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희의 쉰셔널지오그래픽] 나를 미워했던 마리아나에게

  • 서상희 크레텍 이사
  • |
  • 입력 2026-01-23 06:00  |  발행일 2026-01-23
바다를 보여준다기에 얼씨구나 타버린 동네 관광버스. 아무리 작은 여행사라도 수준이 높았다. 버스 안에서는 아일랜드 음악이 나왔고, 가이드는 아일랜드 출신 뉴에이지 음악의 여왕 엔야(Enya)를 칭송했다.

바다를 보여준다기에 얼씨구나 타버린 동네 관광버스. 아무리 작은 여행사라도 수준이 높았다. 버스 안에서는 아일랜드 음악이 나왔고, 가이드는 아일랜드 출신 뉴에이지 음악의 여왕 '엔야(Enya)'를 칭송했다.

"난 중국말 못해요."


"그럼 어쩔 수 없어요."


"도와줘요 마리아나. 난 집에 가고 싶어요."


더블린 공항 항공사 카운터에서 나는 사정을 하고 있었다. 관리자였던 마리아나씨는 내가 코로나 방역 검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탑승을 거부했다. 규정상 그렇다손 치더라도 그의 태도는 날 당황하게 했다. 그 공항에 오지도 않는 중국 항공사로 전화기를 돌려 내 귀에 대고 중국말을 하라 했다. 다른 항공편이나 검사 등에 대한 안내도 전혀 해주지 않았다. 한때 코로나 원인으로 인식됐던 국가 근방을 싸잡아 싫어하며, '어디 우리 비행기를 타느냐, 너희 비행기나 타고 가라'는 태도가 명백했다. 이 모든 것이 인종혐오(Racial Hatred)였지만, 당시엔 그런 객관적인 판단에 내 생각이 닿지 못했다.


날벼락이 떨어질 줄 모르고 마냥 좋았을 때. 오십살 천진함이 한 백인 여성의 편견 앞에 와르르 무너졌다. 다시 이렇게 겁 없이 떠날 수 있기를.

날벼락이 떨어질 줄 모르고 마냥 좋았을 때. 오십살 천진함이 한 백인 여성의 편견 앞에 와르르 무너졌다. 다시 이렇게 겁 없이 떠날 수 있기를.

여행을 좋아했던 나는 코로나 거리두기 시절, 그 새를 참지 못하고 기어이 나가고 말았다. 더블린 여행 마지막 날, 현지에서 검사를 하고 확인증을 받아야 했는데, 그만 아일랜드 바다를 보는 관광상품에 혹해 버스를 타버렸다. 공항에 오면 어찌 되겠지 했지만 행운의 여신은 대책 없는 내 편이 되어주지 않았다. 마리아나는 키가 나보다 20㎝는 더 컸으며 덩치도 두 배였다. 그는 입으로는 "방법이 없다"고 했지만, 눈은 '어디 동양인이 여길 오나?'라고 쏘아댔다.


공항에서도 한껏 외진 곳에 있던 코로나 검사센터. 코비드(COVID)라는 단어가 아닌 랜독스, 즉 아일랜드 헬스케어 브랜드 이름으로 돼 있다. 외부인이라면 십중팔구 찾기 어렵다. 이 불친절한 건물 안에 인류애 가득한 청년이 있을 줄이야.

공항에서도 한껏 외진 곳에 있던 코로나 검사센터. 코비드(COVID)라는 단어가 아닌 랜독스, 즉 아일랜드 헬스케어 브랜드 이름으로 돼 있다. 외부인이라면 십중팔구 찾기 어렵다. 이 불친절한 건물 안에 인류애 가득한 청년이 있을 줄이야.

검사소가 문을 열자 줄부터 섰다. 의사 가운을 입은 청년은 사색이 된 나를 보고 연유를 물었다. 여차저차 검사를 못해 비행기를 놓쳤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아랍계 얼굴에 머리 반을 빡빡 밀고 꼬랑지 머리를 한, 나의 고정관념상 불량하고 불친절해야 하는 그 청년은 마치 자기 일처럼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자기 폰을 열어 항공편 시간대를 검색했고, 내 얼굴 앞으로 화면을 들이밀었다.


"이걸 타! 예약한 것은 놓쳤지만 다음 것은 꼭 타야 오늘 넌 한국으로 갈 수 있어."


"검사 결과 나오기까지 오래 걸리면 그거마저 탈 수 있을까?"


"넌 할 수 있어. 유캔두잇!"


그렇게 그는 두 시간이 걸리는 결과 통보를 단 20분 만에 속성으로 해줬다. 이역만리 파란 눈들의 땅에서 나를 도와준 단 한 사람, 청년 다니엘. 난 그의 이름을 물었고, 검사소를 나오며 안도감이 생긴 나는 비로소 혀를 굴려 영어를 날렸다. "생큐소머치 대니얼~" 아랍인에 대한 편견이 일거에 걷히는 순간이었다.


돌아온 공항 카운터. 마리아나는 거만하게 손님들 줄을 세우고 있었다. 그의 코앞에 검사확인서를 내밀었다. 눈썹을 한껏 들어 그는 '뭐 어쩌라고' 식의 표정을 지었다.


"당신이 예약한 비행기는 이미 출발했는데?


"그럴 줄 알고 내가 뒷 비행기를 예약했어!"


"와우~(입 삐죽)"


이 공항에서 몸싸움을 한들 뭣 하리. 전화를 돌려도 돌려도 받지 않는 우리나라 영사와 한국의 내 가족들, '너희 둘은 이제 내가 한국에 가기만 하면 아주 죽었다'고 되뇌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외교부 사이트와 그 항공사 사이트에 나의 한 맺힌 스토리를 올려 반드시 마리아나를 혼쭐내고 싶었다. 마리아나가 그날의 나처럼 울며불며 용서해달라고 하길 바랐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뭐다?


"심심한 유감을 표합니다."


제도적으로 되지 않으니, 이후 나는 개인적 한풀이처럼 꽤 오랫동안 그녀에 대한 분노를 뿜어댔다. 내가 유명하거나 영향력이 큰 사람이라서 입 한 번 열면 그 항공사와 마리아나가 폭삭 망하는 상상도 했다. 출세를 할 걸 그랬다고 혼자 이불 쓰고 킥을 날리기도 했다.


더블린의 거리는 정말 아름다웠다. 다시 그 순간이 온다 해도 검사소로 가는 대신, 이 거리를 택한다. 마리아나가 또 화를 내겠지만, 이번엔 그녀에게 줄 꽃다발을 준비해 가서 난 당신에게 해롭지 않다고 웃으며 말할 것이다.

더블린의 거리는 정말 아름다웠다. 다시 그 순간이 온다 해도 검사소로 가는 대신, 이 거리를 택한다. 마리아나가 또 화를 내겠지만, 이번엔 그녀에게 줄 꽃다발을 준비해 가서 '난 당신에게 해롭지 않다'고 웃으며 말할 것이다.

그 일이 있은 지 이제 3년, 그렇게 미워했고 분개했던 내 마음은 어찌 됐을까? 혐오를 당해보면 혐오를 받는 자의 서러움과 억울함을 안다. 이유 없이 누가 날 미워하고 극악스러운 존재로 규정한다면 사랑하고 돕기보다 복수하고 짓밟는 것으로 자신을 지킬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 혐오가 늘어난다. 특정 국가에 대한 비하, 이주 난민에 대한 근거 없는 소문, 남녀 간의 혐오, 세대에 대한 조롱 등 그저 자기 감정에 기반한 방어적 태세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영화 아바타의 대사처럼 "I see you" 즉, 당신을 통해 나를 본다. 마리아나가 지닌 얼굴색과 국가에 대한 편견은 지금 우리 사회의 단면과 다르지 않다. 나 또한 검사소의 청년 다니엘을 본 순간 '머리를 빡빡 민 아랍인은 나를 도와줄 선의의 부류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친절에 나의 편견과 무지는 깨지고 말았다. 상대의 안타까운 사정을 미루어 짐작해 뭐라도 해주는 것, 이를 휴머니즘이라고 한다지.


아일랜드 서쪽 끝 모허절벽. 이걸 보러 간다고 코로나 검사를 하지 않아 탑승을 거절당했다. 그러나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가더라도 난 모허로 간다. 모허엔 야생화가 많이 피었고 바람도 세게 불었다. 그 어떤 판단이나 욕심이 다 날아갈 만큼 바람이 거셌다. 이 야생화들을 꺾어 마리아나에게 줄 수 있을까?

아일랜드 서쪽 끝 모허절벽. 이걸 보러 간다고 코로나 검사를 하지 않아 탑승을 거절당했다. 그러나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가더라도 난 모허로 간다. 모허엔 야생화가 많이 피었고 바람도 세게 불었다. 그 어떤 판단이나 욕심이 다 날아갈 만큼 바람이 거셌다. 이 야생화들을 꺾어 마리아나에게 줄 수 있을까?

다시 더블린 공항에 간다면 날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하고 싶은 것이 있다. 마리아나에게 꽃을! 아일랜드 해안으로 가는 길가엔 예쁜 들꽃이 많았다. 그 꽃을 하나씩 모은 꽃다발을 만들어 무조건 덥석 안겨줄 것이다. 내가 다니엘에게 받았듯, 편견을 가졌던 상대에게 선의를 받는 경험을 되돌려 주고 싶다. 우리 미워하지 말자고, 지레 규정하지 말자고. 그리고 그런 상황에 다시 처한다면 돌아올 티켓을 호소하는 대신, 전날 놀러갔던 아일랜드 해안으로 되돌아갈지 모르겠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그 쉬운 처세법을 이제야 땅을 치고 터득했다고 할까.


혼자 간 여행이라 외로워서 숙소에 꽂았던 꽃. 그 도시를 사랑하는 나만의 방법이다.

혼자 간 여행이라 외로워서 숙소에 꽂았던 꽃. 그 도시를 사랑하는 나만의 방법이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