학교를 다니는 3년 내내 매일 지나쳤던 그곳은 버스정류장에 붙은 이름 때문에 익숙하긴 했지만, 무엇을 하는 곳이지 전혀 알 수 없는 그저 높은 담장으로 폐쇄된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곳이었다. 언덕길을 따라 촘촘히 붙어 있던 많은 학교들에 다니는 그 많은 학생들이 신기하게도 아무도 그곳을 궁금해하지 않았던 이유도 바로 그 높은 담장이 완전히 차단해버린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언덕길을 따라 끝이 보이지 않던 높은 담장 넘어 그곳이 그렇게 넓은 공간이 펼쳐져 있는 곳인지, 두류공원의 녹지가 그렇게 멋지게 연결되어 있는 곳인지 시민들은 알고 있었을까? 설계 공모에 참가한 많은 설계 회사들이 그곳에 대한 시민의 기억을 소환하고 오랜 세월 그 담장 안의 정체성을 지켜왔던 '물'을 중요한 부지의 테마로 해석하고 있었지만, 그 오랜 시간 동안 그 높았던 담장의 기억만을 가진 나는 담장이 없어진 그 부지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작은 카타르시스와 함께, 이곳에 지어지는 시청은 두류공원의 녹지가 멋지게 어우러져 흘러내리는 경관만으로도 대구의 새로운 장소가 되리라 확신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높은 담장의 '허물어짐'이 새로운 시청사 건립의 '시작'인 듯 보였다. 대구 신청사 부지는 일반적인 시청사 부지가 갖추어야 할 조건이라는 측면에서는 구런던 시청사 만큼이나 낯선 부지였다.(구런던 시청사로 불리는 이유는 2021년 런던 시청사는 동쪽 뉴함지구로 이전해 같은 방식으로 새로운 지역에 대한 도시재생을 만들어가고 있다.)
구런던시청사 부지로 선택된 타워브릿지 남쪽 템즈강변 공업지대. <Ben Brooksbank, 1950>
2002년 런던 시청사가 새롭게 지어지기 전까지 런던 시청사가 어디에 있는지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런던을 다녀간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념사진 속 템즈강 다리 건너 그 유명한 랜드마크인 웨스터민스터 국회의사당 근처 어디쯤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사실은 그 국회의사당을 건너 템즈강 반대편에 있던 카운티홀에 있었다고 한다.
밀레니엄의 시작과 함께 새로운 시청사를 짓기 위해 런던은 타워 브릿지(tower bridge) 남쪽 런던의 가장 낙후된 지역 중 하나로 오랫동안 버려져 있던 공장지대인 템즈 강변에 부지를 정했다.
설계를 맡은 세계적인 건축가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는 런던의 랜드마크로서의 시청사보다는 도시에서 버려진 공장지대 도시재생의 거점으로 시청사의 정체성을 잡고, '공공건축' 하나가 어떻게 주변을 변화시키고, 도시의 새로운 장소가 되고, 시민들을 연결하고, 공공 공간의 품격을 올릴 수 있는지를 런던의 새로운 시청사를 통해 보여줬다.
구런던 시청사와 시청사의 외부공간. <User: Colin / Wikimedia Commons>
그들은 새로운 시청사 계획안으로 상징성, 역사성, 지역성보다 미래세대를 위한 친환경, 개방성, 친근함으로 도시의 새로운 문화의 중심이자 커뮤니티 허브로서의 시청사를 제안했다. 구런던 시청사는 독특한 원형의 건축 형태로 귀여운 애칭인 '에그(Glass egg)'로 불렸다. 도시의 대표적인 공공건축물에는 당연히 도시의 상징을 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에그 형태의 건축물이 '새로운 도시 생명체의 탄생' '새로운 런던 행정의 시작' '런던시민과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껍질'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조형 아이콘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은 그 독특한 형태에는 상징성보다 매우 과학적이며, 실용적인 이유가 따로 있었다.
그 구형의 건축물 형태는 열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세심하게 계산된 외피 면적으로 25%에 달하는 표면적을 줄여 공사비와 유지관리비를 줄였고, 방향별 복사열 계산의 결과로 남측은 돌출시키고, 북측은 완만한 경사를 가진 매스가 만들어졌다. 이는 또한 템즈 강변을 걷는 보행자들을 위해 모든 방향으로 정면을 만들기 위한 선택이였다고도 한다.
또한 완공 후 이 독특한 형태의 시청사는 시청사 건물보다 그 주변에 조성된 공공 공간으로 인해 더욱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런던의 랜드마크가 됐다. 접근성이 좋은 수변 산책로, 기획전시 공간으로도 활용되는 대규모 녹지, 야외 공연장으로 활용되며 상시 문화행사가 이루어지는 선큰가든이 시청사 건물에 연결되어 건물뿐만 아니라 그 주변을 활기찬 소통의 장소로 만들었다. 시청사라는 행정 서비스 공간의 새로운 원형을 제시한 것이다.
구런던 시청사와 시청사의 외부공간. <Colin Smith>
구런던 시청사의 건축 형태에 대한 유명한 두 개의 문구가 있다. '런던 시청사는 랜드마크를 이기려 하지 않는다'와 '권력은 특정 방향에서 시민을 내려다보지 않는다'. 이를 그들은 민주주의적 공간 선언이라고도 한다. 런던의 그 수많은 타워(tower)들과 상징의 경쟁을 하기보다 낮은 건축물이지만 유기적으로 템즈강 자연과 함께 흐르는 시민들의 최애 만남의 장소, 휴식의 장소로서 역할을 하고자 했다.
런던의 '에그'는 런던의 오랜 역사와 세계적 사건, 자랑을 상징화하는 조형적 아이콘이 아니라, 낮은 곳으로 흐르는 민주주의를 보여주며 행정 서비스 공간에 시민과 문화, 소통, 만남, 녹지, 도시의 산책을 더하여 만들어낸 낮은 랜드마크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동쪽 지역으로 옮겨 도시재생의 새로운 아이콘이 될 런던의 새로운 시청에 대해서도 큰 기대를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새롭게 지어지는 대구 신청사도 대구의 상징이 될 수 있는 매우 좋은 부지 조건을 가지고 있다. 두류공원의 풍부한 녹지가 부지로 흘러들 준비가 되어 있어 신청사의 녹지축은 개방된 공공건축물 속으로 들고나는 공공의 산책로가 될 것이다.
주변 학교를 비롯한 주거지역의 시민들에게는 도시로부터 단절시키지 않는 트인 마당, 가까운 공원이 되고, 굳이 주변의 랜드마크 타워와 높이 경쟁을 하지 않더라도 시청사 안에서 시민들은 대구의 자긍심을 느낄 수 있고, 문화의 장소 속을 걷고, 도시를 내려다보며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장소가 될 것이다.
대구 신청사는 더 이상 높이로 경쟁하지 않아도 된다. 두류공원의 녹지와 열린 마당, 시민의 일상 동선이 자연스레 스며드는 구조 속에서 행정은 투명해지고, 광장은 일상이 되며, 문화는 확장된다. 런던이 '낮은 랜드마크'로 민주주의의 방향을 보여주었듯, 대구 역시 시민이 머물고 참여하고 기억하는 도시의 플랫폼을 선택할 때 비로소 새로운 시대의 시청사가 완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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