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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형예술가 차계남씨가 작업실 옆에 있는 AA갤러리에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
1953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효성여대 미술과와 일본 교토시립예술대 염색과를 졸업했다. 대구가톨릭대 예술학과 미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교토 세이안여대 강사, 도쿄 아사히 현대공예전 심사위원, 영천 시안미술관 큐레이터, 대구가톨릭대 강의전담교수, 대구시 퍼블릭아트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독일 카를스루에 아트페어와 갤러리 카롤라 베버, 일본 오사카부립 현대미술센터와 교토 갤러리 마로니에 등을 비롯해 서울 문화진흥원미술회관·인공갤러리, 대구 신라갤러리, 영천 시안미술관 등에서 개인전 32회를 열었다.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감로상, 섬유대상 우수섬유예술가상, 오사카 국제조각 트리엔날레 은상, 일본 현대공예 교토시 선발전 우수상 등을 받았다. 독일 갤러리 카롤라 베버, 일본 오사카 국립국제미술관·오사카 시립 도자기박물관·오쓰 시가 현립 근대미술관·교토후 문화박물관, 헝가리 사비리아 미술관, 부산시립박물관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일본·프랑스서 수십년 유학
자연스레 정체성 찾기에 몰두
전통오방색으로 작품 활동
시간 흐르면서 먹색美에 반해
완성작 크기도 거대하지만
작업과정서 많은 공간 필요
마실(마에서 뽑은 실)을 이용해 독특한 작업을 보여주는 조형예술가 차계남은 한국의 한 대학원에서 1년간 염색관련 공부를 하다가 일본으로 떠났다. 이 분야의 공부를 좀더 깊이있게 하고 싶어서였다. 그곳에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20년 가까이 작가로 활동하다가 프랑스로 다시 건너가 작업했다.
“일본에서는 망해서 쓰지않는 공장을 빌려 작업했어요. 공장이다보니 작업하는데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작업공간이 넓어 제가 하고 싶은 작업을 그마나 마음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도 물가가 비싸서 빠듯한 생활을 해야 했지만 그래도 그곳이 행복했다. 프랑스로 건너가니 생활이 더 쪼들렸다. 작업실을 따로 구할 돈이 없어 방에서 작업을 했다.
“제 작품은 소품도 있지만 대형작품이 많습니다. 집 한 채만한 것도 있지요. 조그만 방에서 작업을 하니 진짜 만들고 싶은 작품을 만들지 못했지요. 마음껏 작업할 수 있는 것이 작가의 큰 행복이란 것을 이때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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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의 7년 생활 동안 차계남은 큰 작업을 하고 싶다는 욕구를 꾹꾹 눌러야만 했다. 어쩌면 이것이 한국으로 그를 불러들인 이유가 된지도 모른다. 2006년 20여년 만에 드디어 귀국했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그는 큰 작업실부터 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작가가 자신의 마음에 드는 작업실을 구한다는 것은 감히 엄두도 못낼 일이다. 그의 경우 대학 때부터 유학시절, 외국에서의 작업활동 내내 모든 것을 후원해주던 언니(차상남 상주식당 대표)가 또다시 도움을 줘 작업실을 구할 수 있게 됐다. 하루하루 생활비도 아쉬운 작가들이 마음놓고 작업실을 갖는다는 자체가 감지덕지할 일이다.
완성작 크기도 거대하지만
작업과정서 많은 공간 필요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에서
마음껏 작업할 수 있어 행복
가창의 작업실과 화랑이
후배들 꿈이 영그는 장소되길
도심에서 큰 작업실을 구하기가 부담스러워 결국 그도 대구 근교로 눈을 돌렸다. 가창면 삼산리에서 좋은 곳을 발견했다. 공장으로 쓰던 건물이었는데, 건물 뒤의 산들이 병풍처럼 공장을 에워싸고 앞으로는 작은 시내가 흘렀다. 공장이 넓은 것도 마음에 들었지만, 주변 풍경 또한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공장면적이 400㎡ 정도 되더군요. 2/3는 작업실, 1/3은 갤러리로 만들었습니다. 이런 큰 작업실을 갖는 것도 기쁜데, 갤러리까지 만들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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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을 전통오방색으로 염색한 후 이를 포개고 압축해 종이처럼 만든 것으로 입체작품을 만든다. 오방색으로 한국민의 심성, 아름다움 등을 보여주고자한 작품이다. 이 작업은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변해간다. 오방색을 안으로 넣고 표면을 검은색으로 처리하던 데서 발전해 최근에는 작품 전체가 검은색이다. 이는 오방색이라는 외면적인 아름다움을 검은색이라는 내적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켜나간 과정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물론 검은색이 우리 전통미술에서 빠질 수 없는 먹색과 이어진다는 측면도 있다.
그는 먹색에 빠져 2년 전부터 서예까지 배우고 있다. 그동안 마실로 했던 작업을 앞으로는 한지실로 바꿔나갈 계획이다. 자신이 글자를 쓰고 사군자를 그린 한지를 1㎝넓이로 길게 자른 후 이를 실처럼 꼬아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앞으로 2년간 이 작업을 연구, 실험해 완성작을 내놓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먹색은 단순한 검은색이 아닙니다. 눈을 감았을때 편안한 상태의 침묵, 고요 등을 상징하는 색이지요.” 이런 측면에서 그는 이 색을 가장 인간다우면서도 자연에 가까운 색이라고 말한다. 검은색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삶과 죽음, 해와 달 등 인간을 포함한 자연의 음양에 관계한 이치가 모두 함축돼 있다는 설명이다.
차계남은 자신의 작업과정이나 그 결과물인 작품이 동양의 좌선과 닮았다고 말한다. 그가 추구하는 색이나 가느다란 실인 선을 엮어 면을 만들고, 면을 다시 입체화해나가는 과정이 참선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런 작업과정을 고요한 산 아래에서 할 수 있으니 그는 최상의 작업환경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 작업공간은 남들이 흔히 말하는 여유롭고 편안한 전원 속 작업공간은 아니다. 그 속에는 치열함이 살아숨쉰다. 작업실 밖으로는 아름다운 산과 시내가 펼쳐지지만 작업공간에 들어서면 재단용 칼과 가위, 전기톱 등이 곳곳에 널부러져 삭막하기 그지없는 광경이 펼쳐진다. 그래도 그는 이 곳에서 작업할 때 가장 편안한 행복을 느낀다.
이런 측면에서 예술가에게 있어 작업실 그 자체가 전원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작업실이 도심에 있건, 시골에 있건,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작업실에서 마음껏 창작열을 불태울 수 있는 것이 마음 속의 전원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런 작업실이 시골에 있으니 그는 진짜 행복한 사람이 아니겠느냐는 반문이다.
작업실 옆에 자리잡은 AA갤러리에 대한 애착도 드러낸다. 교외에 있다보니 관람객이나 컬렉터들이 적어 운영상 어려움이 없느냐는 질문에는 “좋은 작품을 전시하면 올 만한 사람은 전시장이 멀어도 다 오게 돼 있다. 어차피 화랑을 수익목적으로 운영하지는 않는다. 젊은 시절 외국에서 작업할 때 내가 겪은 어려움을 젊은 작가 역시 겪을 텐데,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과 용기를 주기 위해 화랑을 만들었다”고 답한다.
그렇다보니 그의 화랑은 팔리는 작가보다 역량있는 작가 위주로 초대한다. “동생 차우철이 대표로 있는데 대표와 저, 언니가 서로 머리를 맞대어 좋은 작가를 뽑기 위해 노력합니다. 1년에 서너 작품도 못팔지만 그래도 젊은 작가를 키운다는 데서 보람을 찾지요.”
차계남에게 가창의 작업실은 더 이상 그만의 것이 아니다. 그는 가창의 작업실과 화랑이 자신은 물론 후배작가들의 꿈과 희망이 영그는 장소가 되길 바란다.
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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