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상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
이재명 대통령이 이혜훈 기획예산처장관 후보자에 대한 지명을 스스로 빨리 철회한 것은 잘한 일이다. 홍익표 정무수석의 설명대로, 대통령이 보수진영 인사를 발탁했던 만큼 지명철회까지도 인사권자로서 책임을 다했다고 볼 수 있다. 이혜훈 지명 이후 지난 한달 동안 한중 정상회담, 한일 정상회담, 코스피 5000 돌파 등 많은 호재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상쇄되는 현실도 감안했을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가 이혜훈에 대한 검증 실패를 인정하고 사과하지 않은 점은 유감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21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청와대 검증문제에 대해 "그쪽 (보수)진영에서 공천을 무려 다섯번 받아서 세 번씩이나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아무런 문제가 제기되지 않았던 분"이라며, 화살을 국민의 힘쪽으로 돌렸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정당의 공천심사와 정부의 인사검증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크다. 정당의 공천심사는 범죄경력이나 언론보도 등을 참고하는 수준에 그친다. 반면 정부의 인사검증은 공직자후보의 법적·도덕적 적격성을 관련 조사기관이 확인하는 것으로 수사에 준하는 절차를 거친다. 보좌관에 대한 폭언은 파악하기 어렵다 해도, 아파트 부정청약이나 장남의 연세대 특혜입학 등은 충분히 사전에 걸렀어야 할 사안이다.
이번 지명철회로 "이재명 정부가 잃을 건 별로 없다"는 것이 청와대와 여권의 내부 기류라고 한다. 실제 여론조사에서도 이혜훈 후보자 자체는 '부적격' 응답이, 보수인사 지명은 '긍정' 여론이 많았다고 한다. 이재명 대통령으로선 통합을 위해 애썼다는 긍정적 평가를 얻는 대신 인사 실패는 이 후보자 개인의 잘못으로 귀결시키면 그뿐이다. 이혜훈만 어리석게도 부화뇌동한 꼴이 됐다.
이번 인사파동 와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지난 23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어느 국민의 힘 의원이 한 말이다. 그는 장관지명 후 이 후보자가 평소 자신의 보수적 철학과 지론을 모두 폐기하고 번복한 점을 지적하며 "보수의 비열한 민낯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이번 인사는 이재명 대통령에겐 성공한 인사"라고 꼬집었다.
실제 이 후보자는 12·3 계엄과 탄핵에 관한 자신의 입장을 180도 바꾸었다. 과거엔 계엄을 비호하고 탄핵을 비판하다가 장관지명 후엔 "내란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불법적 행위"라며 "당파성에 매몰돼 실체를 놓쳤음을 고백한다"고 사과했다. 야권에선 이를 두고 '공산당식 자아비판'이란 지적이 나왔다.
물론 12·3 불법 비상계엄에 대한 입장 변경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이 후보자는 과거 윤석열정부의 감세·긴축 정책을 옹호했지만 장관지명 후엔 소신을 번복했다. '자멸적이고 교조적 긴축'이라며 침을 뱉었다. 장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평생 지녀왔던 보수경제학자로서의 철학마저 길바닥에 내동댕이친 것이다.
이 후보자가 강남아파트 부정청약 의혹을 해명하러 장남의 이혼위기 가정사까지 공개하는 대목에선 차라리 TV 스위치를 끄고 싶었다. 누리꾼들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라"고 비웃었다.
12·3 내란이 성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헌법적 의무와 책임을 외면했던(법원 1심 판결문) 윤석열 보수정부의 2인자 한덕수. 장관 자리를 노려 평생의 보수적 가치와 정치적 입장, 그리고 가족까지 팔아먹은 이혜훈 후보. 이들에게서 한국 보수의 비열한 민낯을 본다. 아니, 이들은 원래 보수주의자가 아니라 한낱 기득권층의 기회주의자들이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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